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대화 앞에서 꼰대가 되었다

비교가 일상이 된 세계에서

by 여담

'평범하게 산다’는 말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가끔 생각해 본다.

막연히 떠올리면 남들처럼 사는 삶이다. 너무 잘 살지도, 너무 못 살지도 않는 삶. 조금 더 구체적으로 그려보면 딱 중위소득 정도를 벌고,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큰 부자는 아니지만 직장을 다니며 노후까지 이어지는 삶이다. 많은 것을 누리지는 못해도 아끼고 계산하며 살면 그럭저럭 유지되는 인생. 나는 오랫동안 그게 평범한 삶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정말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보면, 그 ‘평범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회에 나와 직접 월급을 받고 살아보니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더 또렷하게 느껴진다. 평범하게 산다는 건 아무 노력 없이 주어지는 상태가 아니었다. 오히려 꾸준히 버티고, 참고, 선택을 반복해야 겨우 닿을 수 있는 지점에 가까웠다.

2026년 기준 4인 가구 중위소득은 세전 약 650만 원이다. 맞벌이를 한다고 가정하면 한 사람당 약 325만 원, 세금을 떼고 나면 대략 270만 원 정도다. 숫자로만 보면 현실적인 금액이다. 하지만 그 돈으로 집세를 내고, 생활비를 쓰고, 아이를 키우고, 미래를 준비하는 걸 떠올려보면 결코 여유로운 삶은 아니다. 그럼에도 인터넷이나 SNS를 보다 보면 월 300만 원 언저리의 수입을 마치 실패처럼 말하는 글들을 쉽게 접하게 된다. 어떤 글들은 노골적으로 비하하고, 어떤 글들은 교묘하게 비교한다. 그 속 사람들은 월 천만 원을 버는 게 기본값이고, 명품은 사고 싶을 때 사고, 해외여행은 가고 싶으면 언제라도 쉽게 다닌다.

정말 그런 사람들이 많을 수도 있다. 혹은 그렇게 보이고 싶은 사람들이 많을 수도 있다. 다만 분명한 건, 그 글들이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은근히 아래로 내려다보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조금 덜 벌고, 조금 덜 누리면 스스로 부족한 사람이 되는 구조였다. 그 속에 사람들이 모두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라면 굳이 그렇게까지 남을 평가하며 살아야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지금 평범한 동네에서 전세로 빌라에 살고 있다. 내 능력 안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집 근처에는 초등학교가 있어서 아침저녁으로 아이들이 지나다니는 모습을 자주 본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집 앞을 지나던 초등학생들의 대화를 듣게 됐다. 처음에는 그냥 아이들 특유의 투닥거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화가 이어질수록 마음이 조금 불편해졌다.

그 아이들은 같은 반 친구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누군가 자기 집이 아파트라고 말했다가 알고 보니 전세였다며, 사기를 치고 다닌다고 화를 내고 있었다. 그 말을 하던 아이는 자기 집은 매매라며, 그 친구 집이 못 살아서 거짓말을 하고 다닌다며 말했다. 마지막에는 내일 학교에 가서 그 친구 아버지가 무슨 차를 타는지 물어보고, 자기 아버지는 유명한 외제차를 타니 그걸로 혼내주겠다고까지 말했다.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전세로 아파트에 살고, 외제차를 타지 않는 것이 아이들 세계에서는 친구를 비난받게 만드는 이유가 되고 있었다. 그 아이들 기준에 따르면 전세 빌라에 살고 국산차를 타는 나는 이미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내 아이 역시 언젠가 그런 기준 위에 올라가 평가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를 떠올려 봤다. 그때는 전세와 매매의 차이도 몰랐고, 친구 아버지가 무슨 차를 타는지에 관심을 가질 이유도 없었다. 잘 맞는 친구인지, 같이 놀기 재미있는지가 전부였다. 조금 어려운 친구가 있으면 도와주면 도와줬지, 그걸 흠으로 삼지는 않았다. 그런데 지금 아이들이 나누는 대화는 내가 알던 세계와 너무 달라 보였다.

이상하게도 그 아이들을 탓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대신 다른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내 아이가 저런 말들 앞에서 주눅 들지 않게 하려면, 나도 무리해서 아파트를 사야 하나, 유명한 외제차를 타야 하나. 그러다 보니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선택들을 머릿속에서 줄줄이 검토하고 있었다. 지금의 내 삶에서는 필요하지도 않은 고민들이었다.

만약 그 아이들이 스스로 돈을 벌어 아파트를 사고 외제차를 샀다면, 그래도 남을 비난할 자격은 없다. 그런데 아직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은 아이들이, 부모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환경을 기준 삼아 서열을 나누고 있다는 사실이 씁쓸했다. 그렇다고 그 아이들만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 말들은 분명 어디선가 배운 말이었고, 어른들의 세계를 흉내 낸 결과였을 것이다. 부모의 영향일 수도 있고, 미디어 속에서 수없이 반복되는 비교와 비판의 언어일 수도 있다. 어쩌면 그 모든 것이 섞인 결과일지도 모른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더 선명해졌다. 그저 세대 차이를 느끼는, 흔히 말하는 꼰대가 되어버린 한 아저씨의 씁쓸함만 남았다. 내 아이도 자랄 것이고, 지금보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문화들이 생길 것이다. 그 모든 흐름 속에서 나는 아마 완벽하게 공감해 주지도, 함께 즐기지도 못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려고 한다.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기보다, 무엇이 옳은지, 어떤 생각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싶다. 비교 속에서도 스스로를 지키는 법, 숫자와 겉모습이 아니라 사람을 보는 시선, 남을 깎아내리지 않고도 충분히 단단해질 수 있다는 감각을 전해주고 싶다.

저 아이들과 인터넷 속 수많은 부자들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역할도 아니고, 의미 있는 싸움도 아니다. 다만 내 아이만큼은 저런 사회적 기준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자라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누군가는 내 능력이 부족해 아이에게 이뤄줄 수 없는 사람의 자기 위안이라 생각할 것이다. 이제는 내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을 말하면 뒤처졌다고 되려 비난받는 시대가 된 것 같지만, 그럼에도 나는 조용히 내 기준을 지키며 살고 싶다.

해결책을 제시하지도 못하고, 정곡을 찌르며 비판을 할 능력도 없다. 나는 그저 놀라고, 혼자 고민하고, 속상해하는 시대에 뒤처진 아저씨가 되어버렸다. 누군가 나를 꼰대라 부른다면, 그냥 그 꼰대 아저씨로 살 생각이다. 적어도 내 아이 앞에서는, 부끄럽지 않은 꼰대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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