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쉬었어?

엄청 잘 쉬었어

by 여담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간 날이 있었다. 오랜만에 연차를 쓰고 집에서 쉬는 날이었다. 아내는 약속이 있어서 집을 비웠고, 나는 하루 종일 혼자였다. 특별한 계획은 없었다. 그냥 쉬기로 한 날이었다.

쉬는 날의 시작은 늘 비슷하다. 더는 잘 수 없겠다 싶을 때까지 늦잠을 잤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늦은 점심시간이었다. 일어나서 냉장고를 열어 간단하게 계란프라이를 만들고 반찬을 대충 꺼내 밥을 먹었다. 먹고 나서는 할 일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거실 소파에 앉았다.

거실은 조용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텔레비전도 켜지 않고 바닥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구경했다. 그냥 그걸 보고 있었다. 바닥에 길게 늘어진 햇빛이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움직였다. 한참을 멍하니 보고 있다 보니 햇빛이 맞은편 텔레비전까지 닿았다. 고개를 들어 텔레비전을 보니 화면에 내 모습이 비쳤다. 구겨진 잠옷 차림에 머리는 산발이었다. 딱 거지꼴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 혼자 웃었다. 원래 인상이 좋은 편은 아니라서 웃는 얼굴을 유지하려고 습관처럼 입꼬리를 올렸다. 그렇게 웃고 있으니 조금은 봐줄 만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소파에 앉아 내 얼굴을 한참 바라봤다. 멍하니 내 얼굴을 구경하다 시계를 보니 오후 세 시를 조금 넘기고 있었다. 오래 앉아 있었더니 허리가 아파 그대로 소파에 누웠다. 천장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잠깐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는 저녁 먹을 시간이었다. 밥을 하기는 귀찮아서 간단하게 라면을 끓여 먹었다. 저녁을 다 먹고 나니 점심에 먹은 그릇이 싱크대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남은 그릇들과 냄비를 같이 설거지를 하고 세탁기도 돌렸다. 집안을 조금 정리하고 다시 소파에 앉으려고 할 때 아내가 집에 들어왔다.
아내는 하루 종일 잠옷 차림에 거지꼴로 지낸 나를 보고 웃으면서 물었다.
“잘 쉬었어?”
그날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엄청 잘 쉬었어.”
밤이 되어 씻고 침대에 누웠다. 아내와 별 얘기 없이 한참을 웃고 떠들다가 잠들었다. 하루 종일 최선을 다해 쉰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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