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을 멈추려던 선택이 나를 설명하게 만들었다.
나는 문제가 생기면 먼저 사과하는 편이었다. 누가 옳고 그른지를 따지기 전에, 상황을 가라앉히는 쪽을 맞다고 생각했다. 그게 문제를 가장 쉽게 해결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선택이 언제나 정답이 아니라는 걸 고등학교 때 알았다.
같은 반 친구와 오해가 생겼다. 그 일은 분명 내가 한 일이 아니었고, 사실관계도 분명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이미 화가 나 있었고, 다음날 학교에 가서 정식으로 문제 삼겠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상황이 더 커지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네가 화가 난 일은 사실은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나로 인해서 기분이 상했다면 미안하다고 덧붙였다. 그 말은 책임을 인정하는 사과라기보다는 친구의 화를 조금 풀어주고 갈등을 멈추기 위한 선택에 가까웠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학교에 등교해 보니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평소 큰 주목을 받는 학생이 아니었는데 친구들 입에서 내 이름이 나오고 있었다. 친한 친구는 나를 보자 반에서 데리고 나와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그제야 문제를 확인했다. 어제 내가 했던 그 사과는 맥락 없이 전달되었다. 오해라는 말은 사라지고, 사과했다는 사실만 남았다. 사람들은 내가 하지 않은 일보다 내가 먼저 고개를 숙였다는 행동을 더 쉽게 받아들였다. 나는 사과 한 번에 잘못을 인정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 순간부터 오해는 사실처럼 취급되기 시작했다. 학교 분위기는 빠르게 바뀌었다. 나중에는 일이 커져 선생님에게 불려 가 상황을 설명해야 했다.
나는 처음부터 차분히 정리해서 선생님께 상황을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내 얘기를 듣고 오해라는 사실을 아셨다. 후에 선생님은 화를 냈던 친구를 불러 내 상황을 설명해 주시고 반으로 돌려보냈다. 그런데 이상하게 분위기는 더 안 좋아져 있었다. 나를 오해한 그 친구와 그와 가까웠던 친구들은
왜 사과까지 해놓고 이제 와서 말을 바꾸냐며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화를 냈다. 그 장면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나는 말을 바꾼 적이 없었다. 처음부터 오해라고 말했고, 상대의 기분에 대해서만 사과했을 뿐이었다. 선생님도 이 부분을 친구에게 제대로 설명해 주셨다. 하지만 그 구분은 중요하지 않았다. 사과했다는 사실 하나로 이야기는 이미 단순화되어 있었다. 이미 굳어진 시선 앞에서 내 설명은 변명으로 밖에 안 들렸다.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사과는 언제나 관계를 회복시키지 않는다는 걸. 의도는 기록으로 남지 않고, 행동만 남는다는 걸. 그리고 그 행동은 누군가의 해석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나는 그 일을 겪고 나서 내 선택이 틀렸다고 느꼈다. 사과한 것이 아니라, 그 방식 자체가 잘못된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돌아보니 그 선택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건 내가 어떤 기준으로 사람을 대했는지를 보여준 장면이었다. 그때의 나는 사실보다 분위기를 먼저 고려하는 사람이었고, 사과하는 걸 가볍게 생각하고 하나에 문제해결 수단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편하게 관계 유지를 위해 했던 사과가 내가 짊어지지 않아도 될 책임까지 떠안게 만들었다. 그 선택은 나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지금의 나는 무조건 먼저 사과하지 않는다. 상황을 설명하고, 사실과 감정을 분리하려 한다. 상대가 불편해졌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하지 않은 일까지
내 책임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다. 그 선택은 나를 보호하는 법을 배우기 전의 선택이었다. 그 이후로 조금 더 신중하게 말을 고르고 있다. 상황을 해결하기 전에 나를 먼저 보호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