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난 엄마가 즐거웠으면 좋겠어
필름 카메라를 갖게 되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게 되자 엄마와 둘이 데이트를 하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나는 건조, 서늘한 곳에 단독으로 보관해 두어야 하는 내향인이지만 우리집 마님은 다르다. 우리 마님으로 말할 것 같으면 노지 재배에 최적화 된 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심지어 여기저기 뿌리를 옮겨 심을 수록 좋다. 그렇다. 우리 마님은 모험과 여행을 좋아하신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집을 떠나야만 생기가 돈다.
엄마에게는 좋은 친구가 한 분 계셨다. 함께 여행도 다니고, 시설이 좋다는 온천이나 목욕탕도 찾아 다니고, 맛집도 함께 가고, 등산을 하고, 굳이 유명한 곳이 아니어도 노래 부르며 차를 몰고 잠깐 떠났다 올 수 있는 그런 동반자가 있었다. 하지만 그분이 갑작스럽게 유명을 달리하시고, 엄마는 많은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굉장히 허전해했다.
아빠(나처럼 건조하고 서늘한 실내에 보관해야 하는 사람이다)는 휴일마다 엄마와 함께 놀러 나가려고 여행지 정보를 찾지만, 평일의 엄마는 심심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내게는 평일 중 휴무가 있었다. 원래는 다른 일을 하려고 빼 놓은 휴일이지만(투잡러의 스케줄 관리란……) 요즘은 엄마를 위해서 쓰고 있다. 엄마와 함께 가까운 곳이라도, 어디라도, 엄마가 가 보지 않은 곳이든 가 보았던 곳이든 함께 간다.
울산 동해선이 개통된지 한참이건만, 우리 여사님은 아직 이걸 타고 부산까지 가 보지 못 하셨다. 우리 아빠가 대중교통을 너무 싫어하기 때문인데…… 내가 휴무일에 엄마에게 같이 가자고 꼬드겼다. 남포동에 가서 구경도 하고, 전철도 타고, 여기저기 다녀보자고.
엄마는 젊은 시절, 버스를 타고 아빠와 남포동에 자주 왔다고 했다. 둘이 싸우고 나서 화해의 데이트를 하러 자주 왔다나. 혹은 그냥 심심할 때도 구경 삼아 들러보았다고. 이제 많이 변해버린 골목을 여기저기 다니면서 아빠와의 데이트 이야기를 하는 엄마는 귀여웠다. 내가 놓친 피사체들을 가리키면서 "이것도 찍어 봐, 이걸 잘 찍으면 멋지겠는데."라고 신이 나 있었다. 함께 나오기 전까지는 왠지 시무룩했던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며 나는 또 한 번 깨달았다. 역시, 우리 엄마는 밖으로 데리고 나와야 해.
사실 난, 여사님들 사이에서 보편적인 의미의 '좋은 딸'은 아닐 것이다. 결혼은 하지 않겠다, 내가 벌어 내가 알아서 혼자 살겠다고 외치며 엄마로서는 '도대체 왜 저런 곳에 돈을 쓰는지' 이해할 수 없을 취미만 가지고 있으니까. 심지어 직업도 9-6, 꼬박꼬박 사대보험 넣어주고 퇴직금도 주는 평범한 직장이 아니니까. 학원 강사, 소설 작가. 누군가는 '대단하다'고 하지만, 여사님들 사이에서 '우리 아들은 증권가에 근무해, 돈을 얼마나 많이 버는지 모른다니까?'라는 말이 나오면 그냥 아무 것도 아니게 되는 예술 계통의 직업.
하지만 나는 엄마가 나 같은 딸을 두어 조금은 즐거웠으면 좋겠다. 다른 집 자식들처럼 용돈을 듬뿍 주고, 손주를 안겨주고, 훌륭한 사윗감을 데려오지는 못 하지만 그래도 엄마와 함께 데이트를 하면서 사진을 찍고, 노래를 부르고, 엄마의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하고, 엄마가 알려주는 오만 가지 꽃과 나무의 이름들을 외우고 되묻는 내가 있어서 엄마가 조금 덜 외롭다고 생각해 주었으면.
우리 다음엔 또 어디 갈까요? 내 사랑하는 여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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