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의 작은 골목길

사람 사는 풍경

by 여담

베네치아는 신혼여행지로 너무 유명한 도시다.
그래서 떠나기 전부터 사람 많고 복잡할 것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막상 도착하니 상상보다 더 복잡했다.

골목마다 관광객이 가득했고, 카메라를 든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다니며 걷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숨이 찼다. 사람으로 이루어진 파도에 강제로 흘러가는 기분이었다. 신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동시에 마음 한편이 계속 바빴다.
우리는 유명하다는 곳들을 빠짐없이 다녔다. 베네치아에 산 마르코 대성당 앞에서는 성당보다 사람 뒤통수를 더 많이 본 것 같다. 웅장한 건물은 분명 멋있었지만 그 앞에서 오래 머무르기는 쉽지 않았다. 사람의 흐름에 떠밀려 잠깐 올려다보고, 사진 한 장 남기고, 다시 움직여야 했다. 해안가 근처의 산 마르코 광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광장 주변 카페에서는 클래식 연주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관광객들은 테이블 사이를 오가며 그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연주 중간, 익숙한 선율이 들려왔다. 베네치아 한복판에서 아리랑이 연주되고 있었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그 멜로디를 듣는데, 낯선 도시에서 갑자기 고향의 소리가 들리는 느낌이 묘했다. 아리랑을 듣고 반응하는 한국인들이 제법 많았다. 나와 아내는 잠시 눈을 마주치고 웃었다.

하지만 그렇게 유명한 장소들을 다니다 보니
점점 피로가 쌓였다. 사람을 보는 여행이 아니라
사람 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여행 같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길을 잘못 들었다.

지도에 표시된 큰길이 아니라 옆으로 빠지는 좁은 골목이었다. 그 골목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베네치아였다. 관광객은 갑자기 사라지고, 말소리도 줄어들었다. 낡은 건물 사이로 물길이 흐르고 있었다. 우리는 그 물길 바로 옆에 작은 식당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조금 출출하기도 해서 그냥 간단한 음식만 주문하고 잠시 쉬기로 했다.

사진으로 남길 만한 명소도 아니었고, 가이드북에 소개된 장소도 아니었다. 그저 누군가의 집 앞, 누군가의 일상 한가운데였다. 물길 위로 작은 배들이 오갔다. 장바구니를 든 사람들이 배를 타고 이동했고, 일을 하러 가는듯한 표정들이 보였다.
관광객을 태운 곤돌라가 아니라 생활을 실은 배들이었다.

흐르는 물을 보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그 도시가 숨 쉬는 방식을 가만히 바라봤다. 이상하게도 그 시간이 이번 여행에서 가장 평화롭게 느껴졌다. 아무리 유명하고, 아무리 멋있는 도시라도 결국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는 걸 느끼고 있었다.
관광지는 잠깐 머무는 사람이 보는 풍경이고 이 골목은 매일을 살아내는 사람들이 보는 풍경이었다.
그곳에 길을 잘못 들지 않았다면 절대 보지 못했을 풍경과 관광객이 아니라 주민으로 느껴지는 순간이 그 도시에 있었다.

신혼여행에서 가장 오래 남은 기억은 가장 유명한 장소가 아니었다. 사람이 가장 적었던 골목, 물길 옆 작은 식당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던 시간이었다. 그곳에서 본 베네치아는 화려하지 않았지만 가장 진짜 같았다.

여행은 늘 그렇다. 기억에 남는 장면은 계획한 순간이 아니라 우연히 마주친 일상 속에 숨어 있다. 그 일상에서 이상할 만큼 편안함을 느꼈다. 관광객으로 붐비는 거리에서 느끼던 설렘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감정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보지 않아도 괜찮다는 느낌이었다. 그저 그곳에 앉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여행이 충분해지는 순간이었다.

다시 가기 힘든 유럽여행은 유명한 건축물을 보고, 신기한 관광지를 찾아다녀야 한다고 여겨왔다.
사진으로 남길 수 있는 장소,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는 장면들이 여행의 목적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골목에 앉아 있으면서 그 생각은 조금 바뀌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일 또한 여행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를 타고 출퇴근을 하는 사람과 물길 옆 창문을 열어두고 집 안을 정리하는 모습, 관광객을 의식하지 않는 표정들 그 모든 장면이 그 도시에도 사람이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서로 다른 나라,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곳에 와 있었지만 그들의 일상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침을 준비하고, 일터로 향하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모습은 내가 살아온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더 편안했는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여행의 즐거움은 낯섦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완전히 새로운 것보다 낯선 공간 속에서 익숙한 장면을 발견할 때 마음은 더 오래 머문다. 서로 다른 곳에서 비슷한 삶의 향취를 발견하는 일, 그 공통점을 느끼는 순간이 여행을 더 깊게 만들었다.

베네치아의 그 골목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사진을 찍으라고 재촉하지도 않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라고 떠밀지도 않았다.
그저 잠시 앉아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줬다.

화려한 풍경보다 조용한 일상이 기억에 남는 여행. 그것도 충분히 좋은 여행이라는 걸 베네치아의 외진 골목은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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