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하지만 조금은 이상한

시작한 김에 끝까지

by 여담

나에게는 이상한 방향으로 늘 성실한 친구가 있다. 그 친구를 처음 만난 건 초등학교 때였다. 같은 골목에 살았고, 집 근처 놀이터에서 만나 자연스럽게 놀게 됐다. 그때 우리를 이어준 건 ‘유희왕’이라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기반으로 한 카드 게임이었다. 우리는 시간이 날 때마다 놀이터에 모여 카드 게임을 했다. 서로의 집에 놀러 갈 정도로 친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멀어졌다. 그 친구를 다시 만난 건 중학교에 올라가서였다.

처음엔 서로를 잘 알아보지 못했다. 그런데 반에서 조금 익숙한 사람이 어릴 때 재미있게 하던 카드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때 알아봤다. 아, 이 친구는 예전 그대로구나 싶었다. 변한 건 키와 얼굴뿐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그 카드 게임을 하며 어릴 때처럼 친해졌다.

이 친구는 뭔가에 꽂히면 이상할 정도로 끝까지 간다. 당시에는 조금 생소한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는데, 보고 싶은 작품에 한국어 자막이 없다는 이유로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다. 취미로 조금 해보는 수준이 아니었다. 결국 나중에는 자격증을 따고 직접 애니메이션에 자막을 달아서 보고 있었다. 나라면 저렇게 까지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걸 보고 나는 웃으면서도 이상하게 인정하게 됐다.
아, 이 친구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지.

겉모습은 또 전혀 다르다. 힘이 엄청 세고, 얼굴도 엄청 강하게 생겼다. 처음 보면 조금 무서운 인상이다. 그런데 취미가 피아노다. 조용히 앉아서 헤드셋을 머리에 쓰고 건반을 누르는 모습은 그 험상궂은 외모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피아노 연주 실력이 뛰어나서 더 기억에 남았다. 이 친구의 꿈은 여행 가이드다. 세계를 여행 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살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헬스는 정말 미친 듯이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여행 가이드의 모습이 아니라 마동석 배우님 같은 몸으로 변해 갔다. 팔뚝이 너무 두꺼워서 정장 셔츠를 맞춰 입어야 할 정도였다. 그 몸으로 잠깐 호텔에서 일했을 때는 솔직히 좀 웃겼다. 비웃는 게 아닌, 순수하게 너무 웃겼다. 손님을 안내해야 할 사람이 너무 든든해 보였다. 누가 봐도 경호원 같았기 때문이다.

성인이 되고 나서 그는 일본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그 친구를 배웅해 줄 겸 친구들과 첫 해외여행을 갔었다. 그때 처음으로 친구가 일본어를 하는 모습을 봤다. 늘 어딘가 이상하고 조금은 바보 같은 친구에게서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멋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일본과 한국을 오가던 친구는 잠시 한국에 들어와 일본 대학 진학을 목표로 공부하고 있다. 돌아보면 이상할 것도 없다. 애니메이션 때문에 언어를 배우던 사람이 결국 그 나라로 간 거니까.

이 친구를 오래 보면서 느낀 건 하나다. 이 사람은 늘 자기 방향으로 성실하다. 남들이 보기엔 조금 특이하고 조금 엉뚱해 보여도, 자기가 좋아하는 세계를 절대 가볍게 대하지 않는다. 항상 최선을 다한다. 어떤 일에 빠져들면 잠까지 줄여 가며 끝장을 본다.

어릴 땐 그냥 재미있고 조금 특이한 친구라고 생각했다. 10년을 넘게 알고 지낸 지금은 안다. 저런 사람은 생각보다 흔하지 않다는 걸. 그래서 나는 이 친구를 꽤 진지하게 존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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