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님, 저 이직합니다."
오랜만에 차를 마시자고 했던 후배의 말 한마디에 머리가 멍해짐을 느꼈다. 전문성이 나보다 몇 배는 뛰어나고 맡겨진 업무를 완수하기 위해 야근도 불사하던 후배의 지난 모습을 보면서 이 회사에 잘 적응해 나가고 있다고 여겼었다. 다른 선배들과의 관계도 원만하였고 부서장의 평가도 긍정적이었고 무엇보다, 승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어지는 대화를 통해 후배는 몇 가지 사실을 더 알려주었다. 자신보다 몇 년 일찍 승진한 선배들의 업무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직을 결심하게 되었다는 것, 이직 결심을 굳힌 지 오래되었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결정에 확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선배들의 업무 모습을 보면서 '승진을 하더라도 크게 변하는 것이 없구나'는 생각이 들어 이 회사를 더 다녀야겠다는 희망이 줄어들었다는 이야기가 내 마음을 푹 찔러 왔다. 아뿔싸, 내가 불평불만을 너무 많이 했구나. 어딘가에서부터 자료 작성 요청 메일이 올 때마다 푸념을 늘어놓던 것을 바로 옆자리에서 다 듣고 있었구나. 그즈음은 경영진의 요구사항이 폭증할 때여서 이러저러한 자료 작성 요청이 넘쳐나고 있었다. 대부분의 자료가 긴급을 요하는 자료들이어서 하던 업무를 제쳐놓고서 매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하나의 보고자료를 해치우고 나서 한숨 돌리려 하면 날아오는 '긴급' 딱지가 붙은 새로운 자료 요청 메일들을 보면서 속으로 숱한 비명을 질렀었다. 비슷한 연차의 동료들과 옥상에 올라가 흡연을 하며 불평을 토해내는 것이 주요 일과일 정도였다. 마음을 정한 것이 후련한 듯 최근 어느 때보다도 평온한 후배의 얼굴을 보면서 '잘 결정했다. 그동안 애 많이 썼다. 도와준 게 없어서 미안하다.'는 말 외에는 할 수 없었다.
며칠 후, 후배가 퇴사하면서 보내온 메일에는 보다 구체적인 사연이 담겨 있었다. 메일의 내용이 길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회사생활에서 느낀 불만을 전달하기에는 부족하지 않았다. 그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 '내가 이러한 일을 하려고 이 회사에 들어온 것인가' 하는 실망이다. 그 메일을 읽으면서 불과 2년 전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어렵게 회사에 들어왔지만 경직된 문화, 밑도 끝도 없는 행정 업무, 고압적인 태도의 상급자들을 대하면서 처음의 열정과 희망은 깎여나가고 냉엄한 현실을 보게 되었다. 내가 이렇게 정체, 아니, 퇴보하고 있는 사이에 다른 곳에서 승승장구하는 친구들의 모습을 소셜 미디어로 보면서 내 마음은 더욱 초라해져 갔다. 회사 가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저녁에 잠이 들면서 차라리 깨지 않았으면 한 날들. 한없이 작아진 자존감 속에서 그저 시간이 빨리 흐르기만을 바랐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나와는 다른 선택을 하여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어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이렇게 유능한 후배들이 계속해서 회사를 이탈하는 것을 보면서 직장생활을 지옥같이 만드는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그 친구가 너무 뛰어나서 그런거야. 나 때는 그 친구보다 업무가 더 많고 힘들었어."
후배의 퇴사는 한동안 화젯거리가 되었다. 유능한 직원이 그렇게 퇴사한 것에 대하여 안타까워 하는 반성론, 원래부터 우리 회사를 오래 다니기 어려운 성격이었다는 천성론, 누가 그렇게 힘들게 한 것인지 밝혀내야 한다는 책임론, 사실 그 친구는 Ace가 아니었다는 기만론까지 다양한 관점의 분석이 나왔지만 그저 업무의 괴로움을 덜어내기 위한 안줏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는 여전히 힘들고 괴롭게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월급쟁이로 일을 한다면 어디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애써 자위하면서 한편으로는 더 좋은 어딘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망상을 하며 그저 버텨낸다. 하루하루 생기가 없어지고 찌들어가는 동료와 후배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선배라고 다를까. 나 역시 후배들이 보기에는 선배인데. 우리는 어느새 이직한 사람들에게 탈출했다는 표현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처음 입사했을 때의 기쁨과 설레임, 기대감은 어느새 사라지고 불친절한 사람들과의 어색한 관계, 요구사항이 불확실하면서 빡빡한 업무들, 쉽게 이해되지 않은 절차들, 불확실한 보상 - 속에서 하루하루 마모되는 것을 느끼며 서로에게 웃어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