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듦을 판단할 자격
힘들다고 말할 때, 옆에서 조용히 위로해 주는 사람이 있다. 괜찮다고, 조금 쉬어도 된다고 말해 주는 사람. 반대로 등을 떠밀듯 다그치며 더 나가게 만드는 사람도 있다. 나는 오래도록 후자가 편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다.
힘들다는 말은 굉장히 주관적이라고 믿는다. 같은 상황에 놓여도 누구는 버티고, 누구는 주저앉는다. 열만큼 힘들어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이십만큼 힘들어도 아무 말 없이 버티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고 조금만 힘들어 주저앉는 사람이 잘못된 건 아니다. 힘듦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적응의 문제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나는 오랜 시간 운동을 해왔다.
한때는 운동이 삶의 전부라고 믿던 시절도 있었다.
그때의 나는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근육이 찢어질 듯 아파도 그걸 힘들다고 여기지 않았다. 몸은 분명 멈추라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지만, 나는 그 신호를 무시한 채 계속 움직였다.
내 옆에는 늘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 있었다. 코치님이라 불렀던 선생님이었다. 코치님의 목소리는 마치 마법 같았다. 목에서 쇠맛이 나고, 발바닥이 터져 피가 나도 “움직여 멈추지 마”라는 한마디에 몸이 다시 움직였다.
글자로만 보면 강압적이고, 어쩌면 학대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소리는 나에게 힘이 됐다. 코치님은 전문가였고, 나보다 먼저 그 고통을 겪어본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할 수 있다고 말하면, 그건 정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 믿음 하나가 내 몸을 다시 움직이게 만들었다.
운동을 하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 적도 있었다. 너무 힘들어 눈물이 났다. 그럼에도 나는 멈추지 않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은 끝까지 나를 믿어주고 있었다. 그 시간들이 쌓여 결국 결과를 만들었다.
운동을 그만두고 사회로 나왔을 때, 그 고생들은 내 자랑이자 능력이 되어 있었다. 힘든 일이 생기면 나는 늘 스스로를 점검했다. 지금 이게 얼마나 힘든지, 몸이 힘든 건지 마음이 힘든 건지, 예전에 겪었던 것과 비교해 볼 만한 고통인지. 그러고 나면 몸은 다시 움직였다. 포기하고 싶다가도 “이 정도는 괜찮아”라며 스스로를 다잡았다. 문제는 그 기준을 타인에게도 똑같이 들이댔다는 데 있었다.
나는 코치님처럼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나도 한 번 겪어봤으니까, 이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쉽게 판단했다. 모두가 나처럼 될 수 있을 거라고 착각했다. 하지만 내가 하는 다그침은 코치님의 그것과 전혀 달랐다.
나는 전문가도 아니었고, 그저 한 번 지나온 사람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아무 근거 없이 전문가인 척 행동했다. “내가 해봤는데”라는 말로 상대의 힘듦을 판단하고, 밀어붙였다. 그 사실을 군대에서 뼈아프게 깨달았다.
작업 중 힘들어하던 후임에게 “그 정도는 힘든 것도 아니다”라며 쉬지 말고 계속하자고 했다. 나는 그게 응원이라고 생각했다. 버티면 된다고, 조금만 더 하면 된다고 믿었다. 그러다 사고가 났다. 체력이 이미 바닥난 후임은 작업 도중 힘이 풀려 넘어졌고, 들고 있던 삽에 다리를 다쳤다. 후임은 아프다는 말을 할 수 있었지만, 윗사람의 말 앞에서 멈추지 못했다. 내가 괜찮다고 말했기 때문에, 자신의 힘듦을 부정하고 버텨야 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나는 무의식 중에 내가 느끼지 않는 힘듦은 거짓이라고 여겨왔다.
코치님처럼 되고 싶었고, “할 수 있다”는 말이 언제나 정답일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 착각이 사고를 만들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생각이 바뀌었다.
다그침이 항상 옳은 건 아니라는 것. 위로가 약함을 만드는 것도 아니라는 것. 사람마다 필요한 말과 방식이 다르다는 것. 어떤 사람에게는 “조금만 더 해보자”가 힘이 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여기까지 해도 충분해”라는 말이 필요하다. 중요한 건 밀어붙이는 게 아니라, 지금 그 사람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를 보는 일이라는 걸 그제야 알게 됐다.
이제는 누군가 힘들다고 말하면 먼저 묻는다. 얼마나 힘든지, 지금 멈춰야 하는지, 아니면 조금 더 가고 싶은지. 다그치기보다 함께 판단하려 한다.
나는 여전히 나 자신에게는 엄격한 편이다. 하지만 타인에게만큼은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힘듦은 비교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들어줘야 하는 거라는 걸 늦게나마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