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타인과 함께한 점심

여행지에서만 가능한 이름 없는 동행

by 여담

여행을 가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프랑스의 에펠탑이나 일본의 후지산처럼 그 장소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것을 보기 위해서, 각 지역을 대표하는 요리를 먹어보기 위해 떠나기도 한다. 나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구경하러 여행을 떠난다. 이런 여행의 목적은 친구들과 떠난 첫 해외여행에서의 경험 덕분이다.

몇 해 전, 친구들과 일본 오사카로 첫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처음 가는 해외여행은 거리를 걷기만 해도 너무 즐거웠다. 여행 마지막 날, 친구들은 대학교 수강 신청을 위해 숙소에 남아 있었고 나는 홀로 숙소를 나섰다. 직장을 다니고 있던 나는 먼저 귀국을 해야만 했다. 오후에 귀국하기 전 마지막 목적지는 도톤보리였다.

친구들과 로밍을 하지 않고 휴대용 와이파이 하나만 가지고 여행을 시작했었다. 마지막 날은 인터넷 없이 혼자 여행을 해야 했다. 숙소를 나서기 전 도톤보리까지 가는 길을 미리 캡처해서 숙소를 나왔다. 하지만 시작부터 문제가 생겼다. 캡처한 사진들은 일본어로 된 것이었고, 나는 도톤보리를 일본어로 읽을 줄 몰랐다. 쓸 데가 없어진 휴대폰을 들고 낯선 지하철역 한복판에서 길을 잃어버렸다.

번역기와 지도를 쓸 수 없어진 나는 지하철 전광판 앞에서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하지도 못하는 일본어를 열심히 쳐다보고 있을 때, 한 사람이 다가왔다. 대머리에 세월이 느껴지는 편안한 인상의 일본인 아저씨였다. 그가 하는 말을 알아듣지는 못했다.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나는 간절함을 담아 “도톤보리”라는 단어만을 반복했다.

아저씨는 짧은 영어로 “Follow me.”라고 말하며 나를 데리고 지하철에 올라탔다. 지하철에 나란히 몸을 싣고 가는 동안, 나는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해외에서 처음 만난 사람을 따라가는 것이 조금은 걱정이 됐다. 하지만 아저씨는 계속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며 앞장서서 걷기만 하셨다. 그의 단호하고도 친절한 걸음걸이에서 왠지 모르게 괜찮을 것 같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시간이 지나 지하철 안내 방송에서 “도톤보리”라는 단어가 흘러나오자, 아저씨는 환하게 웃으며 다시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셨다. 도톤보리에 무사히 도착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정중한 몸짓과 어눌한 일본어로 감사를 표하고 길을 나섰다. 그 아저씨는 가려는 나를 붙잡고 말했다. 나를 이해시키려는 듯 아저씨는 천천히 일본어로 이야기하며 손으로 밥을 먹는 흉내를 내고 계셨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중간중간 “고항”이라는 단어만 알아들었다. ‘밥’이라는 말이었다. 마침 배가 고팠다. 아저씨는 처음 마주쳤을 때와 같은 미소로 점심을 먹자고 제안했다.

예정에 없던 동행이었다. 나는 그를 따라 도톤보리 강변을 따라 난 좁은 골목길로 들어갔다. 아저씨를 따라간 곳은 화려한 간판들이 가득한 메인 거리가 아니었다. 페인트가 벗겨진 벽과 오래된 문어 그림이 그려진 타코야키 가게였다. 가게 안은 좁고, 주방을 바라보는 일자 테이블만 있었다. 아저씨는 일본어가 가득한 메뉴판을 건네주며 몇 가지 메뉴를 추천했다. 알아듣지 못하는 일본어를 듣던 나는 제일 저렴한 타코야키를 골랐다.

아저씨는 앞에 계신 사장님께 몇 가지를 더 주문하고 나에게 본인 휴대폰을 건네주었다. 그 휴대폰에는 번역 어플이 켜져 있었다. 화면에는 “여기 엄청 맛있습니다.”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그 후 휴대폰을 주고받으며 대화를 나눴다. 신기하게도 나와 그 아저씨는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았다. 이름이나 사는 곳, 하다못해 여행 중이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아저씨가 타코야키집을 칭찬하면 나는 기대된다는 대답을 했다. 딱 여행 중에 잠깐 만나고 지나쳐 갈 그 정도의 거리감이 느껴지는 대화였다. 어색하거나 불편하지 않은, 편안한 대화였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스티로폼 접시에 다섯 알의 큼지막한 타코야키가 나왔다. 내가 알던 타코야키와는 조금 달랐다. 가쓰오부시는 없었고, 정말 동그란 빵 같은 모습에 옆에는 분홍색 초생강이 조금 곁들여 나왔다. 타코야키를 먹기 전, 아저씨가 다시 휴대폰을 보여주었다. 사진 속 아저씨는 같은 자리에서 타코야키를 들고 환하게 웃고 계셨다. 그러면서 번역기를 다시 보여주셨다.

“단골입니다. 따라 먹으세요. 맛있습니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타코야키를 조심히 내려놓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는 먼저 타코야키를 가르고 속을 파먹은 뒤, 같이 나온 초생강과 함께 겉을 뜯어 드셨다. 나도 따라 먹었다. 내가 생각한 타코야키와는 전혀 다른 음식으로 느껴질 정도로 맛있었다. 나는 아저씨에게 “우마이”라고 말하며 정신없이 타코야키를 파먹고 뜯어먹었다. 한참 동안 아저씨와 “우마이”만 웃으며 반복했다.

음식만큼 식당 분위기도 인상적이었다. 햇빛도 잘 들어오지 않는 낡은 식당이 주는 안락함이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아저씨는 내 밥값까지 계산한 뒤, 내가 친구들과 만나기로 했던 글리코상 앞까지 나를 바래다주었다. 한적한 골목길을 나와 순식간에 수많은 인파가 쏟아지는 도심 한복판에 도착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 사이에서 그는 짧은 인사를 남기고 다시 그 좁은 골목 어딘가로 사라졌다. 정신없는 지하철에서 만나, 한적한 골목길 안에서 타코야키를 먹고 다시 북적이는 번화가에서 헤어졌다. 여행지니까 가능한 완벽한 타인과의 여행이었다. 이 잠깐의 만남은 앞으로의 여행에서도 완벽한 타인과의 여행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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