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동인 Aug 27. 2024

결혼? 쉬운 줄 알았더니 머나먼 길이었다 5화

펑크 난 자전거였던 나의 20대 시절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던 회사에서 계속 일했다. 결혼을 약속했었던 S 양과의 연락이 완전히 끊어지게 되자 이제 나는 또 다른 여자를 찾아야 했는데 그러던 중, 새로 입사한 여직원 중에 같은 동갑내기인 A가 눈에 띄었다. 동그란 얼굴에 동그란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던 그녀는 성격이 명랑하면서 붙임성이 좋은 여자였고 미인은 아니었지만 귀염성 풍기는 상이었다. 우리는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친하게 지내다가

A 양에게 편지는 물론이고 지금 보면 정말 유치 찬란한 자작시까지 지어서 건네주었는데 어떻게 그런 유치한 시까지 써서 여자에게 주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내 시를 받은 A 양은 좋아했었고 내가 먼저 대시 하자 그녀는 흔쾌히 승낙하였다. 그렇게 연애를 막 시작한 우리 두 사람 사이는 별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무슨 의도였는지는 몰라도 어느 날부터는 A 양이 다른 동료와 친해지는 것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어떤 여자는 남자의 질투를 유발하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는데  A 양이 바로 그런 여자였다.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아마도 남자를 질투 나게 해서 자기에게 더 잘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는 것.
그러나  A 양의 심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나로서는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보는 앞에서 그녀는 남자 동료와 이마가 맞닿을 정도로 마주 보고 앉아 하하 웃고 떠들면서 동료가 집어 준
과자를 제비새끼처럼 낼름낼 입으로 받아먹었다. A 양의 그런 모습을 보며 나는 심한 배신감이 밀려오면서 질투심이 솟구쳐 올랐는데
질투심은 여자들만의 소유물로 생각하지만 남자들도 여자 못지않게 질투심이 일기도 한다는 사실.

고래 같은 마음으로 새 여자친구의 행동을 이해하여 주면 좋았겠지만 태생 자체가 밴뎅이었던 나로서는 용납할 수가 없었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으로의 품종 개량은 불가능하듯이 밴댕이는 절대로 고래가 될 수 없다는 것. 어떻게 할까 고심하다가 유대인들의 전략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나도 똑같은 방법으로 그녀에게 응수했다. 바로 A 양의 친구인 K 양을 공략한 것이다. 사실, 새 여자친구보다는 그녀의 친구가 훨씬 나았다. 키도 크고 성격이 더 좋아서 나 하고도 쉽게 친해졌는데 나는 그녀를 A 양 앞에서 눈 꼴 사나울 정도로 잘해주었다. 역시나  A 양의 눈에서 질투의 불꽃이 튀는 것을 감지했지만 속으로 통쾌해하면서 무시해 버렸다.

그러다 A 양보다는 그녀의 친구인 K 양에게 마음이 더 쏠리게 되었는데 나를 먼저 배신한 A 양보다는 K 양을 내 새로운 여자친구로 바꾸려 했지만 중간에 낀 K 양은 아주 난처하게 되었다.
결국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았던 A 양과는 깨지게 되었고 그녀의 친구인 K 양과도 잘 되지는 않았다. K 양도 나를 싫어하지는 않았지만 친구와의 의리상 나의 여자친구가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A 양은 나와 헤어지면서 "사람이 그러는 게 아니다"라고 한마디 하였는데 그동안 상처를 꽤나 받았던 모양이다. 아니? 자기가 먼저 시작해 놓고서 왜 나를 원망한단 말인가? 그 일로 인해 A 양과는 한 동안 회사에서 매우 서먹서먹한 관계가 될 수밖에 없었는데 사내연애는 서로가 잘 되면 좋지만 이런 사소한 오해로 인해 깨지는 경우가 많다. 사내커플이 성공하려면 확실한 관계가 되기 전에는 아무도 모르게 만나는 것이 교과서일 것이다. 주위 동료직원들 입방아자주 오르내려 보았자 좋을게 전혀 없기 때문이다.

나와 결별한  A 양은 얼마 후, 친구와 함께 회사를 그만두었다. 같이 있을 때는 얼굴 마주칠 때마다 서로가 엄청 불편했었지만 막상 그녀가 없으니 마음속이 허전했다. 그렇게 나는 또다시 혼자가 되고 말았는데 같은 회사를 다니면서 여자를 사귀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성의 만남은 서로 다른 직장을 다니며 퇴근 후나  주말에 만나서 데이트를 하는 게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사내연애를 하다 보면 상대방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공개가 되니 사소한 오해가 쌓이다 보면 서로에 대한 불신으로 발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헤어진 A 양의 친구였던 K 양은 내가 개인택시를 하던 55세 때 마치 영화에서처럼 아주 우연하게 만났다. 그곳은 평소에 즐겨 찾던 상계동 커피 자판기 앞이었는데 사람은 이렇게 길에서 예상치 못하게 만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무려 34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었지만 그녀도 세월의 무상함을 비켜가지 못했는지 20대 적 청순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머리 희끗희끗하고 배둘레헴 풍부한 아줌마의 모습이었다. 물론, 그녀의 눈에도 22살 때의 내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차라리 서로 만나지 않았다면 20대의 풋풋한 젊은 시절의 모습을 가슴속에 영원히 간직하면서 살았을 텐데...

