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 속 화초

나는 들소였다

by 여담

“걔는 온실 속 화초잖아.”
아버지와 통화를 하다 아버지 지인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집안의 외동딸로, 정말 온실 속 화초처럼 귀하게 자란 사람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다 보니 문득 궁금해졌다. 나를 키울 때 아버지에게도 나는 화초였을까.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물었다.
“그럼 나는?”
‘너도 귀하게 컸지’,
‘잘 키우려고 얼마나 애썼는데’ 같은 말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너는 들판에 들소지.”
너무 정확해서 웃음이 나왔다. 맞는 말이었다. 아니, 너무 맞는 말이라 더 웃겼다. 전화를 끊고 한참을 그 말에 대해 생각했다.

‘온실 속 화초’라는 말은 분명 귀하게 자란 아이를 뜻하는 표현이다. 하지만 실제로 쓰일 때는 조금 다른 의미를 담고 있다. 보통은 나이에 맞지 않게 철없는 행동을 했을 때, 현실을 잘 모르는 사람을 말할 때 사용된다. 그렇다고 나쁜 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말 안에는 사랑으로 보듬고, 다치지 않게 키우고 싶었던 가족의 노력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아이가 있다. 솔직히 말하면, 내 아이는 정말 화초처럼 키우고 싶다.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고,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능하다면 모든 걸 대신해주고 싶은 마음도 든다. 하지만 그게 정답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나는 아버지 말처럼 들판의 들소처럼 컸다. 부모님은 분명 나를 화초로 키우려고 하셨다. 다만, 내가 온실을 스스로 부수고 나가버렸을 뿐이다. 돈이 필요하면 인력사무소에 나갔다. 부모님이 용돈을 안 주신 건 아니었다. 정해진 금액은 없었지만, 필요하다고 하면 늘 생각보다 더 챙겨주셨다.

그런데 내 취미 중 하나가 기타를 모으는 것이었다. 백만 원이 넘는 기타를 사고 싶다고 부모님께 쉽게 말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공사장에 나갔고, 인력사무소에 나가 돈을 벌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기타가 좋아서라기보다 내 힘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게 재밌었던 것 같다.

그때부터였다.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 나이가 된 이후로 나는 거의 쉬지 않고 일을 했다. 돈이 생기니 생활이 달라졌고, 노는 것도 정말 열심히 놀았다. 학교에 갔다가 일하고, 친구들과 놀다 보면 집에 들어가는 시간은 늘 늦어졌다. 부모님은 크게 간섭하지 않으셨다. 대신 언제나 같은 말을 하셨다 “네 선택에는 네가 책임지는 거다.” 돌이켜보면 그 말이 나를 들소로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막아주지도 않았고, 밀어내지도 않았다. 다만 내가 어디로 가든 지켜보고 있었을 뿐이다. 들판의 들소는 혼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완전히 버려진 존재는 아니다. 넘어지면 스스로 일어나야 하지만, 길을 잃을 정도로 방치되지는 않는다. 나는 그렇게 컸다.

온실에서 보호받지는 않았지만 완전히 내팽개쳐진 적도 없었다. 이제는 안다. 화초로 크는 삶도 있고, 들소로 크는 삶도 있다.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각자의 방식이 있을 뿐이다. 아버지의 말 한마디 덕분에 나는 내 성장 방식을 조금 더 선명하게 이해하게 됐다.

나는 화초가 되지 못한 게 아니라, 들소로 자라온 사람이었다. 그리고 내 아이도 들소로 키울 것이다. 적당히 힘들어도 보고 책임이 뭔지 제대로 아는 아이가 됐으면 좋겠다. 한편으로는 힘듦을 숨기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언제나 돌아갈 수 있는 온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온실 속 들소 정도면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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