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되는 바보 같은 이유
중학교를 입학하고 모두 어느 정도 친구가 되었을 초여름 아직 조금은 서먹서먹하고 어색한 친구가 있었다. 둘 다 반에서 조용하고 특별히 인기가 많은 성향은 아니었다. 그저 친구의 친구정도 사이였다.
그 친구와 처음으로 얘기를 나눈 건 과학탐구 동아리에서였다. 둘 다 과학을 좋아했다. 그리고 둘 다 소심했다. 그냥 간단하게 이름이 무엇인지 몇 반인지 어디 사는지 등을 물어보는 형식적인 대화가 다였다. 이후로 몇 주가 흘렀다. 여느 때와 같이 동아리 시간에만 마주친 친구와 간단히 인사만 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날은 소의 눈알을 해부하는 날이었다. 그 나와 친구는 서로 다른 조에 속해있었다.
수업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고가 발생했다. 내가 해부하던 눈알이 터져버린 것이었다. 터진 소의 눈알은 내 옷과 머리에 쏟아졌다. 비릿하고 역한 냄새와 끈적한 액체가 머리와 옷에 잔뜩 묻어있었다. 너무 놀라 아무것도 못하고 있을 때 조금 떨어진 곳에서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 친구였다. 평소에 조용하던 친구가 너무 큰소리로 웃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같이 웃었다. 기분 나쁘고 찝찝한 건 다 잊어버렸다. 같은 반에 있던 친구들 가운데 나와 그 친구만 웃었다. 웃다가 선생님 말씀에 교복을 갈아입으러 교실로 올라갔다. 냄새가 나는 교복을 체육복으로 갈아입었다. 더러워진 교복과 머리를 간단하게 씻고 교실로 돌아오니 수업은 끝나있었다. 교실을 나가다 그 친구와 다시 마주쳤다. 그리고 둘이 다시 웃었다. 왜 웃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둘만 웃겼다. 그리고 내가 말했다.
"우리 집에 고슴도치 보러 갈래?"
지금 보면 이성을 꼬시는 진부한 멘트 같은 말을 아무 생각 없이 뱉었던 것 같다. 이런 멘트에 친구는 넘어왔다. 그리고 그날 하교 후 같이 우리 집에 놀러 갔다.
아무도 없는 집에 친구를 초대하니 다시 어색해졌다. 나는 어색한 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얼른 고슴도치를 꺼내 친구에게 안겨주었다. 친구도 어색했는지 고슴도치를 받아 들고 조용히 구경했다. 또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그때 친구를 집에 초대하면 항상 과일이나 간단한 간식거리를 내어주시던 어머니가 생각났다. 나는 급하게 친구에게 국수를 해주겠다고 했다. 살면서 요리라고는 라면과 계란프라이가 전부였다. 집에 라면이 없었다. 그래서 비슷한 국수라도 해주겠다고 한 것 같다. 친구도 도와주겠다고 하면서 주방으로 왔다.
자신만만하게 얘기한 것과는 별개로 해본 적 없는 요리라 만드는 법을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처음에 친구는 이놈은 뭐 하는 놈이지 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다가 설명을 해주었다. 친구의 설명대로 먼저 냄비에 물을 받아서 불에 올렸다. 소면을 한 움큼 집어 물에 넣었다. 국수는 시작부터 순탄하지 못했다. 냄비가 낮았던 건지 불이 강했던 건지 냄비 옆으로 올라오던 가스불이 소면에 옮겨 붙었다. 나와 친구는 불타고 있는 소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소면은 상상하는 것보다 더 활활 잘 타올랐다. 불타고 있는 소면은 검은 연기를 내뿜으면서 구부러졌다. 나는 놀란 마음에 집게로 불타고 있는 소면을 얼른 물에 집어넣었다. 불은 꺼졌지만 물 색깔이 검게 변해버렸다. 중간에 물도 두 번이나 넘치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검은 소면을 만들었다.
