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하지도, 판단하지도 못하는 이름
부모라는 말은 너무나 가깝지만 잘 이해하지 못하는 말 중 하나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의 삶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어머니는 어머니였고, 아버지 또한 아버지였다. 그건 지금까지도 다르지 않다.
예전에 드라마에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언제까지 엄마가 니들 곁에 있을 것 같아.”
그 말은 틀리지 않다. 시간이 지나면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생긴다. 드라마에서 말하고자 했던 의미는 아마도 부모에게 잘하라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 말이 맞다는 것도, 당연한 말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나름대로 잘하려고 노력하며 살아왔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부모’라는 이름이 어떤 무게를 지니고 있는지 그 이름으로 산다는 게 어떤 삶인지 잘 모른다.
부모라는 이름이 나에게 주는 감정은 늘 따뜻하지만은 않았다. 어릴 때는 보호받는 이름이었고, 조금 더 자라서는 불안해지는 이름이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오히려 걱정하게 하는 이름이 되기도 했다.
부모라는 말 안에는 늘 책임, 사랑, 애정, 희생 같은 단어들이 따라붙는다. 모두 애틋하고 가슴 절절히 울리는 말들이다. 그런데 나는 그 단어들이 부모를 설명하기에는 조금은 과장되어 있다는 생각도 든다.
부모는 늘 사랑만 하는 존재가 아니었고, 늘 희생만 하는 사람들도 아니었다. 그들도 분명히 화가 났고, 지치기도 했고, 도망치고 싶었던 순간들도 있었을 것이다. 다만 나는 그런 순간들을 보지 못했을 뿐이다. 혹은 보았어도 ‘부모니까 그럴 수 있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겨왔던것 같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내가 누군가의 책임이 되는 순간들이 늘어나면 부모라는 단어를 이해할 줄 알았다. 그런데 여전히 나에게 특별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상황이 바뀌면서 행동과 생활 방식에 변화가 생겼다. 그런데 내가 생각한 "부모"라는 그 단어와는 조금 멀어 보였다.
부모라는 이름을 갖기 전의 어머니 아버지를 상상해 봤다. 더 어려웠던 순간, 어른이기 전에 이미 수많은 선택을 해야 했던 사람들이었다. 누구에게도 완벽한 답을 들을 수 없던 시절을 혼자서 건너온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가볍고 단단한 사람이었다. 말이 따뜻했고 가벼웠다. 힘들다는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법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가 늘 강한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내가 아버지가 되어보니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약한 모습을 보일수 없어서 그런게 아닐까 싶었다.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는 순간, 약해질 자리를 잃어버린 사람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사회에 나와서 한없이 지치고 눈치보고 피곤하지만 그 모습을 자식에게는 절대 보여주지 않으셨다. 오히려 아무것도 아닌것같은 모습만 보여줬다.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는 늘 가족의 분위기를 살피는 사람이었다. 누군가 기분이 상하면 먼저 눈치를 봤고, 집안이 문제가 생기면 본인이 도맡아 떠안으려고 했다. 그게 사랑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어쩌면 늘 중심을 잡고 있어야 했던 사람의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흔들리면 안 되는 자리에서 자기감정을 뒤로 미루는 법을 먼저 배운 사람이었고 모든 것을 다 막아주려 했던 노력이었다.
부모의 인생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삶은 내가 살지 않았고, 그 선택들은 내가 하지 않았다. 아무리 나이가 들고, 아무리 비슷한 상황에 놓여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제는 함부로 판단하지 않으려고 한다. 왜 그때 그렇게 말했는지, 왜 그 선택을 했는지, 그 이유를 다 알지는 못해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까지만 하려고 한다.
부모는 늘 정답을 알고 있었던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도 그때그때 최선이라고 믿는 선택을 했고, 그 선택의 결과 위에서 지금까지 살아온 사람들이다. 다만 그 선택의 무게를 자식에게 보여주지 않으려 했을 뿐이다.
이제는 굳이 부모라는 단어를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어차피 알면 알수록 모르겠고 감당하기 어려운 이유들만 떠오른다. 그렇다고 부모에게서 위대함만 보려고 하지 않는다. 대신 불완전한 사람의 얼굴을 본다. 부모에게 잘해야 한다는 말은 여전히 맞다. 하지만 그 이유는 언젠가 떠날 사람들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도 한 사람의 인생을 살았고, 지금도 여전히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를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 다만 부모를 사람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