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을 기다리지 않는 이유

특별한 날이 없어도 충분했던 시간들

by 여담

일상 속에는 특별한 날들이 있다.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기념일 같은 날들이다. 그런 날을 기다리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살아가는 재미 중 하나라고 한다. 주변을 보면 다들 그런 날을 챙기고 기대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렇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크리스마스는 나에게 특별한 날이라기보다 교회 가는 날이었다. 친구들이 선물을 이야기할 때 나는 교회에 갔다가 형들과 놀러 갈 생각을 했다. 학생 때는 연애를 많이 해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기념일을 챙길 기회도 많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잠깐 연애를 했었는데, 기념일에 운동하러 체육관에 가야 한다고 했다가 차이기도 했다. 그때는 그게 그렇게 큰일인지 몰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내 생일도 마찬가지였다. 어릴 때는 가족들이 챙겨줬었다. 어느 정도 크고 나서는 가족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바빠졌다. 한 번, 두 번씩 생일을 잊고 지내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내 생일을 잊고 지나갈 정도로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게 됐다. 생일 아침에 통신사나 자주 이용하던 안경점에서 생일 축하 메시지를 받았을 때 생일인 걸 알기도 했다.
부모님도 가끔은 지나치셨다. 대신 간단한 생일 축하 메시지와 용돈을 보내주셨다. 서운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집에 거의 없었고, 놀러 다니기 바빴다.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올해 생일에도 집에 잠깐 들렀는데 어머니는 어쩐 일로 왔냐고 물으셨다. 나는 생일이라 잠깐 들렀다고 했다. 어머니는 깜빡하셨다며 미안하다고 하셨다. 하지만 특별할 건 없었다. 우리 가족은 원래 자주 모였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그냥 모여서 밥 먹고 놀았다. 사촌끼리도 유난히 가까웠다.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다 같이 식사를 하고, 놀러 다녔다. 그래서 생일이 따로 특별하지 않았다. 생일이라 모인다고 하기에는 얼마 전에도 다 같이 모여서 밥을 먹었다. 특별한 날이나 그렇지 않은 날이나 별반 차이가 없었다.

한 번은 아내가 나에게 물어봤다. 생일을 그냥 지나치면 서운하지 않냐고. 나는 괜찮다고 말하려다 잠깐 고민했다. 서운하지 않다고 말하면 괜히 괜찮은 척하는 것 같을 것 같았고, 그렇다고 서운하다고 말하기도 어색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는 게 가장 정확한 대답이었다.

특별한 날을 챙기는 게 싫은 건 아니다. 그런 날이 있으면 좋다는 것도 안다. 내 생일은 크게 챙기지 않아도, 아내의 생일은 기억하고 챙겨주려고 노력한다. 다만 나는 특별한 날 하나를 기다리기보다, 특별하지 않은 날들을 특별한 날처럼 보내는 쪽에 더 익숙했다.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자주 만나고, 별일 없어도 모여서 웃고 떠드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지금도 자주 만난다. 무슨 날이 아니어도 그냥 보고 싶어서 만난다. 생일이든 아니든 크게 구분하지 않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특별한 날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이유는 특별한 날이 필요 없을 만큼 자주 함께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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