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쉬운 줄 알았더니 머나먼 길이었다 1화
장가를 빨리 가고 싶었는데.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국어선생님이 내 얼굴을 보더니 장가를 일찍 갈 것이라고 하였다. 아마도 선생님께서 관상학에 대해 알고 계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이마 떼기에 결혼을 일찍 할 녀석이라고 도장이라도 찍혀 있었던 모양이다. 그때 내 나이 20살. 중학교를 졸업하고 가정형편상 일찍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가 남들보다 2년 늦게 고등학교를 들어갔었지만 선생님의 예언대로 나는 학생신분인데도 불구하고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도 있었다.
어려서부터 남달리 이성에 눈을 일찍 떴던 나는 결혼을 빨리해서 가정을 갖고 싶었고 어린 나이인데도 왜 그렇게 결혼을 하고 싶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보다 2살 연하인 여자친구가 있었던 것이다. 지금이야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거의 대학으로 진학을 하는 사회이지만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때만 하더라도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았다. 대학은커녕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들도 그렇게 많지 않았던 시절이었기에 중학교만 졸업하고 일찌감치 산업전선에서 일하는 청소년들이 참 많았다.
그때도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던 나는 야간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학비를 벌기 위해 주간에는 워키토키를 만드는 전자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공고를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은 생산라인의 수리기사나 아님 팀장으로 발탁이 되었는데 지금은 30대들 조차도 철부지 청소년티를 벗어나지 못하는 응석받이들이 많지만 그 시절에는 군대를 제대한 남자들은 일찍 철이 들었고 결혼도 20대 중반쯤에 많이들 하였다.
군대를 갔다 온 20대들이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또 결혼하기도 쉬웠다.
월세방 하나 장만 할 정도의 능력이 있으면 되었으니 지금 시대와 비교하면 참으로 격세지감이다.
나는 일전에 전자회사에서 일했던 경력으로 아직 학생이었지만 회사에서 무전기 수리기사로 일할 수 있었다. 수리기사와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아가씨들과는 일종의 상하 관계가 형성이 되었는데 수리기사 직급이 좀 더 높았다. 나는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S 양을 처음 보게 되었고 한평 남짓한 작고 네모 반듯한 검사실에서
생산라인 벨트에 쏟아져 들어오는 작은 워키토키 성능 검사를 하는 것이 그녀의 일이었다. 흰 얼굴에 하얀 장갑을 끼고 검사장비 앞에서 빠르게 손을 놀려가며 제품들을 검사하는 S 양과 어쩌다 눈이 마주쳐도 왠지 모르게 무척 냉랭하면서 도도해 보였기에 나는 일부러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러다 학교 갈 시간이 되어서 남들은 한창 일하는 시간에 작업복 대신 지금 고등학생들은 들어본 적도 없는 일명 개구리복이라 불리는 교련복으로 갈아입고 회사문을 나설 때면 S 양을 비롯한 다른 여자들이 모두 부러움과 선망의 눈망울로 바라보곤 하였다. 그녀들은 대부분 중학교만 졸업하고 가정형편상 고등학교는 진학도 못하고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해야만 하는 처지였기에 교복을 입고 회사문을 나서는 내가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전자회사는 특성상 남자들은 별로 없고 여자들이 넘치도록 많았다.
한창 남성호르몬이 활발하게 분비가 되면서 피가 끓는 20살 청춘이었으니 여자를 좋아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더구나 나는 결혼을 일찍 하고 싶어 안달이 난 상태였기에 많은 여자들 중에서 마음에 드는 여자를 물색하고 있었다.
아무리 여자들이 많은 곳에 있다 하더라도 유독 내 눈에 띄는 여자는 따로 있기 마련이다.
