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긋난 시간
야간 근무를 마치고 집에 들어오는 시간은 늘 비슷하다. 해가 완전히 뜨기 전, 밤과 아침이 같이 머무르는 시간이다. 몸은 이미 하루를 한 번 살고 온 것처럼 무겁고, 머리는 아직 근무지에 남아 있는 것처럼 조금 긴장되어 있다.
그 시간의 집은 낮의 집과는 조금 다르다. 하루를 시작하는 집이 아니라, 하루를 조용히 마무리하는 공간에 가깝다. 현관 앞에 서서 도어락을 누를 때면 괜히 숨을 한 번 고르게 된다. 문을 여는 소리가 크지 않기를 바라면서, 혹시라도 아내를 깨우지는 않을까 괜히 손에 힘을 빼고 천천히 번호를 누른다. 익숙한 숫자들이지만 이 시간에는 더 조심스러워진다.
문이 열리면 집 안은 조용하다. 불은 모두 꺼져 있고, 공기는 아직 밤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선선하다. 신발을 벗는 동작도 자연스럽게 느려진다. 발소리가 크지는 않을까 조심히 옷방으로 향한다. 가방을 내려놓고, 근무복을 벗어놓고 나서야 비로소 집에 들어왔다는 실감이 난다.
옷을 갈아입고 나오면 집 안에 퍼진 익숙한 냄새가 코끝에 닿는다. 여러 냄새들이 섞여 우리 집 냄새가 된다. 밤새 사람들과 부딪히며 있던 공항의 긴장된 공기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숨결이다. 그제야 몸이 조금 풀린다. 근무가 끝났다는 사실을 머리보다 몸이 먼저 알아차린다.
가끔 주말이나 공휴일 같이 아내가 출근하지 않는 날이면 방문 틈으로 아내가 자는 모습을 본다.
이불을 끝까지 끌어올리고, 늘 같은 방향으로 몸을 말고 있다. 숨이 고르게 오르내리는 걸 확인하면
밤새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던 긴장이 조금씩 내려앉는다. 잘 자고 있구나, 아무 일도 없었구나. 그 사실 하나면 충분하다. 씻으러 가는 길에도 최대한 소리를 줄인다. 스위치를 켜지 않고,
발소리가 크게 나지 않게 조심한다. 물소리가 너무 커지지 않도록 수압도 평소보다 낮춘다. 이 시간의 나는 집 안에서 가장 눈치 보는 사람이 된다. 누군가를 배려한다기보다는 이 고요를 깨뜨리지 않고 그대로 두고 싶은 마음에 가깝다.
샤워를 마치고 나와 대충 말린 머리를 털며 거실에 잠깐 앉아 있는다. 창밖이 조금씩 밝아온다. 밝아져 오는 창문이 아침이 시작되는 시간이라는 걸 알려준다. 사람들은 이제 하루를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을 텐데 나는 이제야 하루를 끝낼 준비를 한다.
세상과 나의 시간이 어긋나 있다는 감각이 이때 가장 선명해진다. 아무도 말을 걸지 않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시간. 핸드폰 알림도, 사람들의 목소리도 없는 순간이다. 집 안에는 냉장고 소리 같은 작은 생활소음만 들린다. 이 고요 속에서 나는 다시 나로 돌아온다.
잠자리에 들기 전, 아내가 잠결에 몸을 뒤척이며 이불을 조금 열어 줄 때가 있다. 눈을 뜨지도, 말을 하지도 않지만 그 작은 움직임이 "고생했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아내가 놀라지 않게 조금 인기척을 내며 조심스럽게 옆에 눕는다. 이불속은 아직 따뜻하고, 그 온기가 하루의 끝을 알려준다. 그렇게 하루가 끝난다.
야간 근무의 끝은 늘 화려하지 않다. 대단한 보상도, 크게 위로받는 순간도 없다. 다만 조용한 집과 잠든 사람, 그리고 아무 일 없이 돌아왔다는 사실이 있다.
이 시간이 늘 편한 것만은 아니다. 조금 버겁기도 하다. 모두가 하루를 시작할 때 나는 하루를 마무리해야 한다는 사실이 가끔은 조금 늦게 다가온다. 괜히 창밖을 한 번 더 보고, 휴대폰을 더 들여다보기도 한다. 그래도 나는 이 방식으로 살아간다. 누군가는 아침에 집을 나서고, 누군가는 이렇게 돌아온다. 그 사실을 이해하려 애쓰는 것보다
그냥 받아들이는 쪽이 편하다.
조용히 집에 들어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잠드는 아침이 언젠가는 익숙해질지도 모르고, 어쩌면 끝내 익숙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무사히 집에 돌아와 잠드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