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해진 사이

시간이 만들어준 관계

by 여담

20년을 넘게 알고 지낸 친구가 하나 있다. 초등학교를 지나 중학교, 고등학교를 함께 보내고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너무 당연하게 이어져 온 관계다.
언제부터 친해졌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을 만큼 자연스럽게 곁에 있었던 사람. 우리는 어느새 서로를 가족처럼 대하게 됐다.
우리 집에는 하나의 규칙 같은 게 있었다. 아버지는 심한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다. 시장에 복숭아를 파는 좌판이 보이면 입구에 들어서기도 전에 그 냄새를 알아차릴 정도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복숭아가 들어오지 않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복숭아를 제일 좋아한다. 복숭아가 먹고 싶어질 때면 나는 자연스럽게 친구 집으로 갔다. 복숭아를 한 봉지 사 들고 초인종을 누르는 일은 조금도 어색하지 않았다. 친구가 집에 없어도 상관없었다. 친구 어머니가 복숭아를 깎아 접시에 담아 주셨다. 그렇게 나는 친구 없는 집에서 친구 어머니와 복숭아를 나눠먹고 왔다. 맛보다 상황이 더 친숙했다. 그 집에서 복숭아를 먹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 당연함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내가 군대에 가 있던 동안 친구는 우리 어머니와 종종 밥을 먹고 술을 마셨다. 내가 군 생활 동안 어머니를 직접 본 횟수보다 친구가 어머니를 만난 횟수가 더 많았을 정도다. 그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을 때 이상하게도 서운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마웠다.
친구가 입대하던 날, 우리 어머니는 펑펑 우셨다. 아들의 입대가 아니라 또 다른 가족을 보내는 사람처럼 그 장면을 보며 엄청 걱정하셨다. 가족이라는 게 꼭 같은 성을 쓰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을 앞두고 나는 아내를 먼저 부모님께 소개했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친구 집에도 방문했다. 친구 부모님께도 아내를 소개했다.
그 자리에는 설명이 필요 없었다.
“결혼할 사람입니다.”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아내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친구 부모님은 마치 본인 가족의 일인 것처럼 기뻐하셨다. 전화가 오고, 선물이 도착하고, 괜히 몸은 괜찮은지 다시 물어봐 주셨다. 우리는 서류상으로는 가족이 아니었지만 그 반응은 분명 가족의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우리를 가족으로 만든 건
특별한 사건이 아니었다. 20년이라는 시간 동안 자주 집에 드나들고 같이 밥을 먹고 서로의 부모를 자연스럽게 어머니 아버지라고 불렀다.
그 모든 평범한 순간들이 서서히 관계의 모양을 바꿔 놓았다. 가족은 태어나는 순간 정해지기도 하지만 어떤 가족은 시간을 들여 만들어지기도 한다. 우리는 그렇게 만들어진 가족이다.

복숭아 한 봉지로 이어진 집, 군대에 간 아들 대신 안부를 묻던 사람들, 기쁜 소식을 자기 일처럼 나누던 마음들이 좋았다. 가족이라 명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그런 관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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