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은 기억하고 있을까
지난 주 금요일, 가게에 혼자 계실 아버지에게 팥빙수와 간식거리를 사다 드린 뒤 카메라를 메고 모르는 골목으로 여행을 떠났다. 필름 카메라를 장만한지 이제 석 달 여, 휴대폰 카메라가 어지간한 DSLR 보급기보다 나은 이 시대에 필름 카메라로 역행하는 게 과연 말이 되는 일인가, 내가 몰랐던 사이 열 배 가까이 치솟은 필름 가격에 경악하면서도 지속적인 지출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인 일인가…… 마음 속으로는 그런 고민을 하면서도 나는 결국 필름 카메라를 포기하지 못 했다. 포기하기는커녕, 일주일에 서너 롤씩 필름을 소비하고 있다.
필름 카메라를 장만하면서 내게 생긴 큰 변화는 밖에 나가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건조하고 서늘한 실내에 보관해야 하는 인간이다. 3~4월 정도에는 그나마 괜찮았지만, 본격적으로 여름 더위가 시작되려 하는 이 시기쯤에는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에어컨 아래에 있어야만 하고, 중요한 용건 이외에는 햇빛이 내리쬐는 바깥으로 절대 나가고 싶지 않다고 주장하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다. 그랬던 내가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게 되면서부터는 바깥에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아니, 오히려 기다리게 되었다. 어떤 취미는 가끔 사람의 본질을 손보기도 하는 모양이다.
내가 발을 들인 동네는 아버지의 가게에서 그리 멀지 않았지만, 단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곳이었다. 완만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흥얼거리는 콧노래처럼 이어지다가, 갑자기 옛날식 단층 주택으로 이루어진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하지만 그 마을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 것 같았다. 이따금 한두 명의 사람들이 골목을 지나가기는 했지만, 그곳의 주민은 아닌 듯했다. 재개발에 들어간 동네였다.
집들은 거의 다 뜯어져 있었고, 유리창은 부서져 있었다. 벽에는 온통 스프레이를 뿌려 그려놓은 커다란 가위표가 있었다. 어느 쪽으로 고개를 돌려도 보이는 것이라고는 '출입 금지', '출입 엄금', '멋대로 들어오지 말 것'이라는 문구들 뿐이었다. 그저 지나가는 사람조차 공연히 움츠러들게 만드는 험악한 문구도 있었다. 아무도 살지 않게 된 동네, 아주 고요한 그 골목에서 나는 마치 허상에게 배척을 당하는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종종 불이 켜진 집들을 바라보며 지나갈 때, 나는 저 많은 집 안에 과연 어떤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상상해보곤 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 버릇은 지금도 남아 있다) 이 비어버린 집들을 보면서, 여기에 살던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어디로 가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상상했다. 그리고 이곳에 남아 있는 꽃들, 정원의 나무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자신들을 바라보고, 돌보고, 꽃이 피면 신기해 하며 기뻐하고, 병이 들어 시들시들하면 안타까워 하였을 그 많은 목소리들을 기억하고 있을까? 나무와 꽃들은?
사람들은 모두 어딘가로 떠나버렸지만 꽃과 나무들만은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앞으로 공사가 계속 진행이 된다면 이들 모두는 그냥 사라져 버릴 것이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살 곳을 찾아 떠나갔지만, 남겨진 이들은 그 조용한 동네, 텅 빈 집 앞을 지키다 우묵장성으로 자란 잡초들과 함께 그냥 없어지고 말 것이다. 이름 불러줄 사람도 없이, 꽃이 핀 것을 신기하게 들여다 보아 줄 사람도 없이, 시드는 것을 안타까워 할 사람 없이.
사랑 받았던 과거를, 다정하게 모은 눈길과 손길에 돌보아졌던 시간을 꽃들은 기억하고 있을까. 그 목소리들을, 표정들을. 자신이 지켜보았던 그 모든 집과 사람들의 소리를, 움직임을, 그들의 삶의 궤적을 기억할까. 기억할 것이다. 빈 집 안뜰에 혼자 남아 아직도 흐드러지게 꽃을 피우는 것을 보면. 나는 기억하고 있다고, 당신들이 어디로 가든 기억하고 있다고. 받을 사람이 없어져 버린 배웅을 올해도 계속 하고 있는 것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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