대가 없는 기다림
중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어머니와 크게 싸웠다. 고등학교를 어디로 진학할지 정하는 문제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특목고나 과학고, 최소한 일반고에 가서 대학을 가길 바라셨다. 나는 지역의 상업고등학교에 가고 싶었다. 이유는 하나였다. 공부가 하기 싫었다.
공부 말고 할 줄 아는 게 없을 때는 공부를 열심히 했다. 그런데 악기를 배우고 복싱을 시작하고 나서는 공부가 너무 싫어졌다. 책상에 앉아도 머릿속은 체육관과 악기학원에 빨리 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 친한 친구들이 상업고등학교에 간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친구들은 상업고등학교는 야자도 없고, 취업이나 대외활동을 이유로 학교를 자주 안 나가도 졸업할 수 있다는 말을 했다. 나는 그 말에 딱 꽂혔다. 친구들을 따라 상업고등학교에 가고 싶었다.
처음 어머니께 이야기를 꺼냈을 때, 어머니는 심하게 반대하셨다. 왜 상업고등학교에 가려 하냐고 물으셨다. 어머니가 특목고와 기숙사 얘기를 하시기에 나는 “학비도 비싸고 기숙사도 들어가야 하니까 돈이 너무 든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리고 집안이 힘드니 빨리 취업해서 돈을 벌고 싶다고 말했다.
그때 집이 어려웠던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내 말은 진심이 아니었다. 그냥 친구들과 학교를 다니고 싶었고, 공부가 하기 싫어서 가장 그럴듯한 이유를 끌어다 쓴 것뿐이었다. 그 말이 어머니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될지, 그때는 몰랐다.
그날 어머니는 처음으로 우시면서 나를 때리셨다. 그 후로 한동안 어머니와 말을 섞지 않았다.
상업고등학교 지원 마지막 날, 나는 어머니께 말했다. 가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자격증도 많이 따서 회계사가 되겠다고. 거짓말이었다. 어머니가 예전에 회계사였다는 사실을 이용한, 입발린 소리였다. 한 번만 믿어달라고 했다.
어머니는 마음에 들지 않으셨지만, 1년 안에 유의미한 자격증을 따는 걸 조건으로 허락해주셨다. 그렇게 나는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생활은 내가 생각한 것과 많이 달랐다. 나는 학교생활보다 취미생활이나 다른 활동에 집중하고 싶었다. 그런데 상업고등학교는 내 예상과 달리 일반고와 비슷한 공부량을 요구했다. 일반 교과목뿐 아니라 회계, 경제, 실무 과목까지 배워야 했고, 자격증 취득을 위한 야간자율학습과 교내 경시대회까지 있었다. 내 개인시간은 더 줄어들었다.
입학하고 3개월, 첫 중간고사를 치른 뒤 나는 어머니께 자퇴하겠다고 말했다. 특별한 이유도, 자퇴 후 계획도 없었다. 그냥 “공부하기 싫어서 왔는데 생각과 달라서 그만두고 싶다”고 했다. 좋은 이유를 만들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화를 내셨다. 일주일 동안 어머니는 매일 저녁 나를 설득하셨고, 나는 듣기 싫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래도 학교는 나갔다. 집에 있으면 어머니와 계속 마주치는 게 불편해서였다. 하지만 학교에 나간다고 공부를 하진 않았다. 소설책을 읽고, 잠만 자고, 점심을 먹고 나서는 학교를 나와 복싱 체육관에 갔다.
결국 어머니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을 테니 졸업만 하자고 말씀하셨다. 더 이상 어머니와 껄끄럽게 지내기 싫었던 나는 그 말을 받아들였다.
그 뒤로 나는 정말 졸업을 위해서만 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어머니는 정말로 아무것도 묻지 않으셨다. 점심만 먹고 집에 와서 낮잠을 자도, 아무 말 없이 과일을 깎아 주셨다. 내가 사고를 치거나 큰 문제를 일으킨 건 없었다.
그때 내 삶의 중심은 복싱이었다. 고등학교에 올라오며 코치님께 복싱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코치님은 키 170에 몸무게가 100kg이 넘던 내게 “선수하고 싶으면 70kg까지 빼고 와라”고 하셨다.
나는 매일 10km가 넘는 거리를 아침저녁으로 걸어 다녔고, 체육관에서는 하루 세 시간씩 운동했다. 1년 뒤, 내 몸무게는 정확히 70kg이 되어 있었다. 중간중간 생활체육 대회도 나가며 정말 열심히 했다.
부모님은 반대하셨다. 삼촌이 젊었을 때 유명한 복싱 선수였기 때문이다. 서울체고를 다니며 TV에도 나왔을 정도였다. 하지만 삼촌은 한창 잘 나가던 시기에 펀치드렁크가 와서 간질 발작과 여러 후유증으로 복싱을 그만뒀다. 그 병원비가 당시 1억이 넘었다고 들었다. 그런 삼촌을 지켜본 어머니는 제발 복싱만큼은 하지 말아달라고 하셨다.
이번만큼은 어머니를 설득할 수 없었다. 나는 코치님께 부모님 허락을 받았다고 거짓말을 하고 시합에 나갔다. 시합을 다녀온 뒤 얼굴 상태 때문에 친구 집에서 며칠 자고 오기도 했다. 그 정도로 복싱이 너무 재미있었다.
