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하지 않았던 길
나는 대학을 다니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다니지 못했다기보다는 거의 다니지 않았다. 그 유명한 코로나 학번이었다. 입학하자마자 학교 문은 닫혔고, 강의실 대신 집에서 화면으로 수업을 들었다. 캠퍼스의 냄새를 맡아본 건 고작 사흘 남짓이었다. 그마저도 흐릿하다. 대학생이 되었다는 실감은 들기도 전에, 모든 게 멈춰버렸다.
1학년 1학기를 집에서 보내며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 바엔 차라리 군대를 다녀오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입대했고, 군 생활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런데 휴학 신청을 잘못한 탓에 재적 처리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다시 대학에 돌아갈 수도 있었겠지만, 그때는 이상하게도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자연스럽게 일찍 취업을 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어느새 친구들이 하나둘 대학을 졸업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는 한 친구가 졸업을 앞두고 자취방을 정리한다며 도와달라고 했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의 자취방은 생각보다 작았고, 짐도 많지 않았다. 우리는 짐을 조금 옮기고 나서 친구의 학교로 함께 갔다. 친구는 종강 전 마지막 수업이 있다고 했다. 나는 그동안 학교를 구경하며 기다리기로 했다. 그렇게 처음으로 제대로 된 대학교 캠퍼스를 혼자 걷게 됐다.
책과 가방을 들고 강의실로 향하는 학생들이 보였고, 여기저기서 “과제”, “학과”, “종강” 같은 말들이 자연스럽게 오갔다. 나에게는 너무 익숙하지 않은 단어들이었다. 대학이라는 공간 자체가 새삼스럽게 신기했다. 동시에, 조금 낯설었다.
그러다 문득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 공간에서 내가 가장 어울리지 않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원래는 친구가 기다리라고 했던 건물 안 쉼터에서 잠깐 쉬며 캠퍼스를 더 둘러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괜히 혼자 튀는 사람처럼 느껴졌고, 이곳에 오래 머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아무도 눈치 주지 않았는데도 혼자 눈치를 보며 급하게 차로 돌아왔다.
차 안에 앉아 있으니 창밖으로 학생들이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웃으며 걸어가는 모습, 이어폰을 낀 채 무표정하게 걷는 모습. 그 모습들을 보다가 괜히 휴대폰 소리를 줄였다. 따지고 보면 나보다 어리거나, 많아야 한두 살 차이 나는 또래들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대학이라는 공간 안에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스스로를 작게 만들고 있었다.
사실 예전부터 대학을 다니는 친구들이 부러울 때는 있었다. 방학, MT, 축제 같은 대학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시간들이 부러웠다. 그렇다고 내 삶이 나빴던 건 아니었다. 친구들이 학비와 용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할 때, 나는 월급을 받으며 비교적 안정적으로 생활했다. 좋은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렸고, 책임져야 할 일들도 늘어갔다.
“너는 회사도 다니고 결혼도 했는데 난 아직도 학생이야.”
이런 말을 들을 때면 괜히 으쓱해지기도 했다. 겉으로는 아니라고 했지만, 속으로는 남들보다 조금 앞서 나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막상 대학 캠퍼스에 서 보니,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시간이 갑자기 크게 느껴졌다. 아무도 나를 평가하지 않았는데, 나 혼자 스스로를 평가하고 있었다. 놓친 기회 같았고, 지나가버린 선택 같았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더 부끄러웠던 것 같다.
친구가 수업을 마치고 나왔을 때, 나는 급하게 친구를 차에 태우고 학교를 벗어났다. 그리고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웃으며 말했다.
“괜히 눈치가 보이더라. 그래서 차에서 쉬었어.”
그때 친구가 말했다.
“쓸데없이 기죽어 있냐.”
맞는 말이었다. 정말 쓸데없는 자격지심이었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고, 아무도 나를 이상하게 보지 않았는데 나 혼자 그 공간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규정해 버렸다. 그리고 가장 먼저 도망친 것도 나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나는 늘 바쁘게 살았다. 정신없이 살아가면서 늘 최선의 선택을 해왔다. 멈춰 서서 돌아보지 않고, 그때그때 최선이라고 믿는 길을 택했다. 그래서 좋은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했던 순간들도 있었지만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나는 기회를 버린 게 아니라 다른 방식을 선택했을 뿐이었다.
대학을 다니는 삶과, 일찍 사회로 들어온 삶은 우열의 문제가 아니었다. 단지 방향이 달랐을 뿐이다. 나는 내 방식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왔고, 그 선택들 위에 지금의 내가 서 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 선택을 다시 할 수 있다고 해도 지금보다 좋아질 것이라는 확신이 안 든다.
경험하지 못한 시간을 부러워하고 후회하기보다, 내가 살아온 시간을 인정하고 나아가는 것이 훨씬 생산적이다. 우리는 각자 다른 속도로, 다른 방식으로 어른이 된다. 여전히 부러운 건 부럽고 후회되는 건 똑같다. 하지만 중요한 건 어디를 거쳤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왔느냐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