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서 나로, 다시 딸에게로
부모님 집에 가면 거실 한쪽 벽에 오래된 사진들이 걸려 있다. 부모님이 젊었을 적 찍은 사진, 동생과 내가 아주 어릴 때 찍은 사진들이 섞여 있다. 특별한 액자도 아니고, 작은 액자들 안에 그냥 그 시절 그대로의 얼굴들이 걸려 있다. 그중에서 유독 눈에 들어오는 사진이 하나 있다. 젊은 아버지가 바닷가에서 나를 안고 있는 사진이다.
사진 속 아버지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웃음을 하고 있다. 얼굴이 조금 더 날렵하고 조금 더 검은 피부에 그리고 여전히 같은 표정을 하고 계신다. 그 품에 안긴 나는 아직 세상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아무 생각 없이 아버지에게 몸을 맡기고 신나 있다. 그 사진을 볼 때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코였다.
아버지와 나의 코. 마치 사진 편집으로 복사해 붙여 넣기라도 한 것처럼 누가 봐도 부자지간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코였다. 그 닮은 부분 하나만으로도 사진은 충분히 설명이 됐다.
어릴 때는 그 사진을 오래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저 옛날 사진 중 하나일 뿐이었다. 아버지가 젊었다는 사실도, 그때의 시간이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도 크게 느끼지 못했다. 그 사진은 늘 그 자리에 있었고, 나에게는 그냥 걸려있는 사진 중에 하나였다.
시간이 지나 아내가 임신을 하고 뱃속 아이의 얼굴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을 때였다. 초음파 사진 속 흐릿한 윤곽을 보고 있자니 괜히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됐다. 눈인지, 입인지 잘 구분도 되지 않는 얼굴을 보고 나와 아내 중 누구를 닮았는지 한참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러다 유독 코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상하게도 확신이 들었다. 누가 봐도 내 딸이고, 아버지의 손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닮은 코였다.
웃기기도 했고, 신기하기도 했다. 혈연이라는 단어가 그 순간 아주 구체적인 형태를 가진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아버지를 닮았다는 말이 좋았다. 외모를 말할 때도, 성격을 이야기할 때도 그 말이 싫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버지는 나에게 좋은 아버지였다. 친구 같은 아버지였고 늘 그 자리에서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응원하고 지원해 주셨다. 아버지가 필요한 순간에는 망설임 없이 도와주셨다.
예전에는 어머니에게 아버지 같은 아빠가 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말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때는 잘 몰랐다. 그저 막연하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에 가까웠던 것 같다. 하지만 아내의 뱃속에서 조금씩 자라나는 아이의 얼굴을 보며 그 말이 어떤 의미였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아졌다.
아버지가 내게 해줬던 것처럼 친구같이 편안하고 묵묵히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 되는 것. 잘해주겠다고 약속하기보다 계속 남아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사진 속 젊은 아버지가 아무 생각 없는 나를 안고 있던 것처럼 나도 언젠가 내 딸을 그렇게 안고 있을 것이다. 그 장면이 지금 거실 벽에 걸린 사진처럼 또 하나의 시간이 되어 남을 것이다.
아버지의 코를 닮은 아이의 얼굴이 나를 아빠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얼굴 하나가 아버지 같은 아빠가 되기 위해 오늘도 조금 더 노력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