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은 지식이 아니라 태도로 보인다
직장을 다니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선배’ 혹은 ‘선임자’라고 불리는 윗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처음엔 공포에 가깝다. 말 한마디에 긴장하게 되고, 표정 하나에 하루 기분이 달라진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는 든든한 조력자가 되기도 한다. 같은 사람인데도, 상황과 관계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가진 존재다.
막내로 회사에 들어가면 정말 많은 선배들을 마주친다. 어떤 사람은 먼저 다가와 “어려운 거 있으면 언제든 물어봐요”라며 손을 내밀고,
어떤 사람은 말을 걸기조차 어려워 보인다. 늘 바빠 보이고, 늘 기분이 안 좋아 보인다.
예전에 SNS에서 이런 투표를 본 적이 있다.
친절하지만 일을 못하는 선배와 정말 무섭지만 일을 너무 잘하는 선배 중 누가 더 좋은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사람마다, 상황마다 답은 다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망설임 없이 친절한 선배를 고른다.
일이라는 건 생각보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 많다. 선배가 일을 조금 서툴러도 다른 선배에게 물어볼 수 있고, 매뉴얼이나 자료를 찾아볼 수도 있다. 정 안 되면 내가 더 열심히 배우면 된다.
하지만 아무리 일을 잘해도 매일 화를 내고, 그 사람 앞에만 서면 눈치를 보게 되고, 언제 또 혼날지 전전긍긍하며 하루를 보내는 건 너무 버거운 일이다.
회사에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다. 어쩌면 집보다 더 오래 머무는 공간이다. 그 시간을 대부분 긴장하고, 위축된 상태로 보내야 한다면 나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가능하면 친절한 선배가 되고 싶다고 생각해 왔다.
내가 다니는 직장에도 정말 다양한 선배들이 있다. 능력과 친절이 반비례하는 사람도 있고, 일도 잘하고 정말 친절한, 교과서 같은 선배도 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
일을 하다 보면 혼자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을 반드시 마주하게 된다. 어느 날 근무 중 한 이용객이 찾아와 면세점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면세점은 보호구역이라 불리는 공간이라 검색을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고, 입국 전이나 출국장 안에서만 이용이 가능하다고 설명드렸다.
하지만 그분은 이미 입국 절차를 마치고 입국장을 벗어난 상태였다. 정해진 사유에 해당하면 역진입이 가능하지만, 그분의 상황은 해당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차분하게 말했다.
“정해진 사유 이외의 목적으론 역진입이 불가하십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게 전부였다. 표현을 조금 바꾸더라도, 본질은 같았다. 하지만 그분은 “정말 잠깐만 다녀오겠다”, “캐리어를 두고 나온 척하면 안 되겠냐”며 계속해서 요구를 이어갔다. 그때, 옆에 있던 선배가 조용히 다가왔다. 평소 투표로 치면 일은 조금 서툴지만 정말 친절한 선배에 가까운 분이었다. 선배는 웃으며 그분들과 대화를 나눴다.
“정해진 사유에 맞는 상황이라면 충분히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절차상 안으로 들어가시면 여권을 세관에서 보관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면세점 이용도 어려우실 수 있어요.”
나도 알고 있던 내용이었다. 하지만 나는 ‘원칙적으로 안 된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었고, 선배는 원칙을 지키면서도 왜 안 되는지를 설명하고 있었다.
내가 같은 말을 두 번, 세 번 반복할 때 선배는 한 문장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그 이용객은 더 말하지 않고 돌아갔다. 사람들이 떠난 뒤, 선배는 웃으며 말했다.
“고생했어.”
그 한마디를 듣고 생각을 다시 하게 됐다. 나는 그동안 그 선배를 그냥 ‘친절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보인 모습은 정말 선배다운 모습이었다.
선배란, 나보다 먼저 이 일을 겪고 지나온 사람이다. 그 시간들이 쌓여 지금의 위치를 만든 사람이다. 그건 단순히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 경험과 지식을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라는 걸 그날 알게 됐다.
늘 가볍게 보였던 친절한 미소는 아무 생각 없는 태도가 아니라,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확신에서 나오는 여유였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이미 선배라고 불리고 있다. 그래서 나름대로 선배다운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썼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아직 많이 미숙하다. 그래서 그 미숙함을 ‘선배’라는 이름 뒤에 조용히 숨겨왔던 것 같다.
내 평판이 어떤지는 잘 모른다. 내가 원했던 모습과 다를 수도 있다. 돌이켜보면 나는 보이기 위한 선배였고, 그 사람은 선배로 보일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그 경력과 능력에서 나오는 여유를 나도 언젠가는 갖고 싶다.
하지만 아직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은 조용히 더 많은 것을 겪어보려고 한다. 그저 시간이 쌓이고, 말보다 행동이 앞서게 되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 그때가 되면, 누군가의 눈에 나도 비로소 ‘선배’로 보이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