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는 인연

소금 주먹밥

by 여담

나의 부모님은 어릴 때 서로 옆동네에 살았다. 어머니는 4남매 중 장녀로 어려운 가정 속에서 어려서부터 바쁜 할머니를 대신해 동생들을 챙기고 집안일을 도맡아 해온 장녀였다. 할머니가 장사하실 때 사용하시려고 사 오신 천엽을 걸레로 착각해 마룻바닥을 다 닦았을 정도로 아무것도 몰랐던 책임감만 엄청 가진 그런 소녀였다. 그 일로 엄청 혼났다는 얘기를 4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한 번씩 하신다. 집안일과 학업만 열심히 하느라 친구도 많지 않고 내성적인 어머니는 조용한데 예쁜 학생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동네에서 흔히 말하는 유명한 "통"이었다. 요즘 말로는 잘 나가는 사람 중에 제일 잘 나갔다고 한다. 3남매 중 막내아들로 집에 있는 날 보다 나가서 있는 날이 더 많았다고 했다. 할머니가 학교에 매일 불려 다니고 길에서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다른 학교 학생들과 싸우는 일도 많았다고 하신다. 돈을 뺐거나 누구를 괴롭히는 양아치는 아니었다고 한다. 그때 그 우정 그대로 아버지와 친구분들은 지금까지도 매우 가깝게 지내신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다른 사람이었다.


서로 얼굴도 이름도 어디 사는지도 모르던 어머니와 아버지는 서로를 알기 전 조금 웃긴 인연으로 먼저 만나셨다. 어느 추운 겨울날 집안일을 하고 있던 어머니는 셋째 동생이던 삼촌에 급한 부탁을 받으셨다.

"누나 아는 형이 집을 나왔는데 아무것도 못 먹고 있대 너무 춥고 배고프대"

어머니는 어린 동생이 귀엽기도 하고 그 굶고 있다던 형도 안쓰러웠는지 하얀 밥에 소금과 약간의 참기름만 넣어서 주먹밥을 만들어 주셨다. 어머니는 주시면서 삼촌에게

"이거 먹고 날 추우니까 얼른 집에 들어가라 그래"라고 하시며 주먹밥을 들려 보냈다고 하셨다. 어머니 말로는 아는 형이라고 해봤자 자신보다 동생이겠거니 생각했다고 하셨다. 그 아는 형이 자신보다 나이가 많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하셨다. 삼촌은 그 주먹밥을 받아 들고는 얼른 아버지께 달려가 누나가 만들어 줬다고 해맑게 웃으면서 아버지께 주먹밥을 주었다고 한다. 소금과 약간의 참기름만 들어간 그 소금 주먹밥을 맛있게 드신 아버지는 그때 어머니의 존재를 처음 아셨다고 했다. 물론 집에는 한참 나중에야 들어가셨다고 했다.


한참 시간이 지나서 아버지는 옆동네에 이쁜 애가 있다고 들었다. 궁금해진 아버지는 그때부터 어머니를 찾아가 열심히 쫓아다니셨다. 어머니는 아버지에 그런 모습이 좋다기보다는 꾸준히 찾아오는 모습과 소문보다 착한 것 같은 아버지의 행실이 마음에 드셨다고 한다.(아버지가 좋아한다고 하니까 주변에 치근덕대는 사람이 줄어든 것도 좋아하셨다.) 나중에 연애를 하고 한참 지나서 삼촌과 같이 만날 일이 생겼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 아는 형과 착한 누나가 서로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아셨다고 하셨다. 그렇게 어머니와 아버지는 10년을 연애하고 결혼을 하셨다.


어느 날엔가 아버지와 어머니께 왜 결혼을 결심하게 되셨냐고 여쭤보니 아버지는 그 조촐한 주먹밥이 너무 따뜻하고 맛있었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그때는 오래 연애하면 당연히 결혼을 하는 거라고 생각하셔서 결혼을 하셨다고 하셨다. 삼촌이 열심히 들고 간 그 주먹밥이 지금의 부모님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조금 웃기면서 사소한 인연이 인생에 큰 부분을 바꿀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 사소하고 조금은 웃긴 인연이 지금에 부모님이 되고 우리 가족을 만들어 줬다. 인연이란 게 참 재밌다. 서로 너무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재밌는 추억을 만들었다. 연애 초 아버지와 그 친구들이 어머니 집에 놀러 가 몰래 담배를 태우다 어린 막내이모에게 돌을 맞기도 하고 어머니를 좋아하던 학교 전교회장이 집을 나갔을 때 옆동네 아버지가 친구들을 풀어서 잡아다 집에 귀가시킨 일도 있었다. 이런 웃기면서 그 시절에만 할 수 있었던 일들은 우리 부모님의 추억거리가 되었다.


여담이지만 아버지의 그 친구들도 어머니에 친구분들을 소개받아서 결혼하셨다. 지금까지도 1년에 몇 번씩 모여 술자리를 가지며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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