나는 그중에서도 갸름한 얼굴에 충청도 말씨를 쓰는 P 양이 눈에 들어왔었고 좋아하게 되었지만 그녀는 한눈에 보기에도 상당한 미인이었는데 나는 말도 제대로 붙이지 못한 채 혼자서만 짝사랑하고 있었다. 그러다 P 양과 오빠 동생으로 친하게 지냈던 한 동료의 주선으로 P 양과 그녀의 친구였던 검사실 S 양과 함께 창경궁에 놀러 갔다가 S 양이 나를 많이 좋아하는 것 같다고 동료가 귀띔해 주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동료 녀석은 자기 애인이었던 P 양을 내가 많이 좋아하는 것을 눈치채고는 나의 관심을 돌리려고 일명 연막작전을 핀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동료의 연막작전에 눈이 멀어서 S 양을 보았더니 내가 좋아했던 P 양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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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죽도 못 먹고 자란 인간처럼 몸이 삐쩍 말랐던 내 눈에 글래머스한 몸매면서 우유처럼 뽀얀 피부를 갖고 있는 S 양이었기에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는 눈이 아주 높아 보이는 여자처럼 보였었다.
그런 여자가 나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전혀 뜻밖이었지만 내가 좋아했던 P 양은 이미 오래전부터 동료와 서로 그런 사이였기에 고심 끝에 그녀를 포기하고 자연스럽게 S양과 사귀게 되었다. 그렇게 20살 청년과 18살의 내 여자친구는 쉬는 날이면 인근 유원지와 산으로 강으로 손 잡고 다니며 연애를 했었고 그런 우리들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선은 매우 따가웠다.
지금이야 중학생 커플들도 어른들 눈치 따위는 보지도 않고 길거리에서 스킨십을 보란 듯이 하는 세상이 되었지만 내가 연애를 하였던 70년대 말 사회 분위기는 지금과 비교 조차 할 수도 없이 보수적이었기에 그때 당시 어른들의 눈에 우리 두 사람은 한 낮 어린것들이 불 장난 하는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로미오와 줄리엣의 나이가 겨우 17세, 16세였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20살이면 나도 이제는 어엿한 성인이 되었다고 여겼던지라 그런 어른들의 눈총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내 여자친구는 성격이 온화하면서도 나를 세세하게 챙겨주었다. 둘이 산이나 들로 데이트를 하다가도 내 바지가 조금이라도 더러워지면 쪼그리고 앉아 자기 손수건에 물을 적셔서
깨끗이 닦아주곤 하였는데 그럴 때마다 내 어린 여자친구가 마치 엄마처럼 느껴지곤 하였다.
중화동에 있었던 회사가 멀리 김포공항 근처의 방화동으로 이사를 가게 되어서 나는 퇴사하였지만 여자친구는 회사에서 마련한 기숙사에서 거주하며 근무하였기에 우리는 장거리 데이트를 할 수밖에 없었다. 늦게까지 데이트를 하고 집에 올 때면 여자친구는 택시를 타고 가라면서 차비까지 내게 챙겨주었는데 체면상 절대 받지는 않았지만 그런 여자친구의 마음 씀씀이에 나는 적잖은 행복감에 젖어들곤 하였다. 나중에 결혼하면 내 여자친구는 아주 좋은 아내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S 양을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나는 그녀에게 결혼하자 프러포즈하였고 S 양은 조금 당황하였지만 큰 망설임 없이 나의 프러포즈를 받아 주었는데 그렇게 20살 고등학생과 18살 미성년자는 결혼약속까지 하였다.
미래에 결혼하기로 약속한 사이가 된 후, S 양은 내가 대학에 진학하면 자기가 벌어서 학비를 대 줄 테니 돈 걱정하지 말고 공부만 열심히 해서 꼭 좋은 대학에 들어가라고 까지 하였다.
그런데 이 대목이 어느 삼류소설에서 읽어 본 내용 같지 않은가? 어떤 여자가 가난한 대학생 애인을 헌신적으로 뒷 바라지 했더니 그 남자는 대학 졸업 후 출세를 하더니만 자기에게 희생만 하였던 애인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다른 부잣집 여자와 결혼한 뻐꾸기새끼 같은 남자 주인공 말이다.
어쨌든 여자친구는 내겐 정말로 헌신적이었고 마음이 순수했었다. 물론 요즘 십 대들이라면 속이 오글거리면서 재수 없다고 내 여자 친구에게 욕을 바가지로 퍼부울지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