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복잡하면 나는 몸을 쓴다
기분 나쁜 일이 있거나 생각이 정리가 안 되는 날이면 잠을 못 잘 때가 있다. 아까 그 말을 하지 말걸, 그때 그렇게 행동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같은 후회들이 자려고 누우면 어김없이 떠오른다. 하루를 마무리하고 침대에 누운 순간, 머릿속은 오히려 더 바빠진다.
이미 지나간 일이라는 걸 알고 있다. 지금 다시 생각한다고 달라질 것이 없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도 생각은 멈추지 않는다. 말 한마디, 표정 하나, 선택 하나가 계속해서 머릿속에 반복된다.
후회하고 고민하다 보면 잘 시간이 1시간, 2시간을 지나긴다. 몸은 분명히 피곤하고 눈도 무거운데, 잠들지를 못한다. 졸린 상태로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다가 시계를 확인하면 괜히 더 초조해진다.
내일을 생각하면 더 자야 하는데, 자야 한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잠을 더 방해한다.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자보려고 애썼다. 이리저리 자세도 바꿔보고 호흡에 집중해 보기도 했다.
그래도 생각은 계속 이어졌다. 그래서 일부러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책을 집어 들었다. 읽다 보면 졸릴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럴 때면 꼭 그 책이 술술 읽혔다. 내용이 머리에 잘 들어오고, 페이지도 빠르게 넘어갔다. 졸리기는커녕 오히려 더 또렷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미루고 미루던 책을 밤새 읽고 출근하기도 했다.
그때 조금 방향을 바꿔보자고 생각했다. 어차피 누워서 생각 때문에 스트레스받으며 못 잘꺼라면 그 시간 동안 괴로워하지 말고 차라리 몸을 움직이기로 했다. 생각이 이어진다 싶으면 바로 침대에서 일어난다. 휴대폰을 붙잡고 시간을 보내지는 않는다. 조용히 주방으로 가 불을 켠다. 먼저 눈에 보이는 밀린 설거지를 한다. 설거지를 하고 싱크대도 청소한다. 물소리와 손의 움직임에 집중하다 보면 생각의 속도가 조금 느려진다.
그래도 머릿속이 복잡하면 요리를 시작한다. 빨리 끝나는 음식보다는 일부러 시간이 오래 걸리는 요리를 고른다. 카레나 스튜처럼 손이 많이 가고 과정이 많은 음식들이다. 재료를 손질하고, 불 조절을 하고, 천천히 저어가며 요리한다. 요리는 생각보다 많은 집중을 요구한다. 요리에 집중하다 보면 처음엔 같이 따라오던 생각들이 점점 흐려진다. 아까 했던 후회도, 걱정도 불위에 요리가 잘 되고 있나 하는 생각에 뒤로 밀려난다. 그러다 보면 머리는 조용해지고 몸이 먼저 피곤해진다. 그제야 다시 졸음이 찾아온다. 누워서 고민하며 스트레스받으면서 시간을 보내는 대신 집안일을 하고 요리를 해서 다음 날을 준비한다. 아내와 내가 먹을 도시락을 미리 만들어 놓고 요리하면서 나온 설거지들까지 정리를 한다.
특별한 반찬은 아니지만, 아침에 허둥대지 않아도 되는 여유가 생긴다.
아침이 되면 아내가 도시락을 보며 웃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잘 먹을게”라고 말한다. 그 짧은 한마디에, 어젯밤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고민들이 쓸데없는 생각들로 바뀐다.
생각은 여전히 많고, 후회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어쩔 수 없다. 생각이 나는 걸 막는 방법은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잠 못 드는 밤을 견디는 나만의 방법이 있고 그 밤들이 다음 날의 작은 평온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