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이나 먹자

도와달라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 옆에 남는 일

by 여담

친구가 단체 채팅방을 나갔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이상하게 가볍게 넘길 수가 없었다. 알 수 없는 작별 인사를 남기고 나간 점이 마음에 걸렸다. 연락을 해봤지만 답이 없었다. 휴대폰을 내려놓았다가 다시 들여다보는 일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같은 채팅방에 있는 다른 친구들에게도 연락을 돌려봤지만 별다른 일은 없었다. 별일 아니겠지 하고 넘기려고 했지만,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집에서 나왔다. 이미 마음속에는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친구 집은 내가 사는 곳과 멀지 않았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도 없이 몸이 먼저 움직였다. 괜히 난리 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가봐서 나쁠 건 없다는 생각이 함께 따라왔다.
친구 집에 도착했을 때, 다행히 경찰이 와 있었다. 같은 채팅방에 있던 다른 친구가 먼저 신고를 한 것이었다. 경찰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니 친구가 보였다. 다행히 큰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경찰분들과 함께 근처 파출소에 갔다. 조금 시간이 지나 파출소에서 나온 친구의 얼굴을 보고 알았다. 괜찮지 않다는 걸, 이미 한참 무너진 상태라는 걸.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다. 왜 먼저 말하지 않았냐고, 왜 혼자 버티고 있었냐고 화라도 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밥이나 먹자.”
식당에 앉아서야 겨우 말을 꺼낼 수 있었다. 왜 그랬냐고, 왜 아무 말도 없이 혼자 힘들어하고 있었냐고. 친구는 한참을 말하지 않았다. 그러다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도와달라고 말하는 것도 힘들다.”
그 한마디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야기를 들을수록 상황은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몸이 아파 직장을 그만뒀고, 그 과정에서 금전적인 문제들이 함께 생겼다고 했다. 그래서 그냥 알아서 정리하고 싶었다고 했다. 도움받는 것도 싫고, 누군가에게 짐이 되는 것도 싫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화가 나기보다는 이상하게 마음이 가라앉았다. 고집을 부리는 사람의 말이 아니라, 너무 오래 혼자 버텨온 사람의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말을 했다.
“그럼 내가 알아서 도울 테니까,
넌 그냥 받기나 해.”
설명하지 않았고, 설득하지도 않았다. 그날은 그런 방식 말고는 떠오르지 않았다.

식당을 나와 바로 지인에게 전화를 했다. 마침 회사에서 사람을 구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면접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친구의 상황은 말하지 않았다. 괜히 연약한 사람으로 보이게 하고 싶지 않았고, 동정으로 시작되는 기회는 오히려 친구를 더 작게 만들 것 같았다. 친구는 면접을 봤고, 다행히 회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큰 변화는 아니었다. 월급이 들어왔고, 밀린 문제들을 하나씩 정리할 수 있었고, 병원에도 다니기 시작했다. 아주 조금씩이지만 상황은 바뀌고 있었다. 나는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계속해서 걱정했다. 억지로 끌어당긴 도움이 혹시 친구를 더 힘들게 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됐다. 도와달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은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이미 너무 많이 버텨버린 상태라는 걸. 그래서 그럴 때는 선택지를 주는 것보다 옆에서 조용히 방향을 틀어주는 게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게 정답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오히려 또 다른 부담이 될 수도 있다. 다만 가끔은 억지로라도 움직이게 하는 게 그 사람을 다시 일상으로 끌어오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도와달라고 말하지 못할 때, 그 침묵을 존중하는 것보다 그 침묵을 깨는 용기가 더 필요한 순간도 있다. 나는 그날, 그 용기를 선택했을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성실하지만 조금은 이상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