학교생활은 더 소홀해졌다. 아침운동을 다녀오고 학교에 가서는 점심시간까지 잤다. 점심을 먹고 나면 무단으로 나와 체육관으로 향했다. 체육관에서는 “상업고등학교라 선수 한다는 이유로 일찍 나온다”고 또 거짓말을 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들도 포기한 학생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학교에서 좋은 행사나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내 이름이 명단에 올라가 있었다. 성적이 좋은 학생들만 간다는 1박 2일 기업 현장학습 명단에도, 학부모 동반 견학 명단에도 내 이름이 있었다. 친구들도, 학부모들도 이상하다고 했다.
나는 그 행사들을 모두 무단 불참했다.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학교장 손자다. 선생님께 뒷돈을 줬다. 아버지가 건달이라 협박했다.
말도 안 되는 얘기들이었다. (아버지는 건달 같은 얼굴의 버스기사였지, 진짜 건달은 아니었다.)
내가 계속 불참하니 소문은 조용히 사라졌다.
한참이 지나서야,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알게 됐다.
내가 자퇴하겠다고 말한 이후, 어머니는 거의 매일 학교에 나오셨다. 학부모회에 들어가 모든 행사에 참여했고, 봉사활동과 체육대회 매점까지 맡으며 학교에 시간과 돈을 쏟으셨다.
선생님들은 어머니를 붙잡고 내 학교생활을 이야기했고, 어머니는 그저 죄송하다는 말만 하셨다고 했다. 내 학교생활 때문에 어머니가 ‘죄인’처럼 되어가고 있었다.
학부모 모임에서 모두가 자기 자식 자랑을 할 때 어머니는 듣기만 하셨고, 정기 상담 자리에서 선생님들의 질책을 들어도 “졸업만 하기로 약속했다”며 잘 부탁드린다는 말만 반복하셨다. 심지어 내가 참여하지도 않는 학부모 동반 행사에 어머니는 아침 6시부터 가장 먼저 나가 계셨다고 했다. 다른 부모들은 자녀와 함께 오는데, 어머니만 혼자였다.
나는 몰랐다. 어머니가 학교에 오는 것도, 그런 소리를 듣고 다니는 것도, 몰랐다. 체육대회 날 친구들이 뛰고 응원할 때, 내가 피곤해서 자고 있는 모습을 멀리서 보고 돌아가신 날도 있었다고 했다.
좋은 행사들이 내게 돌아오고, 선생님들이 나를 챙겨주기 시작한 것도 어머니의 노력 때문이었다는 걸 친구 어머니에게서 한참 지나서야 들었다.
마음이 아팠다. 동시에 화가 났다. 왜 내게 말도 하지 않고, 왜 혼자 그런 자리에 나가서 듣기 싫은 소리를 다 견디며 내 학교생활을 붙잡고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작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나는 재밌게만 지냈는데.
그날 집에 가서 어머니에게 모진 말을 퍼부었다. 나 때문에 힘들었던 어머니에게 더 아픈 말들을 골라서 뱉었다.
어머니는 울지 않으셨다. 그리고 한마디만 하셨다.
“네가 어느 날 갑자기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최소한 학교생활이 너의 발목을 잡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서 그랬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날 나는 복싱을 취미가 아니라 선수로 하고 있다는 걸 사실대로 말했다. 그동안 숨겨둔 대회 메달과 상장들을 어머니께 보여드렸다. 어머니는 많이 놀라셨지만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셨다. 그리고 나는 1년 동안 있었던 일들을 모두 털어놓았다.
나는 딱 1년 동안, 정말 하고 싶은 대로 살았다. 운동도 마음껏 했고 꿈도 찾았고, 학기 중에 아무 계획 없이 혼자 일주일 여행도 다녀왔다. 이제는 안다. 그 행복했던 1년이 어머니의 노력 덕분이었다는 걸.
1년이 지난 뒤 어머니께 말했다. 이제 학교생활도 열심히 하겠다고. 선수 생활도 함께 하겠다고. 그러니 학교에 나오지 않으셔도 된다고.
다음 날 어머니는 학교에 가 학부모회와 잡혀 있던 모든 행사들을 취소하셨다. 그리고 하교하던 나와 같이 외식을 하고, 체육관까지 데려다주셨다. 밥을 먹으며 나는 말했다. 정말 행복한 1년이었다고. 다시 돌아가도 그 1년만큼 하고 싶은 거 하며 재밌게 놀긴 어려울 것 같다고.
어머니는 그날, 모든 걸 보상받는 기분이었다고 하셨다.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도, 우리는 그때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웃는다. 어머니의 노력과 대가 없는 기다림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걸, 이제는 안다.
결과적으로 나는 복싱 선수가 되지는 못했다. 운동 중 왼손이 부러진 적이 있었는데, 중요한 시합이 얼마 남지 않아 그냥 출전했다. 시합은 처참하게 졌다. 시합 후 병원에 가 보니 턱은 빠져 있었고, 부러지며 생긴 뼛조각이 관절에 박혀 수술을 했다. 그 이후로 주먹이 완전히 쥐어지지 않았다. 잦은 어깨 부상과 디스크, 후유증까지 겹쳐 복싱을 그만뒀다.
그래도 후회하진 않는다. 어머니의 보이지 않는 노력 덕분에, 내 인생에서 가장 찬란하게 살 수 있었던 시간이었음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