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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영준 Jan 20. 2020

사랑해서 했던 이별

미안함과 사랑. 그 사이.

-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어요.


- 많이 사랑하셨나요?


- 네. 정말 많이 사랑했죠. 이런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 그런데 왜 헤어지셨어요?


- 제가 그만 만나자고 했어요. 너무 미안해서.


- 미안해서? 이야기 좀 더 해줄 수 있으신가요?


- 음.. 어디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우선 저희는 4년 정도 만났어요. 대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만났죠. 처음 이야기했을 때부터 느꼈지만, 우리는 정말 잘 맞았어요.그래서인지 거의 싸운 적도 없고, 만날 때마다 정말 즐거웠죠. 그런데 한 3년 정도 됐을 때였나, 아마 그쯤이었을 거예요. 마냥 즐겁기만 할 수 없었던 게. 그 친구는 졸업을 하고 바로 취업에 성공했고, 저는 그러지 못했거든요. 처음에는 괜찮았어요. 요즘 취업이 쉬운 것도 아니니까. 그 친구가 잘한 것이지, 제가 못난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았거든요. 그런데 그게 1년이 지나고, 2년째에 접어드니까 문제가 된 거예요. 점점 제가 작아진달까? 이력서는 계속 떨어지지, 어떻게 하다 가게 된 면접도 결국 불합격. 자꾸만 떨어지기만 하니까 세상이 원하는 기준보다도 한참 모자란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그러다 보니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점점 위축 됐거든요. 그 상태로 그 친구를 만나니,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더라고요. 직장 이야기를 하면 괜히 제가 불편해하지 않을까. 조심스러워하는 모습도 보이고, 자신도 힘들면서 자꾸만 제 걱정만 해주는 게 보였으니까. 그게 참 미안했어요. 참 여린 사람인데, 저 때문에 티 내지 못하는 것이. 힘이 돼주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것이. 또, 좋은 곳도 데려가고 싶고, 맛있는 것도 먹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제가 답답하기만 하기도 했죠. 그러다 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대우를 받을 사람이 아닌데. 괜히 내가 그 친구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내가 없으면 더 좋은 대우를 받으며 행복할 텐데. 뭐 이런 생각들이요. 물론 그 친구도 그렇고, 많은 사람들이 그래요.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좋다. 나중에 성공해서 잘해주면 되지.라고. 저도 이 말이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아요. 다만,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현실과 마주하는 것이, 그 친구가 나 때문에 포기하는 것들이 많아지는 것을 보는 것이 너무 힘들었을 뿐이죠. 그래서 헤어졌어요. 참 바보 같은 말이지만, 그래도 나보다 좋은 사람을 만나서 많이 누렸으면 좋겠어서. 나 때문에 괜히 많은 걸 포기하지 않았으면 해서.


- 그래서 헤어지고 나니 어떤가요?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았어요?


- 잘 모르겠는데.. 조금은 후회돼요. 그만 만나자는 말에 슬퍼하는 그 친구를 보니까 마음이 아파서 그래도 헤어지자는 건 아니었나. 싶기도 했고, 옆에서 늘 응원해주며 웃어주던 친구가 없으니까 많이 보고 싶기도 하고 그러거든요. 아침에 눈뜨고, 저녁에 잠들 때까지 그 친구는 늘 제 일부였으니까. 그래서 이럴 줄 알았으면, 이럴 줄 알았으면. 이라면서 후회도 많이 했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슬퍼하는 모습이라도 더 눈에 담고 올 걸. 이럴 줄 알았으면 사랑한다는 말도, 고맙다는 말도 많이 해줄 걸. 뭐 이런 식으로요. 근데 그래도, 아마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같은 선택을 했을 거예요. 그 친구가 별 볼일 없는 제 눈치만 보는 것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 또, 그립긴 해도, 후회한다고 달라질 건 없잖아요. 이미 헤어져버렸으니. 그냥 열심히 살아야겠단 생각뿐이에요. 미안했던 만큼, 사랑했던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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