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잡지 않아도 되는 사람

가까워질수록 버거워졌던 관계

by 여담

회사에 입사를 하면 자연스럽게 ‘입사동기’라는 사람들이 생겼다. 낯선 공간에서 같은 속도로 어색해지고, 같은 방향으로 긴장하는 사람들이다. 처음 겪는 회사생활에서 누군가와 동시에 서툴러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관계는 쉽게 가까워진다. 입사동기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입사 전 교육을 받을 때 유독 가까워진 동기 형이 있었다. 자리가 가깝게 배정됐고, 식사도 자주 같이했다.
교육 내용이 헷갈릴 때면 서로 알려주며 도움을 주고받았다. 그때의 나는 그 형을 정말 좋은 동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입사를 하고 나서 부서는 달라졌지만, 출퇴근은 계속 함께했다. 내가 차를 가지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같이 움직이게 됐다. 형은 가끔 커피를 사주거나 주유비를 대신 내주기도 했다. 그런 소소한 주고받음이 쌓이면서 관계는 더 빠르게 가까워졌다.

문제는 회사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부터였다. 나는 업무에 아주 능숙한 신입은 아니었지만, 가능한 사람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려고 노력했다. 좋은 이미지를 갖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동기와 친하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는 순간들이 생겼다. 직접적인 이야기를 들은 적은 없었지만, 미묘한 거리감과 불편해하는 시선들이 충분히 느껴졌다. 누군가 “그 사람이랑 친하다면서요?”라고 물으면 나는 “친하긴 한데, 잘 알지는 않아요”라는 말로 슬쩍 선을 그었다. 그때부터 나는 그 동기가 조금씩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쉬는 시간이 겹치면 늘 함께 밥을 먹고 카페에 갔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 장면이 보이는 게 신경 쓰였다. 그 불편함을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그 동기는 만날 때마다 회사생활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 회사는 애초에 잘못됐고, 빨리 이직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이 직장에 나름 만족하고 있었고, 여기서 잘 버텨보고 싶었다. 그의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 이야기를 들을수록 내 마음까지 같이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회사에서만 그랬다면 조금씩 거리를 두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연락은 사적으로도 자주 왔다.

퇴근 후 술을 마시자는 연락, 갑자기 서울로 드라이브를 가자는 제안을 자주 했었다. 이런 연락이 일주일에 몇 번씩 반복되다 보니, 거절하는 일조차 부담이 됐다. 결혼 전, 지금의 아내와 데이트를 하고 있을 때도 전화는 울렸다. 통화를 받으면 회사 이야기와 불평이 길어졌다. 통화 시간이 길어질수록 옆에 있는 아내에게 미안해졌고, “다음에 시간 날 때 다시 전화하겠다”며 급하게 끊곤 했다.

입사 전에는 분명 좋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함께 일하고, 관계가 겹칠수록 점점 버거운 사람이 되어갔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의 평판 때문에 내가 그를 밀어내는 건 아닐까 스스로를 탓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문제는 평판이 아니라 관계의 밀도라는 걸 알게 됐다. 너무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었고, 그건 나에게도 그에게도 좋은 방향은 아니었다.

어느 날, 술자리에서 그 동기가 내 결혼식 이야기를 꺼냈다. 자기는 축의금을 정말 많이 할 거라며 웃으며 말했다. 나는 부담스럽다며, 와서 얼굴만 보고 밥만 먹고 가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그만큼 하면 너도 나중에 그만큼 해줄 거라고 믿어서 그렇다”라고 말했다. 그 순간 솔직히 말해, 부담스러웠다. 나는 그 정도의 관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숫자가 관계의 무게처럼 느껴졌고, 그 무게가 나에게는 과했다. 지금 돌아보면, 내가 그 관계를 이어간 이유는 용기가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먼저 밀어낼 용기도, 정확히 선을 긋는 용기도 없었다. 괜히 연민 비슷한 감정에 기대어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 그 동기는 퇴사를 했다. 퇴사 전 마지막 날, 간단히 술을 마셨다. 그는 힘들었지만 나 덕분에 조금 더 버텨보고 결정한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이 고마우면서도 마음이 무거웠다. 괜히 맞지 않는 곳에 붙잡아 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연락은 자연스럽게 끊겼다. 그리고 내가 결혼할 때가 됐다.

처음에는 그 동기에게 연락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다. 축의금 이야기가 떠올라 더 망설여졌다. 그래도 입사동기였고, 연락하지 않는 것도 이상하게 느껴져 연락을 했다.

그는 새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새로운 곳에 잘 적응하고 열심하 다니며 꽤 만족학 있는 것 같았다. 그 동기는 시간이 되면 결혼식 날 얼굴 보자며 축하 메시지를 보내왔다. 나는 다시 한번 축의금은 신경 쓰지 말고 와서 밥만 먹고 가도 좋다고 말했다.

결혼식 당일, 정신없는 와중에 그 동기가 왔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 반갑기도 했고, 와준 것이 고맙기도 했다. 그는 잠깐 얼굴만 보고 가야 한다며 급히 자리를 떴다. 우리는 제대로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다음에 밥 한 번 먹자”는 기약 없는 말을 남기고 헤어졌다.

결혼식이 끝난 뒤 축의금 명단을 확인하다가 그의 이름을 봤다. 걱정했던 큰 금액이 아니라, 딱 축하의 마음이 담긴 금액이었다. 그제야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그 동기와의 관계는 가까워질수록 힘들어지는 관계였다는 걸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됐다. 나는 그에게 부담이었고, 그에게 나는 억지로 등을 떠미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짧은 시간 동안 붙잡고 있던 관계가 멀어지고 나서야 우리는 비로소 괜찮은 관계가 되어 있었다.

모든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가능하면 잘 지내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멀어질수록 좋아지는 관계도 있다. 욕심 때문에 붙잡고 늘어지는 관계는 정답이 아니고 모든 관계에는 각자에게 편안한 거리가 있다. 그 거리를 알아차리고, 지킬 줄 아는 것. 그게 사회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자, 가장 중요한 능력이라는 걸 나는 이 관계를 통해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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