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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동인 Aug 06. 2024

결혼? 쉬운 줄 알았더니 머나먼 길이었다 2화

산은 우리들의 유일한 아지트였다

예나 지금이나 여자를 무장해제 시키는 가장 빠른 방법은 결혼을 약속하는 것이다. 물론 지금처럼 성이 개방된 사회에서는 굳이 결혼을 약속하지 않은 사이라 할지라도 서로가 좋으면 언제든지 모텔에서 바디랭귀지를  할 수도 있겠지만 40여 년 전, 내가 처음 연애할 당시의 여자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손 한번 잡는 것도 쉽지 않을 정도로 성에 대해서는 상당히 보수적이었는데 더구나 내 첫 애인이었던 S 양은 아직 18살 미성년자 아닌가? 그러나  70년대 말, 18살의 여자들은 비록 주민등록상으론 미성년자들이었지만 그녀들의 정신연령은 지금의 2~30대 여자들 못지않게 성숙했었다.
사람은 환경의 동물이라 했듯이 그 시절의 열악했던 사회는 한창 부모들에게 응석을 부릴 나이에 공장에서 일을 하며 가족들 생계의 일부분을 책임져야 하는 십 대들을 일찍 철들게 하고 사회에 눈을 뜨게 만들었다.


따라서 그 당시 십 대들을 지금의 철부지 십 대들의 정신연령과 동일시해서는 곤란하다.
성인들과 거의 같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여자들의 보수적인 성 인식을 남자들이 단번에 깨는 방법은 바로 결혼을
약속하는 것이다. 그렇게 결혼을 약속한 사이로 발전하게 되면 여자는 자연스럽게 무장해제를 하기 마련이다. 어차피 결혼할 사인데 서로 간에 밀당을 하면서 시간 낭비 할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나 또한 S 양과  결혼약속을 한 후, 첫 키스를 하게 되었는데 어디에서 어떻게 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아마도 산속인 것 같았고 둘 다 무척 서툴렀었다.


요즘이야 남자아이들조차도 초등 5학년 정도만 되면 스마트폰으로 온갖 야동들을 섭렵하게 되는 경지에 이르게 되지만 성에 대해서는 거의 폐쇄적인 사회분위기였던 70년대 말 청춘들은 키스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어느 날부터는 S 양과 제대로 키스를 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 기분은 말로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황홀했고 마치 혀끝에 짜릿한 전기가 오면서 꿀처럼 달콤함을 느꼈다. 남녀가 처음 만나서 필이 통하게 되면 뇌하수체에서는 일명 사랑의 호르몬인 "도파민"이 분출된다. 이때는 온 신경이 상대방에게 집중되면서 하루종일 기분 좋은 흥분감에 빠지게 되는데 내가 좋아하는 이성을 생각하고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황홀 빠져 산다.


이때의 스킨십은 그저 둘이 손만 잡고 다니는 정도만 되어도 만족하는데 그 상태를 길게  
지속하는 커플도 있고 나처럼 성질 급한 인간들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정상까지 도달하려고 한다. 남녀의 관계는 마치 계단을 오르듯이 도파민, 페닐에틸아민, 엔도르핀, 이렇게 3단계로 급격하게 발전한다. 1단계인"도파민"상태에서는 카페에서 만나 마시고 하하 호호 웃으며 대화하고 영화관람도 하다가 조금 더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남자가 여자의 손을 잡는 정도의 스킨십 정도로 그치지만 그 상태에서 조금만 더 앞으로 나가면  2단계인 "페닐에틸아민" 늪에 빠지게 되면서 그때부터는 본격적으로 서로의 육체를 갈망하게 된다.


바디랭귀지로 대화하는 상태로 접어들면 두 사람 사이는 항우장사도 떼 놓지 못할 정도로 단단히 결합하게 되는데"사랑에 눈이 먼다"는 것이 이 때문에 생겨난 말이다."페닐에틸아민"에 빠진 두 남녀는 주위의 극렬한 반대나 장애물이 있어도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약에 중독된 사람은 그 어떤 약물로도 치료하기 어렵듯이 한번 사랑이라는 마약에 빠진 남녀는 설사 부모가 결사 반대할지라도 차라리 두 사람 다 강물에 뛰어들어 목숨을 끊을지언정 외부의 압력에 절대 굴하지 않는다.

이 상태에서는 눈이 있어도 보이지 않고 귀가 있어도 들리지 않게 된다.
그래서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란 세기를 뛰어넘는 명작 소설이 탄생하지 않았는가?


이처럼 사랑의 호르몬들 중에서 "페닐에틸아민"은 두 사람을 풀지 못할 매듭처럼 묶어주는 아주 강력한 호르몬이다. 나와 S 양 또한 급격하게 "페닐에틸아민"상태로 돌입하게 되었지만 그 당시는 어린 청춘남녀들이 마음껏 사랑을 할 수 있는 장소들은 없었다. 지금이야 청소년들조차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탈선을 저지를 수 있는 노래방이나 심지어는 모텔들도 돈만 내면
이들을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70년대 말의 대한민국 사회는 우리 같은 어린 커플에게는 연애의 사막과도 같았다. 지금처럼 노래방이나 비디오방 모텔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여관이나 여인숙 정도의 숙박업소 정도 밖에는 없었는데
누가 봐도 어린 학생으로 보였던 우리들이 그런 곳에 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설사 갔다 하더라도 어린것들이 불 장난 한다고 주인들에게 야단만 맞고 쫓겨날 것이 뻔했다. 그럼 갈 곳이 어디 있겠는가? 옛날 소설에서는 젊은 연인들이 사랑을 하는 장소로 물레방앗간이 자주 등장하지만 농촌도 아닌 도심에서 더구나 아무리 70년대 말이지만 그런 물레방앗간이 있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돌파구가 없지는 않았다. 바로 산이 있기 때문이다. 산은 많은 사람들에게 자연의 숨소리를 느끼게 하면서 운동과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해 주지만 때론 연인들에게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면서 어느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다.
 "페닐에틸아민"의 늪에 발을 내디딘 우리들에게 산은 S 양과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고 S 양과의 첫 키스도 등산하다가 했을 것이다. 처음 만나서 데이트를 할 때는 주로 시내를 손 잡고 다니면서 하루종일 걷다가 배가 고프면 중국집에 가서 밥을 먹고 다방에서 차를 마시며 대화를 하는 정도였지만 산에서 첫 키스를 하고 난 뒤부터는 데이트 장소가 주로 산으로 바뀌었다. 산에서는 어느 누구의 눈치나 방해를 받지 않도록 나무들이 우리 두 사람을 가려주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한 번은 군사보호지역인 곳을 모르고 산에 올랐다가 군인들에게 발각되어서 쫓겨 내려가기도 하였고 은폐물이 없이 탁 트인 산 중턱에서 끌어안고 있는 모습을 정찰하던 헬기가 발견하고는 우리들 주변을 맴돌기도 하였다.
화들짝 놀란 우리는 서둘러서 숲 속으로 달아나 숨었지만 한 동안 헬기는 우리들 머리 위에서 제자리 비행을 하였기에 나와 S 양은 헬기가 떠날 때까지 두려움에 떨기도 하였다. 민간인들이 드나들어서는 안 되는 지역을 멋도 모르고 출입한 대가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사랑놀음은 여전히 산에서 이루어졌고 S 양과 첫 선을 넘은 곳도 역시 그녀의 기숙사 근처인 야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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