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우울을 신호로 받아들이기까지
이유 없이 불안할 때가 있다.
특별히 나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누군가와 싸운 것도 아닌데 마음이 가라앉는다.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비교적 괜찮다. 수다를 떨고 실없이 웃으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는 불안한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 되면 불안은 기다렸다는 것처럼 다시 나타난다. 내가 혼자가 되는 순간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가끔은 불안보다 우울감이 먼저 나타난다. 아무 일도 하기 싫어지고, 괜히 모든 게 귀찮아진다. 우울은 쓸데없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게 만든다.
몸이 다치거나 아픈 건 그래도 견딜 수 있다. 어디가 아픈지 알고, 왜 아픈지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유가 분명한 고통에는 끝이 있다. 그리고 회복하는 방법과 과정이 뚜렷하다. 그래서 버틸 수 있다. 하지만 이유 없이 우울하고 불안해지는 감정은 다르다. 어디를 고쳐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언제 끝날지도 알 수 없다. 그럴 때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처음에는 아주 사소한 생각이었는데, 어느새 나를 향한 재촉이 되고, 답을 찾지 못한 채 같은 자리에서 맴돈다. 그 생각들은 나를 더 몰아붙인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다들 그렇게 산다고. 불안한 마음 하나쯤은 누구에게나 있다고. 그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도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버티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말이 위로가 되지는 않는 걸 잘 알고 있다. 모두가 힘들다고 해서 내 마음이 가벼워지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나만 유난인 것처럼 말할 수도 없다. 그래서 나는 말 대신 버티는 쪽을 선택한다. 버티면서 바쁘게 지내면 자연스럽게 안 좋은 감정들이 사라진다.
나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밝은 사람으로 보이려고 노력한다. 그 이미지가 싫지 않다. 오히려 마음에 든다. 괜찮아 보이는 사람으로 살면 많은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된다. 힘들다는 말을 꺼내지 않아도 되고, 괜히 분위기를 흐리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나는 웃고, 괜찮은 척을 한다. 사람들에게 ‘만나면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무리 시간을 보내도 기분이 돌아오지 않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제야 상담을 받아보기로 했다. 상담이라고 해서 특별한 건 없었다. 그냥 조금 편안하게 대화하는 느낌이었다. 대화를 하던 상담사는 내게 지금은 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교대근무를 한 지는 3년이 조금 넘었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이틀씩 밤을 새우며 지내기도 했고, 반대로 한 번에 열두 시간 이상씩 자는 날도 주기적으로 있었다. 그래서 나는 상담사에게 충분히 쉬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상담사는 그건 쉼이 아니라고 했다. 그건 회복이 아니라 단순히 몸이 멈춰 있는 상태에 가깝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누워서, 어디에도 쫓기지 않고, 누구와도 연결되지 않은 채 온전히 쉬는 시간 말이다.
그 뒤로 나는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고 일부러 쉬는 날을 정했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누워서 천장을 보고, 생각이 떠오르면 흘려보내려고 했다. 아내도 내가 쉬는 날이면 외출을 하거나 방에 들어오지 않는 식으로 나를 온전히 혼자 두었다.
눈에 띄게 좋아지지는 않았다. 불안이 단번에 사라지지도 않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이제는 내가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유를 알면 감정은 조금 달라진다. 다시 불안해지면 잠시 멈춰 서서 생각한다. 아, 내가 지금 많이 지쳐 있구나. 그래서 이런 감정이 오는구나.
여전히 힘들기는 하지만, 이전처럼 겁이 나지는 않는다. 이제는 이 감정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불안과 우울은 내가 고장 났다는 증거가 아니라, 쉬어야 한다는 신호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