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연습

표현하는 법을 배우는 시간들

by 여담

친척들과 가까운 바다로 여행을 갔다. 해가 지고 숙소에 들어와 술과 음식을 꺼내 놓으니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길어졌다.

웃고 떠들다 보면 꼭 누군가의 근황이 하나씩 섞여 나온다. 그날은 이모가 사촌동생 이야기를 꺼냈다.
얼마 전 학교에서 작은 사고가 있었는데
소문이 이상하게 돌면서 동생이 많이 억울해했다는 이야기였다.

동생은 억울하면 눈물부터 나오는 아이였다. 상황을 설명하기도 전에 눈물이 먼저 흐르는 성격이라고 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제대로 말하지 못한 채 울기만 했고, 그 눈물 하나로 소문은 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이모는 동생에게
“네가 억울하다고 울기만 하면 사람들은 네가 왜 억울한지 모른다.” 라며 말씀하셨다고 했다. 눈물이 나오고 싶어서 나오는 것도 아니라는 걸 이모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아이가 언젠가는 자기 상황을 말로 설명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 말을 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자연스럽게 어릴 적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도 그랬다. 별것 아닌 일에도 쉽게 울었고, 조금만 무섭거나 억울하다고 느끼면 눈물이 먼저 나왔다. 감정을 설명하는 법을 몰라
몸이 먼저 반응하던 아이였다.

언제부터 그 습관이 사라졌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정확한 시점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분명한 건 내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순간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울고만 있어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 순간들. 그때마다 나는 억울함을 말로 꺼내는 연습을 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이모에게 내 경험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억울하면 울면 안 된다는 말보다는
자기감정을 설명하는 연습을 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지금 동생은 그 연습을 하고 있는 중이고, 조금만 기다려주면 분명 달라질 거라고 덧붙였다.

우리는 모두 억울해서 울고, 화가 나서 티를 내고, 흔히 어리숙하다고 불리는 시간을 지나왔다. 나 역시 아직도 어떤 순간에는 어른스럽지 못한 모습을 보인다.

괜히 마음이 먼저 흔들리고 말보다 감정이 앞설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어른스러움을 연습해 왔다.

바로 울지 않고 설명해 보려 애쓰고, 참아보기도 하고, 상황을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연습을 하며 조금씩 어른이 되어 왔다.

어른이 된다는 건 완벽해지는 일이 아니라 계속 연습하는 사람이 되는 일인지도 모른다. 억울함을 설명하는 법을 배우고, 감정을 다루는 법을 익히고, 실패해도 다시 말해보는 연습을 멈추지 않는 것. 그 힘들고 서툰 연습들이 결국 우리를 어른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연습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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