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바른 사람 옆 오지랖
내가 바른 청년이라 부르는 친구가 있다. 누가 붙여준 별명도 아니고, 본인이 그렇게 살겠다고 선언한 적도 없지만, 이상하게 나는 그렇게 부르는 게 좋았다.
바르다. 참 애매한 말이다. 칭찬 같기도 하고, 어느 순간부터는 거리감이 생기는 말 같기도 하다. 그 친구는 그 애매한 말 한가운데에 서 있는 사람이다.
너무 바른 나머지, 그 나이에 느껴야 할 것들을 조금 덜 느끼고 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오지랖이다. 본인은 한 번도 그런 아쉬움을 내색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늘 자기 선택에 확신이 있어 보였고, 흔들리는 모습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묵묵히 맡은 바 열심히 살아가다가 우리는 생각지도 못한 결과들을 가지고 오기도 한다. 단적인 예시로 우리 친구들 중에 저축을 가장 많이 했다. 그래서 더 궁금해진다. 정말 괜찮은 걸까, 아니면 괜찮은 척을 잘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또 한편으로는 친구들과 놀 때 정말 가감 없이 잘 논다. 술자리에선 크게 웃고, 쓸데없는 농담도 잘 받아준다. 분위기를 망치지 않으려는 어색한 노력 같은 건 없다. 그냥 그 자리에 자연스럽게 섞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속에서 늘 성숙함이 느껴진다.
선을 넘지 않고, 누군가 불편해질 타이밍을 정확하게 안다. 분위기가 과해질 때는 조용히 상황을 바라보고, 누군가 실수했을 때는 실수라는 걸 한번 짚어주고 자연스럽게 웃어 넘겨준다. 그런 태도들이 쌓여서, 그 친구는 늘 ‘믿어도 되는 사람’ 쪽에 분류된다.
문제 상황이 생기면 그 성향은 더 또렷해진다. 감정이 앞서지 않는다. 누가 옳고 그른지를 따지기 전에, 지금 이 상황에서 무엇이 가장 덜 상처가 남을지를 먼저 본다. 냉정 하다기보다는 차분하다. 그래서 종종 “너무 어른 같다”는 말을 한다. 그 말이 칭찬인지, 아쉬움인지 구분되지 않는 순간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냥 고개를 끄덕이거나 웃고 넘긴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저 친구는 언제 철없이 굴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혹은 애초에 그런 시간이 필요 없었던 걸까 하는 의심도 든다. 나는 흔히 청춘을 이야기할 때, 실수와 후회, 방황 같은 것들을 함께 떠올린다. 그런데 그 친구의 삶에는 그런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마치 미리 정해진 답안을 보고 차분히 문제를 풀어온 사람처럼 살아왔다. 그게 나쁜 삶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할 삶일지도 모른다. 다만, 그 과정에서 놓친 감정이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그래서인지 나는 친구의 문제를 보면 괜히 더 마음이 쓰인다. 사실 그 친구는 큰 문제를 만들지도 않는다. 늘 자기 몫 이상을 감당하고, 남에게 짐을 넘기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그의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지 못할 때가 많다. “알아서 잘하겠지”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그 말이 얼마나 편리한 방패인지, 동시에 얼마나 무거운 짐인지 알고 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그 친구의 문제를 덜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해결해 주고 싶다기보다는, 최소한 혼자서 다 끌어안고 있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가끔은 이유 없이 투덜거려도 되고, 말도 안 되는 선택을 해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바르지 않아도, 성숙하지 않아도 괜찮은 순간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 하지만 그런 말을 쉽게 꺼내지 못한다. 이미 자기 삶을 충분히 잘 꾸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모든 걱정은 내 쪽 문제일지도 모른다. 내가 감히 타인의 삶에 ‘아쉬움’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는 건 아닐까. 그 친구는 이미 자기 방식으로 충분히 느끼고, 충분히 선택하며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 방식이 내가 익숙한 청춘의 모습과 다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친구가 가끔은 조금 덜 바른 선택을 해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실패해도 괜찮고, 후회해도 괜찮고, 이유 없이 흔들려도 괜찮은 순간이 그의 삶에도 있었으면 한다. 그게 친구로서의 욕심이자, 오지랖이라는 걸 알고있다.
언제나 바른 청년으로 남아있는 친구의 그 바름이 그의 삶을 지켜주는 힘이길 바라면서도, 동시에 그 바름 때문에 너무 많은 것을 혼자 견디지는 않기를 바란다. 혹시라도 그가 잠시 쉬고 싶어질 때, 문제를 냉정하게 바라보던 그 시선이 자신에게만큼은 조금 느슨해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때만큼은, 괜히 옆에 오래 서 있는 친구로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언제든지 보일 수 있도록, 열심히 알짱거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