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뚝뚝한 다정함

하얀 소금자국

by 여담

나는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와 자주 놀러 다녔다. 아버지는 취미가 정말 많으셨다. 낚시부터 캠핑, 등산, 요리까지, 그야말로 취미 부자였다. 어머니와 동생은 아버지의 취미와 잘 맞지 않았고, 그래서 아버지는 늘 나와 단둘이 시간을 보냈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지금도 나는 쉬는 날이면 종종 캠핑이나 낚시를 다닌다. 아버지와의 캠핑은 특별히 뭘 하겠다고 계획을 세우는 시간이 아니었다. 캠핑을 가도 텐트를 치고 나면 각자 누워 휴대폰을 보거나 낮잠을 잤다. 해가 지면 간단하게 개인 화로를 꺼내 각자 고기를 굽고, 그렇게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전부였다.

고등학교 시절, 여름방학을 맞아 아버지와 캠핑을 간 적이 있다. 캠핑장에 가기 전 마트에 들러 둘이 먹을 만큼의 간단한 음식들을 사고, 작은 계곡 옆 조용한 산속 캠핑장으로 향했다. 하늘에는 새하얀 구름들이 띄엄띄엄 떠 있었지만, 햇볕을 막아주기엔 너무 작아 보였다. 늘 그렇듯 도착하자마자 차에 실려 있던 짐을 풀고 텐트를 쳤다. 전날 내린 비로 땅은 젖어 있었고, 덥고 습한 날씨에 시커먼 남자 둘은 땀을 뻘뻘 흘렸다. 텐트를 다 치고 나니 할 게 없었다. 그렇다고 아버지와 어색한 것도 아니었다. 작은 선풍기를 하나씩 틀고, 땀에 젖은 옷 그대로 텐트에 누워 낮잠을 잤다.

눈을 뜨니 밖은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텐트 밖에서는 아버지가 장작에 불을 지피고 계셨다. 담배를 하나 피우시던 아버지는 나를 보며 말했다.

“밥 먹자.”

잠이 덜 깬 채로 텐트 밖으로 나왔다. 저녁은 찌개 하나와 출발할 때 사 온 고기, 해산물, 냉동 닭발이었다. 캄캄한 산속에서 각자 개인 화로를 꺼내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고기를 먹다가, 문득 아버지의 옷이 눈에 들어왔다. 검은 반팔 티셔츠가 땀에 젖어 하얀 소금 자국이 생겨 있었다.

그때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자신의 화로 위에 있던 고기를 내 화로 위로 옮기고 계셨다. 전복도, 닭발도, 가래떡도 하나둘 내 화로 위에 올라왔다. 더 올릴 자리가 없으면 고기 위에 고기를 쌓아 올리셨다. “많이 먹어라”라는 말도, “잘 먹고 있냐”는 말도 없었다. 무표정한 얼굴과 달리 손만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잘 먹고, 간단히 뒷정리를 한 뒤 먼저 텐트로 들어왔다. 선풍기를 켜려다 고장이 난 걸 알았다. 이상하다 싶어 보니 낮에 아버지가 쓰시던 선풍기였다. 말씀드리니 하나 더 있다며 신경 쓰지 말라고 하셨다. 그렇게 먼저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뜨니 아버지는 라면을 끓여놓고 담배를 피우고 계셨다. 나를 보며 어제와 똑같이 말했다.

“밥 먹자.”

라면을 먹고 내가 설거지를 하는 사이, 아버지는 텐트를 다 걷고 집에 갈 준비를 마쳐놓으셨다. 짐을 싣다 보니 고장 난 선풍기와 내가 쓰던 선풍기 말고는 다른 선풍기가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전날보다 더 선명한 소금 자국이 남은 검은 티셔츠를 입고 계셨다.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가 나오셨다. 아버지의 옷을 보며 이런 더운 날 괜히 고생하고 왔다고 구박하셨다. 내 옷은 깨끗했다. 나는 그저 시원하게 자고, 밥 잘 먹고, 잘 놀고 왔을 뿐이었다. 아버지는 재밌었다고만 말씀하시고 화장실로 들어가셨다. 나는 옷을 갈아입고 낮잠을 잤다.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되고, 결혼을 앞두고 아내와 캠핑을 갔다. 더운 여름날, 나는 힘든 줄도 모르고 아내가 더울까 봐 서둘러 텐트를 치고 불을 피워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한참 놀다 아내가 내 옷을 보며 많이 덥냐고 물었다. 옷에는 예전에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하얀 소금 자국이 남아 있었다.

나는 괜찮다며 고기를 계속 아내 앞에 올려놓았다. 아내 접시 위에 고기 탑이 쌓였다. 더운 줄도 몰랐다. 씻고 잘 준비를 하고 텐트에 들어갔다가, 한밤중에 화장실에 가려고 잠깐 일어났다. 아내에게 주었던 선풍기는 배터리가 나가 꺼져 있었다. 나는 내 선풍기를 아내 쪽으로 옮기고 다시 누웠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옷은 땀범벅이었다. 조용히 텐트 밖으로 나와 라면을 끓이고 아내를 깨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 앞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이 보였다. 하얀 소금 자국이 남은 검은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 모습이 아버지와 참 많이 닮아 있었다.

그때 알았다. 예전에 내가 보았던 아버지의 소금 자국과 지금 내 옷에 남은 소금 자국은, 누군가를 깊이 아끼고 사랑하는 만큼 생긴다는 걸. 걱정할까 봐 티 내지 않고, 무뚝뚝하게 행동하던 마음이 옷에 먼저 드러난다는 걸. 요즘은 아내와 어머니, 동생까지 다 같이 캠핑을 가면 나와 아버지는 나란히 앉아 있다. 둘 다 검은 티셔츠에 하얀 소금 자국을 남긴 채로, 말 없이 다정함을 티 내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빛바랜 모자와 낡은 영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