무슨 사명감이 들었는지 나는 꼭 친구에게 국수를 먹이겠다고 생각했다. 친구는 계속 괜찮다고 했지만 나는 친구를 다시 고슴도치 앞에 데려다 놓고 다시 검은 소면 앞에 섰다. 살짝 맛을 보니 조금 탄 냄새가 나고 쌉쌀하지만 그럭저럭 먹을만했다. 색이라도 감추면 괜찮겠지 생각했다. 친구에게 비빔국수도 괜찮냐고 물어보니 비빔국수도 좋아한다고 했다. 물론 비빔국수 양념은 만들 줄 몰랐다. 다시 친구에 뭐 하는 놈이지 하는 눈빛을 뒤로하고 친구에 말대로 양념을 만들기 위해 냉장고를 열었다. 냉장고에는 친구가 설명해 준 양념을 만들만한 재료가 없었다. 그러다 냉장고 한 구석에 빨간색 통에 소스를 발견했다. 캡사이신이라 적혀있는 소스였다. 캡사이신이 뭔지 잘 몰랐지만 평소 아버지가 요리하실 때 자주 사용하시는 걸 봤다. 나는 아버지 요리도 맛있었으니 이 소스를 넣으면 맛있어질 거라고 확신했다. 친구가 말한 고추장 대신 한치에 망설임도 없이 캡사이신을 검게 타버린 소면 위에 가득 부었다. 처음 맛을 보니 너무 쓰고 맵고 맛이 없었다. 색도 내가 평소에 먹던 비빔국수보다 연했다. 어떻게든 맛있게 만들기 위해 검은 소면 위에 캡사이신과 설탕을 들이부었다. 그렇게 엄청 달고 쓰고 매운 검붉은 비빔국수가 만들어졌다.
처음 맛본 그 음식이라고 말하기도 미안한 국수를 친구에게 대접했다. 친구는 이거 괜찮아라고 물어봤다. 속이 아플 정도로 매운 그 국수를 나는 두 젓가락을 더 먹으면서 맛있다고 평온한 얼굴로 거짓말을 했다. 성의를 생각해서인지 친구는 국수를 한입 가득 밀어 넣어다. 그리고 나와 친구는 둘 다 이상한 괴성을 지르며 쓰러졌다. 너무 매워서 정신도 못 차리고 나는 싱크대에 친구는 화장실 세면대로 달려갔다. 각자 입에 물호스를 물고 힘들어하고 있을 때 친구가 말했다. 올리브유에 매운맛을 분해하는 성분이 있으니 올리브유를 먹자는 말이었다. 눈물 콧물로 범벅된 얼굴로 부엌 찬장을 열어 올리브유를 찾아보니 올리브유는 없고 식용유만 두통 있었다. 우리는 각자 한 통씩 입에 들이부었다. 그리고 우웩 하는 소리와 함께 싱크대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 뒤로는 잘 기억이 안 난다. 식용유를 더 먹어보려다 실패하고 정신이 들 때까지 물호스를 물고 있었던 것 같다. 한참이 지나서 둘 다 정신을 차렸을 때 옷과 얼굴은 물과 식용유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서로에 망가진 얼굴을 봤을 때 피식 웃음이 났다. 우리는 망가진 얼굴로 난장판이 된 주방을 정리했다. 속은 아프고 기진맥진했지만 그때 처음으로 가장 길게 대화를 했다. 한참을 웃고 떠들다 보니 부모님이 오실 시간이 되어 친구는 집에 돌아갔다.
다음날 등굣길에 학교 앞 사거리에서 친구와 마주쳤다. 교실로 가는 그 짧은 길에서 우리는 어제 일을 얘기하며 깔깔 웃었다. 그날 이후로 거의 매일 만나서 놀며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10년이 한참 지난 지금까지도 술자리에서 우리가 어떻게 친해졌지 얘기하면 둘 다 그 검붉은 캡사이신 국수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친구가 되는 이유는 특별할 게 없다. 그냥 얼굴만 봐도 웃기고 매번 같은 추억거리를 얘기할 수 있다면 그게 친구라고 생각한다. 내가 가장 바보같이 있을 수 있는 소중한 관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