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으로 남았던 기억
특정한 노래를 듣거나 음식을 먹을 때면 잊고 지냈던 기억들이 불쑥 떠오를 때가 있다. 의도한 것도 아니고 아무 준비 없이 갑자기 과거에 기억들이 머릿속에서 흘러나온다. 아내는 10CM의 [너에게 닿기를]이라는 노래를 들으면 작년에 함께 갔던 부산 여행이 생각난다고 했다.
차 안에서 봤던 바다와 그때의 감정과 표정까지 한꺼번에 떠오른다고 했다. 나의 기억을 불러오는 건 주로 음악보다 음식 쪽에 가깝다.
야간 근무를 마치고 이른 아침에 집에 돌아온 날이었다. 현관문을 여는 소리에 아내가 잠에서 깨어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현관 앞으로 나와 있었다. 너무 피곤해서 얼른 씻고 바로 자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아내는 간단하게라도 아침을 먹고 자는 게 좋을 것 같다며 금방 해주겠다고 했다.
나도 생각해 보니 조금 출출한 것 같아 토스트나 간단히 만들어 먹자고 했다. 우리는 조용히 주방으로 향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계란과 양파, 스팸이 전부였다. 그 재료들을 보는 순간 어릴 적 동네에서 자주 사 먹던 토스트가 떠올랐다. 양파가 잔뜩 들어간 계란에 햄 한 장이 전부였던 토스트. 야채는 따로 없고 설탕과 케첩만 듬뿍 들어간 천 원짜리 길거리 토스트였다.
나는 아내에게 어릴 때 이런 토스트를 정말 자주 먹었다며 금방 해주겠다고 말했다. 모양은 다르겠지만 맛은 얼추 비슷할 것 같았다. 양파를 썰고, 계란을 풀고, 스팸을 올려 기억에 의존해 토스트를 만들었다. 완성된 토스트는 단출했다. 모양도 조금 달랐다. 하지만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놀랍게도 기억 속의 맛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간단한 재료, 직관적인 맛이었다. 그리고 오래된 기억들이 천천히 따라 나왔다.
그때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 얼굴, 합기도 도장에서 도복을 입고 운동을 마친 뒤 형들과 토스트를 먹던 장면같이 별일 없던 하루였지만 이상하게도 따뜻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나는 토스트를 먹으며 그 기억들을 아내에게 신나게 이야기했다. 그 시절의 분위기와 감정까지 말로 옮기다 보니 잠시 지금이 아닌 그때 그 어린 시절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 기억들이 특별해서 남아 있던 건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평범해서 당연히 했던 일들이 잊히지 않고 남아 있었던 것 같았다. 당시에는 아무 의미 없다고 여겼던 순간들이
시간이 지나 이렇게 다시 돌아왔다.
사소한 음악 한 곡, 아무 생각 없이 먹은 음식 하나가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시간을 다시 꺼내 놓는다. 그 기억들은 여전히 나를 이루고 있었고, 언제든 꺼내볼 수 있게 조용히 머무르고 있었다.
아침이 조금 밝아오고 나는 다시 잠자리에 들 준비를 했다. 토스트의 맛은 사라졌지만 그날 떠올랐던 기억들이 나를 계속 기분 좋게 만들었다. 아마 다음에 또 비슷한 토스트를 먹게 된다면 나는 다시 그 시절의 기억들을 신나게 꺼내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순간들이 지금의 일상을 조금 더 따뜻하고 재밌게 만든다는 걸 그날 아침, 특별하지 않게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