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함께했다는 이유로 놓지 못한 관계
고등학교 3년 내내 함께 등교한 친구가 있었다. 같은 버스를 탔고 집도 가까웠다. 아침이면 당연하게 연락을 했고, 거의 매일 같은 시간 같은 버스에서 만나 학교로 갔다. 등교와 하교를 함께하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우리는 서로를 꽤 잘 안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안 맞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친구의 말이나 행동,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많아졌다. 나는 그걸 그냥 넘기지 못했다. 잘못됐다고 느껴지면 꼭 말해야 직성이 풀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그 친구를 위해서라는 주제넘은 태도에 가까웠다. 나는 친구의 생각을 고쳐주려 했고, 그게 관계에 도움이 된다고 착각했다.
학교를 오가던 버스 안에서 한 시간 넘게 싸운 적도 있었다. 싸웠다기보다는 내가 화를 내면 그 친구가 무시하는 느낌에 가까웠다. 좁은 좌석에 나란히 앉아 서로 물러서지 않고 말을 쏟아냈다. 버스는 학교에 도착했지만 대화는 한 자리에 멈춰 있었다. 그때는 우리가 이렇게까지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저 설득하면 될 것이라고 믿었다.
어느 날 그 친구는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단체 채팅방을 나갔다. 나는 그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짜증이 났다. 문제를 피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 친구 집에 직접 찾아갔다.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는 지금도 정확히 모르겠다. 아마 내가 옳다는 걸 끝까지 확인받고 싶었던 것 같다. 결국 그 친구는 다시 채팅방에 들어왔다.
겉으로 보기에는 관계가 회복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분위기는 달라져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친구의 메시지는 점점 줄어들었다. 나와만 어색해진 게 아니라, 다른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대화는 이어졌지만 중심은 아니었다. 같이 모여 있어도 어색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관계를 이어가고 싶었다. 그래서 그 친구를 계속 모임에 불렀다. 어떻게든 같이 어울리게 하려고 했다. 혼자 떨어져 있는 게 더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불편함은 더 확실해졌다. 그 친구도 불편해했고, 다른 친구들도 불편해했다. 나는 관계를 지키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누구도 편하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우리는 결이 달랐다. 가치관도, 관계를 대하는 방식도 달랐다. 그런데 나는 그 다름을 인정하지 않았다. 오래 함께했다는 이유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믿었다. 좋은 의도라고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서로를 더 멀어지게 만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채팅방에서 그 친구 이야기는 나오지 않게 됐다. 자연스럽게 아무도 먼저 묻지 않았다. 나 역시 굳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내가 결혼할 때도 그 친구에게서 연락은 오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청첩장까지 준비해 두었지만, 끝내 건네지 않았다. 그 순간에도 아쉽거나 생각나지는 않았다.
지금 우리는 그냥 예전에 알던 사람이 되었다. 이상하게도 아쉽지도, 크게 속상하지도 않다. 나 역시 그 친구를 잊고 내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게 관계가 완전히 끝났다는 뜻인지, 이미 오래전에 끊어진 것인지는 모르겠다. 맞지 않는 결을 억지로 유지하는 건 관계를 지키는 일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 친구를 내가 더 괴롭게 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일상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이제는 그 사라짐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