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직패스, 돈으로 만들어진 모욕

매직패스의 핵심은 타인의 선취권을 침해한 부당이익을 제삼자가 챙기는 것

by 노진구

유원지의 매직패스는 '돈을 더 많이 내면 줄을 서지 않아도 되는 권리'를 말한다. 언뜻 들으면 그럴싸하다. 돈이 있는 자, 쾌적하게 즐겨라. 돈이 없는 자, 불편을 감수해라. 이런 식이다. 마치 유튜브 프리미엄을 구독하지 않으면 유튜브를 보다가 중간에 광고를 봐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공공장소에서 줄을 서지 않고 바로 입장하는 권리'와 '유튜브 중간광고를 스킵하는 권리'가 새삼 같지 않는 느낌이 든다. 이는 간단한 사고 실험을 통해 입증할 수 있다.


만약 모든 사람이 매직패스를 구매했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모든 사람이 줄을 서지 않아도 될까?


또는 모든 사람이 매직패스를 구매했을 때와 모든 사람이 매직패스를 구매하지 않았을 때, 소비자가 누리는 서비스의 질적 차이가 발생하는가?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다.


유튜브 광고를 보지 않는 권리와 달리, 공공장소에서 줄 서기를 생략하려면 필연적으로 줄을 선 누군가의 양보(또는 먼저 들어갈 기회를 박탈하는 것)를 필요로 한다. 반대로, 모든 사람이 매직패스를 구입하면 권리를 침해할 상대가 없어지므로 특권도 무효가 된다.


만약 위의 질문에서 '매직패스'를 유튜브프리미엄 상품으로 바꾸고, '줄 서지 않을 권리'를 '광고를 보지 않을 권리'로 바꾸어 질문하면 전혀 다른 대답이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매직패스가 단순히 '더 많은 비용을 내고 더 좋은 서비스를 즐기는 것'은 아니란 소리다.


이 문제는 마이클 샌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 정확히 첫 번째 문제로 나온다. 샌델에 따르면 매직패스와 같은 서비스는 민주주의 사회가 갖고 있는 기본적인 룰을 위협한다.


그 룰이란 다음이 아니라 '줄 서기의 도덕성'이다.

줄 서기는 한정된 자원을 공정하게 분배하는 방식이다. 많은 사람이 그것을 원한다면, 누구보다도 먼저 더 빨리, 그리고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 사람순으로 그것을 누리게 하자는 것이다. 줄 서기의 장점은 누구나 공정하게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줄을 서기 위해선 그밖에 별다른 자격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나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으며, 누구나 더 먼저 오면 우선권을 준다는 공정함 때문에 우리 사회는 줄 서기를 기본 윤리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다. 만약 이를 무시하고 여러분이 줄 서기를 어긴다면, 다른 시민들의 호된 비난을 마주하게 된다.


같은 맥락에서, 매직패스는 공연장이나 교통편의 우등석을 구입하는 것과 다르다. 이것은 우등한 서비스를 비싼 가격에 파는 게 아니라, 동등한 서비스의 '선취권'(먼저 누릴 기회)를 파는 것이다. 돈을 낼 수 있다면 퍼스트클래스는 누구나 탈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제로섬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그에 비해 줄 서기의 본질은 제로섬이다.(물론 퍼스트클래스도 구입하고자 하는 사람이 많으면 '줄 서기'를 해야 하고, 동시에 퍼스트클래스 매직패스(우선권)도 생길 수 있다) 따라서 누군가가 선취하면 필연적으로 가지지 못하는 사람이 생긴다. 같은 맥락에서 매직패스의 본질은 '시간을 아끼는 서비스'가 아니라 '나 대신 다른 사람의 기회를 빼앗는 서비스'다.


이런 새치기할 권리는 돈을 지불하면 누구나 이 줄 서기의 도덕을 무력화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돈을 더 내면 '모두가 지켜야 할 공공질서'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듯 말이다. 그리고 여기에 지불하는 비용은 줄서기라는 공공질서를 어기는 것에 합당한 값을 지불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공동체의 윤리를 해치는 것에 얼마를 지불해야 정당한 걸까? 매직패스를 하면서 내는 비용의 총합은 모두가 줄 서기를 하는 공중도덕의 타락보다 더 비싼 가격을 치르고 있는가?


아주 이상한 이야기다.

누군가가 내가 누려야 할 권리를 가로챘다고 가정해 보자.

그 사람은 자신이 그 권리를 가로챈 대신에 원래 티켓가격의 2배에 해당하는 비용을 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정작 그에게 권리를 침해당한 사람은 아무런 보상을 얻지 못했다. 새치기를 한 사람은 자신의 도덕적 면죄에 대한 값을 치렀는데, 보상을 받아야 할 사람에게 남은 것은 '돈이 없으면 새치기를 당하라'는 모욕감뿐이다.


매직패스로 인한 인센티브는 기껏해야 유원지의 이익을 증대시킬 뿐이고, 매직패스로 인한 수익 전부를 합해도 새치기를 당한 사람들의 손해에 미치지 못하다. 생각해보라. 나보다 늦게 온 사람이 나보다 먼저 입장하도록 양보해 주기 위해 나는 얼마를 받아야 정당한가. 매직패스를 통해 입장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새치기를 하고 있다는 죄책감을 몇 푼 안 되는 추가입장료로 면죄받고 있는 셈이다. 반대로 새치기를 당한 사람들은 보상은 고사하고 '추가 비용을 내지 않았으므로 새치기를 당해도 싸다'는 도덕적인 모욕을 당하고 있다.


매직패스는 작고 귀여운 권리이지만, 새치기할 권리(남보다 먼저 누릴 권리)를 꼭 유원지에서만 적용할 필요가 없다. 돈이 있으면 공정한 경쟁(시험이나 자격)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돈이 있으면 타인의 존엄성을 존중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돈이 있으면 다른 위급한 환자를 제치고 먼저 수술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돈이 있으면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는 것은? 생각해 보면 결국 이 모든 문제는 '돈을 살 수 있는 것을 어디까지로 설정할 것이가'라는 근본적 물음에 도달한다.


세상의 모든 형태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겠다는 생각에 대해 나는 단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바쁜 사람도 있는데 놀이공원 정도는 돈 좀 더 낸 사람이 먼저 들어가도 괜찮다'는 생각이 모든 새치기를 위한 변론으로 쓰이게 될 테니 말이다. 그리고 일단 그렇게 우선권을 파는 것이 일반화되면 다른 윤리적인 문제도 역시 가격표가 붙기 시작할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우리의 윤리도덕이 헐값에 팔려나가는데도, 그에 대한 보상조차 우리에게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소한 이익을 위해 스스로의 권리를 내려놓는 것은 차라리 정당하다. 그에 비하면 매직패스는 타인의 권리를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는 방식으로 팔아넘기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이 복잡한 상호작용으로 인해 응당 비판받아야 할 상대가 누군지 알 수 없어졌다는 것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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