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서 배운 가장 확실한 의사소통
근래에 제2 외국어를 공부하고 활용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특히 영어는 각자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거의 대부분에 사람들이 조금씩은 쓰고 읽을 줄 알고 있다. 심지어 영어정도는 기본이다 말하고 일본어나 중국어 저 멀리 아랍어 등 다른 제3, 제4의 외국어를 공부하는 사람들도 드물지 않다.
공항에서 일한다 하면 주변에서 영어는 기본으로 하고 다른 외국어도 할 줄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크나큰 착각이다. 한국어도 제대로 못 말하고 어버버 할 때도 많다. 영어는 중학교 영어 수업시간에 겨우 비벼볼 정도로 간당간당 하고 일본어도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 보고 들은 간단한 것들만 겨우 안다. 중국어, 다른 외국어는 거의 모른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그럼 공항에서 일할 때 어렵지 않냐라고 물어보면 또 그렇지만도 않다.
일단 요즘은 휴대폰에 번역어플이 너무 잘되어 있다. 거의 모든 상황에서 번역어플에 도움을 받는다. 상황 전달이나 외국인 이용객의 말을 전해 받을 때 매우 편하고 확실하다. 그렇다고 모든 순간 번역어플을 쓰지는 않는다. 휴대전화를 못쓰는 상황이 생길 때도 있고 번역어플을 쓰기에는 간단한 외국어로도 해결이 가능한 상황들도 있다. 방향을 묻거나, 식당이나 편의시설을 묻는 등 자주 물어보시는 질문들은 외국어로 대화 지문을 만들어 외우고 다닌다. 그렇다고 의사소통이 가능하지는 않다.
항상 내 예상과는 맞지 않는 일들이 생긴다. 우선 외국인 이용객분이 길게 말씀하시면 거의 못 알아듣는다. 그럴 때는 들리는 단어 하나하나를 조합해 대략적으로 이해한다. 이해하는 것과 설명하는 것은 아예 다른 문제다. 이럴 때 번역어플에 도움을 받지 못한다면 마지막 수단을 쓴다. 정말 짧은 외국어와 한국어를 섞어서 단어별로 말씀을 드린다. 동시에 만국 공통에 언어 '바디랭귀지'도 십분 활용한다. 옆에서 보면 우스꽝스럽고 비웃을 수도 있지만 나는 이런 의사소통방식을 더 선호한다.
K팝이나 한국의 콘텐츠들이 외국에서 유행하면서 좋은 점은 국격에 상승이나 경제적 이득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이런 이유들은 뉴스나 여러 매체를 통해 자주 보인다. 하지만 정말 나에게 피부로 와닿는 장점은 외국인 분들 중 한국어가 가능한 사람이 많아지게 됐다. 한국에 여행이나 여러 이유들로 방문한 외국인들도 많이 늘어나면서 외국인 이용객 분들과 대화할 일이 늘어났다.
그분들이 우리 근무자에게 질문을 하는 경우 한국어로 물어보시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어눌하지만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같이 간단한 인사말만 하는 경우가 있는 반면 정말 이국적으로 생긴 한국인이라고 착각할 만큼 유창한 한국말을 구사하는 외국인 분들도 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람에게서 나오는 한국말은 생각보다 많이 반갑고 신기하다.
외국인이 한국어로 질문하고 근무자가 영어나 다른 외국어로 대답하는 웃긴 상황도 많이 연출된다. 하지만 대부분에 경우 유창한 한국말과 유창한 외국어를 구사하는 이용객과 근무자는 드물다. 그럼 시트콤에서나 볼법한 장면이 연출된다. 주로 일본 국적의 이용객 분들과 대화를 할 때 가장 많이 나타나게 된다.
서로 약간의 영어와 약간의 일본어, 약간의 한국어가 섞인 대화를 한다. 옛날 농담에 "핸들 많이 틀어"같은 대화를 주고받는다. 최근에 일본 여행객 분이 "이곳에 물건은 올려놔도 될까요"를 "고레 스테이 됩니까"로 표현하셨다. 나 또한 "하이 이츠 오케이 감사합니다"로 대답해 드렸다. 정말 이상한 대화고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을 사용한 대화였지만 우리는 서로에 말뜻을 정확히 알아들었다.
몸짓 발짓도 총 동원한 그런 정신없고 부산스러운 대화가 이어진다. 그 대화가 끝나고 나면 늘 웃음이 남는다. 문법도 맞지 않고, 발음도 엉망이고, 지금 다시 떠올려 보면 서로 왜 그렇게 말했는지 설명하기도 어려운 대화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순간에는 아무 문제도 없었다. 말이 완벽하지 않아도, 단어가 섞여 있어도, 서로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정확히 전해졌다. 그게 참 신기했다.
외국인 이용객들이 한국에 와서 한국말로 말을 걸어올 때마다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발음이 어색해도, 단어가 틀려도, 그 사람들이 굳이 한국어를 꺼내 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반갑다.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말을 건다는 건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걸 알기에 “안녕하세요” 한마디에도 괜히 더 또박또박 대답하게 된다.
가끔은 내가 더 당황할 때도 있다. 외국인 이용객이 한국어로 질문을 하고, 나는 습관처럼 영어로 대답을 하다가, 서로 동시에 멈칫한다. 그제야 웃으면서 다시 언어를 바꾼다. 그 어색한 순간마저도 나쁘지 않다. 완벽하지 않아서 생기는 틈 같은 느낌이다.
대부분의 경우, 공항에서 오가는 대화는 그렇게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 끝난다. 영어, 일본어, 한국어가 뒤섞이고, 손짓과 표정이 함께 움직인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랑스럽게 할 수 있는 대화는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대화들이 좋다. 교과서에서 배운 문장보다, 시험을 위해 외운 표현보다 훨씬 살아 있는 말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의사소통은 언어 실력의 문제나 얼마나 유창하게 말하느냐보다, 얼마나 전하려고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걸 요즘 느끼고 있다. 미천한 외국어 실력이어도 뜻은 전해진다. 조금 부족해도, 조금 틀려도, 마음이 먼저 움직이면 말은 따라온다.
그래서 공항에서의 이런 대화들은 나에게 소소한 재미가 된다.
하루에도 수십 번 반복되는 안내 속에서, 이런 예상 밖의 대화 하나가 하루를 조금 가볍게 만든다. 완벽하지 않아서 더 기억에 남고, 어설퍼서 더 인간적인 순간들이다.
오늘도 나는 번역 앱을 껐다 켰다 하며, 아는 단어 몇 개를 꺼내고, 모르는 단어는 몸으로 설명한다. 그 과정이 여전히 서툴지만, 그만큼 웃을 일도 생긴다. 이 우스꽝스럽고 부산스러운 대화들이 내가 이 일을 계속하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다. 말이 완벽하지 않아도, 마음은 충분히 닿을 수 있다는 걸 매일 확인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