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장을 뒤집어 놓은 신랑, 신부.

by 현동인

혼기를 한참 놓친 A 씨는 오늘도 성모님께 열심히 기도하였다.
성모님... 제 나이 벌써 40줄에 접어들었군요.
그렇지만 지금도 저는 여전히 장가를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여자들은 저를 싫어할까요?

저는 착하고 직장생활도 열심히 해서 큰돈은 모으지 못했지만 작은 아파트 한 채도 갖고 있답니다.
근데 여자들은 그런 저를 거들떠보지도 않네요...
저를 만난 여자들은 한결 같이 제게 묻더군요.

대학은 어디를 나왔느냐.. 무슨 회사에 다니느냐... 연봉은 얼마나 되느냐... 아파트는 몇 평이냐...
어떤 차를 몰고 다니느냐...
그렇게 여자들이 물을 때마다 저는 솔직하게 대답했지요.
십계명에 거짓말하지 말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잖아요?

그래서, 학교는 지방대를 졸업했고 , 중소기업에 다니면서 연봉은 4천 정도에 21평짜리 아파트에 살고 차는 2년 전에 중고 모닝을 구입해서 5년째 타고 다닌다고 했지요.
그랬더니 여자들 얼굴이 싸늘하게 굳으면서 그 나이에 뭐 하고 살았냐고 제게 대 놓고 핀잔을 주더군요.

그리곤 메시지를 보는 척하더니 바쁜 일 있어서 가 봐야 한다고 뒤도 한번 돌아보지 않고 그냥 나가버리는 것 있죠?
저는 그녀들이 박차고 나간 카페 문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다가 비싼 커피 값만 내고 왔답니다.
그렇게 여자들과 언제부터 제가 선을 보았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제 친구 녀석들은 저처럼 선도 안 보고 여자들과 연애해서 장가들만 잘도 가는데
저는 여자들 앞에만 있으면 식은땀이 흐르고 말도 엄청 더듬어서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한답니다.
그래서 40이 훌쩍 넘도록 여자들과 연애 한번 못하고 살았어요...
성모님... 저..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아야 할까요?

지난 주일, 미사 드리고 나오는데 저를 잘 아시는 연세 지긋하신 아주머님이 저를 붙잡고 그러시더군요.
형제님!~~ 아직 결혼 못하셨수?
에그... 쯧쯧쯧... 안타까워서 어쩌누.... 형제님 그러지 말고 지금이라도 수도원에 들어가는 게 어떠슈?
거!~ 내가 보아하니 형제님 주제에 결혼하기는 애당초 그른 것 같으니 수도원에나 들어가슈.
결혼 잘못해서 여자 나가고 아기들 혼자 키우는 남자들도 많은데 그렇게 되는 것보담 훨씬 낫지 않겠쥬?

성모님... 이건 덕담인가요? 아님 악담인가요?
아주머니께 그런 말씀 듣고서 솔직히 저 무지하게 열받았습니다...
제 주제가 어때서요? 키는 좀 작아도 눈, 코, 입, 정상적으로 다 있는데요...
하긴, 제 얼굴이 좀 민주적으로 생기긴 했어요... 어떡해요... 제가 그렇게 생기고 싶어서 생긴 것도 아닌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 아주머니는 제게 어떻게 그리 말씀하실 수가 있냐고요...

수도원에나 들어가라니요? 우리말이 아!~다르고 어!~다르잖아요.
그냥 수도원도 아니고 수도원에나...

수도원에서 *나*자 하나 더 붙은 것뿐인데

아주머니에게 수도원에나 들어가라는 말 들으니까 마치 제가 폐기처분 직전의 상품들이 창고 대방출당하는 것처럼 기분 정말 더럽더군요... 그리고...
수도원이 저처럼 장가 못 가고 있는 군상들이나 가는 곳은 아니잖아요?
성모님... 제발 저에게도 아내를 보내달라고 주님께 기도 좀 해주세요.
저는요... 아내가 있으면 엄청 사랑해 줄거구요... 나중에 아이들이 태어나면 저는 아내와 아이들 데리고 미사도 열심히 다닐 거고요... 성지순례도 할 거예요.
그게 저의 소원인데 성모님은 여태껏 저의 기도를 주님께 빌어주시지 않는가 보네요.

한 달 후, 친한 후배의 소개로 A 씨는 B라는 아가씨를 만나게 되었다.
역시, 여자 앞에서는 긴장해서 제대로 말도 못 하는 A 씨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식은땀만 흘리면서
커피만 홀짝홀짝 마셔댔다.
상대방 아가씨도 그저 고개 숙인 채 침묵만 지키고 있었다.
그녀 역시 남자 앞에서는 무척 수줍음을 타는 여자였기에 남자에게 먼저 말을 걸 용기가 없었다.
한참 동안 어색한 침묵이 흐른 후, 이윽고 A 씨가 더듬으며 말을 꺼냈다.

저... 제이름 모... 모르시죠?

저는 처.. 처... 처... 철이라고 합.. 합.. 니다.

이.. 이름이 외.. 외자예요.

그런데.. 성.. 성이 좀 문제가 있.. 있는데요..

제 성.. 성은 전 씨랍니다. 그.. 그러니까 제 이름은 전.. 전철이에요.
지하철이 아.. 아닌 전철이요 전철이라고 합니다.

남자의 이름을 듣게 된 B 양은 갑자기 배를 움켜쥐며 까르르 웃는 게 아닌가?
여자의 갑작스러운 웃음에 당황한 A 씨는 여자를 의아하게 바라보며 물었다.

저.. 저.. 제 이름이 그렇게 우.. 우.. 스운가요?

남자의 말에 눈물까지 훔치며 웃던 B 양은 간신히 웃음을 멈추고 말하였다.
제 이름은 호선이에요 호선!~그런데 제 성이 뭔지 아세요?
이 씨예요!~~ 그러니까 이호선이 제 이름이랍니다.
아저씨 이름은 전철!~제 이름은 이호선!!~~
그러고 보니 우리 두 사람은 이호선 전철이네요. 깔! 깔! 깔!
우린 연분인가 봐요. 까르르르.
B양의 이야기를 들은 A 씨, 듣... 듣고 보니 그... 그러네요!~허허허

그렇게 인연이 된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고 하객들은 주례사를 듣고는 모두 뒤집어졌다.

주례왈!~~ 제가 아주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의 주례를 서봤지만 오늘 같은 주례는 첨 서봅니다.
왜냐하면 저는 지금 전동차(전철)와 선로(이호선)의 주례를 서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럼 잠시 후, 이호선 전철이 힘차게 출발하오니 하객분들은 모두 승차하시기 바랍니다!~
딴♪따다단♪♩ ♬딴♪ 따다단!~♪♩ ♬결혼행진곡이 울려 퍼지면서 결혼식장은 웃음바다가 되었고
그 후, 두 사람은 아들 딸 낳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


*일하면서 들은 라디오 청취자가 보낸 실화와 제 이야기를 토대로 엮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쌀과자 세 개의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