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감이 당연함으로 바뀐 순간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 누군가가 물었다.
“결혼하면 뭐가 그렇게 좋아?”
흔히들 말하는 답이 먼저 떠올랐다. 무조건적인 내 편이 생긴다거나, 집에 가면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날은 왠지 그 말들이 잘 나오지 않았다. 대신 조금 다른 변화가 떠올랐다. 아주 사소해서 말로 꺼내기 애매한 변화였다.
결혼하기 전 나는 아침이 힘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출근이 힘들었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몸이 무거웠고, 하루를 시작도 하기 전에 끝나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매일 반복되는 생활이 지겨웠고, 현관문 앞에 서면 늘 같은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정말 가기 싫다.’
현관문 손잡이를 잡는 것조차 작은 노력이 필요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그 짧은 동작이 하루 중 가장 큰 결심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결혼을 하고 나서 그 감정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대신 모양이 조금 바뀌었다. 출근이 덜 힘들어진 것도 아니고, 일이 갑자기 즐거워진 것도 아니었다. 다만 기분 나쁜 권태감이 ‘당연함’으로 바뀌었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일까지가 특별한 고민 없이 이어졌다. 이제는 나 혼자만의 하루가 아니라 아내와 함께 이어지는 하루였기 때문이다.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보다는, 자연스럽게 그렇게 해야만 하는 상태에 가까웠다.
그래도 고비는 남아 있었다. 현관문까지는 나왔는데, 차에 앉아 시동을 걸려는 순간이 늘 힘들었다. 회사까지는 차로 한 시간 남짓한 거리였다. 가기 싫은 곳을 향해 매일 같은 길을 달리는 일이 유독 버겁게 느껴졌다. 꽉 막힌 도로 위에서 ‘언제 도착하지, 언제 돌아오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계속 울렸다. 어느 순간부터는 회사 일보다 출퇴근길이 더 나를 지치게 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 최근, 아내가 임신을 했다. 배가 조금씩 불러왔고, 태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처음 손으로 느껴본 그 작은 움직임이 임신사실을 알았을 때만큼에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 변화가 신기하게도 출근까지를 당연한 일로 만들어 주었다.
몸이 달라진 건 아니다. 여전히 아침은 힘들고, 운전은 피곤하다. 그런데도 차에 앉아 시동을 거는 일을 예전처럼 크게 고민하지 않는다. 이제는 그냥 그렇게 해야 하는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한 친구는 “책임감이 생겼다는 걸 길게도 말한다”라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내게는 책임감이라는 거창한 말보다 당연함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게 느껴졌다. 특별하게 마음을 다잡은 것도, 대단한 결심을 한 것도 아니다. 다만 삶의 기준이 조용히 가정이라는 곳으로 이동했다.
결혼을 하고 가정이 생긴 뒤 가장 큰 변화는 바로 그 당연함이었다. 특별한 각오 없이도 하루를 살아가게 되는 상태. 그 변화들이 모여서 가끔 이런 생각도 한다.
아, 결혼하길 잘했구나.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닌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는 이 작고 조용한 변화들이, 결혼의 가장 솔직한 대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