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걱정
올해 늦은 여름,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너무 춥지도, 너무 덥지도 않은 좋은 날이었다. 오래 힘드시지 않고 편안히 돌아가셨다. 가족들 모두 슬퍼했지만, 너무 힘들지 않게 잘 보내드렸고 장례식은 차분히 마무리되었다. 발인을 위해 당진의 선산으로 가족들이 함께 이동했다.
장지에는 가족들 외에도 할아버지 장례를 도와주기 위해 와준 내 친구들 세 명과, 아버지가 어렸을 때부터 친하게 지내온 친구분들 여섯 분이 함께했다. 할아버지를 잘 모신 뒤, 아버지는 친구분들과 모였고 나는 내 친구들과 따로 모여 있었다. 위로와 걱정보다는 “끝나고 다음에 술이나 한잔하자”는 식의 가벼운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 할아버지의 묘가 어느 정도 정리되었을 때, 할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애기들 와서 인사드려라.”
나와 친구들은 할머니께서 우리를 부르신 줄 알고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리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너무나 걸쭉하고 굵은 목소리의 대답이 들려왔다.
“예, 어머니. 얘들아 가자.”
모두가 떠올렸던 ‘손주들’이 아니라, 나이 오십은 훌쩍 넘어 보이는, 건달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모습의 아저씨들이었다. 아버지와 그의 친구들이었다. 검은 옷을 입은, 다들 한 성격 할 것 같은 사람들이었다. 그 모습을 보자 슬퍼하시던 할머니와 다른 가족들 모두가 소리 내어 크게 웃었다. ‘애기들’이라는 할머니의 말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장정들의 모습이 너무 웃겼기 때문이다.
당연하다는 듯 나온 그 아저씨들은 모두 할머니의 “애기들”이라는 호칭에 자연스럽게 반응했다. 그렇게 아버지와 친구분들이 먼저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리고, 그다음에야 처음에 할머니께서 부르셨던 진짜 애기들인 나와 내 친구들이 인사를 드렸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은 슬프지만 웃는 얼굴로 할아버지를 잘 보내드렸다.
우리 집에는 여러 ‘애기들’이 있다.
삼 남매 중 막내아들인 우리 아버지도 애기고, 그 애기의 막내아들인 내 남동생도 애기다. 최근 내가 결혼하면서, 내 아내도 애기가 되었다. 어려서부터 들어왔던 그 따뜻한 호칭이 나는 좋았다. 그래서인지 우리 집에서는 동생이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여전히 애기라고 불린다.
할머니 댁에 다 같이 모여 있을 때면, 할머니의
“애기 좀 오라고 해라”
한마디에 다 큰 성인 세 명이 우르르 달려 나오기도 한다.
그저 친근한 애칭 정도로만 생각하며 살다가, 얼마 전 할머니를 뵙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여쭤봤다.
“할머니, 아버지도 동생도 다 커서 어딜 가도 아저씨 소리 듣는데요. 할머니 눈에는 아직도 애기 같으세요?”
할머니는 그저 크게 웃으시더니, 아주 간단하게 말씀하셨다.
“애기는 그냥 애기인 거야.”
나는 그 말뜻을 그때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게 할머니와 수다를 떨었다. 어디 아프신 곳은 없는지, 하시는 일은 힘들지 않으신지, 요즘은 어떤 게 재미있으신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할머니의 대답 뒤에는 늘 아버지와 동생, 그리고 내 아내에 대한 걱정이 따라왔다. 아버지는 어디 아프신 곳은 없는지, 동생이 하는 일은 잘되어 가는지, 아내는 뭘 좋아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내가 할머니께 질문을 하면, 할머니는 세 명의 애기들 걱정으로 대답을 하셨다. 그러다 보니 문득, 할머니의 “애기는 그냥 애기인 거야”라는 말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할머니의 애기는 어디 가서 소 한 마리는 거뜬히 잡을 것 같은 아버지였고, 다 커서 일도 하고 요즘은 술집에서 신분증 검사도 잘 안 받는 동생이었고, 우리 집에 시집온 내 아내였다. 어디에 있든 늘 걱정되는 가족들이었다.
그날 장례식장에 와 주셨던 아버지의 친구분들도, 나와 내 친구들도, 할머니에게는 그저 어릴 적부터 지켜봐 온 소중한 애기들이었을 것이다.
이제는 나이가 제법 많아지셔서 가족들이 걱정하는 할머니는, 사실 가족들보다 더 오래, 더 깊이 그 가족들을 걱정하고 계셨다. ‘애기들’이 다 커서 한 가정의 가장이 되고, 어머니와 아버지가 되어도 여전히 할머니 품 안에서는 애기들일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할머니는 다 큰 애기들을 걱정하고, 사랑하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