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의 나를 설명하지 못하게 된 이유
사람들은 각자 추구하는 이미지가 있다.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는 생각보다 중요하고, 요즘 시대에는 그것이 하나의 무기가 되기도 한다. 서점에 가면 베스트셀러 진열장 한쪽에 이미지 메이킹 관련 도서들이 따로 놓여 있는 걸 자주 본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보일 것인가’를 고민하며 살아간다.
이미지는 한 사람을 판단하는 가장 빠른 기준이 된다. 성격보다 먼저 보이고, 말보다 먼저 기억된다. 그 사람을 설명해 달라는 질문을 받으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 사람의 이미지부터 떠올린다. 나 역시 그렇다.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야?”라는 질문을 받으면 있는 그대로의 모습보다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를 먼저 설명하게 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는 일은 가까운 친구 사이에서도 쉽지 않다.
나는 정말 많은 이미지를 만들며 살아왔다. 그리고 그 이미지가 흐트러지는 걸 몹시 싫어했다. 가족들 앞에서는 걱정시키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늘 괜찮은 사람, 다 해낼 수 있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힘든 일이 있어도 웃으며 넘겼고, 불안한 마음은 혼자 삼켰다. 가족에게만큼은 세상 걱정 하나 없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직장에서는 또 다른 이미지를 썼다. 조금 어리숙하지만 착하고, 맡은 일은 끝까지 해내려는 사람. 완벽하지 않아도 성실해 보이면 조금 덜 혼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수조차도 계산된 이미지 안에서 감당했다.
친구들 앞에서는 일부러 바보 같은 모습을 유지했다. 진지한 사람보다는 재밌는 사람으로 남고 싶었다. 친구들과 있을 때만큼은 생각 없이 웃고 떠들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 앞에서만큼은 한없이 가볍고 단순한 이미지를 골라 썼다.
이렇게 사람마다 다른 이미지를 쓰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를 만나든, 어떤 상황에 놓이든 이미 만들어진 이미지 안에서만 행동하게 됐다. 그 틀을 벗어나는 순간 지금까지 쌓아온 모습이 무너질까 두려웠다.
사람들은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산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 가면을 얼마나 정교하게 만들고 상황에 맞게 잘 바꿔 쓰느냐가 사회생활에 있어서 꼭 필요한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문득 그 가면들이 없는 온전한 내 모습이 무엇인지 모르게 되었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설명하기에는 앞서 만든 가면들이 내가 되어 있었다. 아무것도 아닌 나를 설명할 수 없었다.
가면을 쓰는 데는 익숙해졌지만 가면을 벗는 일에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솔직해지는 것도, 약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온전히 나를 드러내는 법을 아직 잘 모르는 사람이 조심스럽게 털어놓는 하소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