다니던 회사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흘렀다. 나와 가깝게 지내던 직장 상사인 과장님이 새로운 회사를 차린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회사를 옮길 마음은 없었지만 과장이 나를 따로 불러서 같이 가자는 스카우트 제의를 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직원들도 상당수 함께 갈 것이라는 과장님의 말에 나도 얼떨결에 동의를 하고 말았는데 나중에 회사를 옮기고 나서 알고 보니 과장님이 새로 회사를 차린게 아니라 본인은 기술을 지원하고 진짜 사장은 따로 있었다. 새로운 회사 사장님은 그냥 이웃집 동네 아저씨 같은 소탈한 모습이었는데 이런 사람도 회사 사장이 될 수 있나 하고 의아했지만 이미 전 회사를 퇴사했으니 새로운 회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다시 예전 회사에 갈 수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뜻 하지 않게 새직장을 다니게 되었고 그곳에서 또 새로운 인연을 만나게 되었다.

전 회사에서 나를 포함해 실장님을 비롯한 다수의 직원들을 데려왔지만 인원이 부족해 새 직원들을 더 채용하게  되었는데 몇 명의 여직원들이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던 것이다. 그때 J라는 여성이 내 눈에 들어왔는데 그녀는 아담한 체구에 인물도 좋았고  성격이 밝으면서 큰 눈에 웃는 모습이 아주 매력적인 아가씨였다. 사내 연애는 하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그런 내 마음과는 아랑 곳 없이 나는 또 그녀에게 빠져들었다.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고 또 여자가 남자를 좋아하게 되는 것은 자신의 의지로 되는 게 아니라 뇌하수체에서 분비되는 사랑이란 호르몬의 명령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J 양에게 쉽게 다가서기는 어려웠다. 성격은 명랑하지만 똑똑하면서 매우 당차 보이는 아가씨였는데  때론 나의 행동이나 서툰 말실수를 지적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와 가까워지기 위해 출근 시간 때는 미리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우연을 가장한 만남을 시도하기도 하였지만 이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J 양이 눈치를 채고 말았다.


나에게 가벼운 눈웃음을 지으며 왜 자기를 기다리냐는 그녀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그만 당황해서 버벅거렸는데 J 양은 결코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나이는 나보다 3살 아래여서 그녀는 나를 오빠라고 불렀지만 내가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지 훤히 알고 있는 듯하였다. 한 마디로 내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아 있는 것 같았다. 사실, J 양에게 나란 남자는 별로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키도 작지, 죽도 못 먹고살았는지 바람만 조금 불면 날아갈 정도로 비썩 말랐지,

인물도 그저 그렇지, 그녀의 입장에서는 뭐 하나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던 중, 여름휴가 때 동료들과 계룡산으로 단체캠핑을 가기로 했는데 여직원들은 기차로,

남자직원들은 고속버스를 타고 가서 계룡산 입구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아니? 기차든, 고속버스든, 같이 갈 것이지 왜  따로 가서 만나기로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나를 포함한 네 남자들의 머리통들이 멍청함의 첨단을 굴러다녔던 것 같았다. 어쨌든 그렇게 약속을 하고 나를 비롯한 남직원 4명과 여직원 4명 이렇게 짝을 맞추어서 출발하였다.

물론, 여직원 4명 중에는 내가 좋아하는 J 양도 포함되었다. 나는 이번 캠핑을 통해서 J 양과 더 가까워질 것을 기대하며 아침 일찍 고속버스에 올랐지만 그런 나의 일방적인 바람은 처음부터 사정없이 어그러졌다. 만나기로 한 장소에 도착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여자들이 오지 않는 것이다.
남자들은 텐트를 비롯한 무거운 캠핑장비들만 가져왔지 쌀과 고기 같은 찬거리들은 여자들이 담당했는데 도대체가 오지를 않고 있으니 배가 고파도 밥을 해 먹을 쌀조차 없었다. 여자들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쫄쫄 굶다가 일이 뭐가 잘 못 됐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해가 기운 뒤라 계룡산은 아예 가지도 못하고 한 동료의 제안으로 근처에 살고 계시는 동료 외할머님댁으로 향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로 말미암아 동료 할머님께 민폐를 끼치게 된 것이다. 우리들 일행들은 마치 전쟁터에서 패하고 돌아온 패잔병 같은 몰골로 무거운 배낭들을 메고 가로등 하나 없는 어두운 산길을  한참 동안이나 터벅터벅 걸어서 밤늦게 할머님댁에 도착했다. 하루종일 굶어서 피골이 상접한 손자와 일행들의 갑작스러운 방문이었지만 할머님께서는 우리들을 반갑게 맞이해 주셨는데
할머님은 저녁반찬으로 찹쌀가루 반죽을 입힌 동백잎 튀김을 우리에게 요리해 주셨고 동백잎 튀김은 그때 처음 맛보았다.

나는 동백잎을 튀겨서 먹을 수 있다는 것에 놀랐지만 배가 고파서였는지 바삭하면서 쫄깃한 맛이 아주 일품이었다. 우여곡절 휴가를 마치고 회사에 돌아와서 여자들에게 자초지종을 듣고 나자 남자들은 모두 뒤로 넘어가고 말았다. 아니? 이 여자들이 기차를 타고 가는 도중에 남자들에게 헌팅을 당했단다. 더 열받는 것은 남자들과 휴가 내내 계룡산에서 함께 놀고, 그 녀석들이 우리 회사까지 찾아와서 여자들을 만나기까지 하였으니 정말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못 믿을 것은 여자들의 마음이라더니... 그렇게 우리들을 배신하고 다른 남자들에게 넘어갈 줄 알았다면 우리들도 중간에 여자들을 꾀어서 그녀들과 같이 놀다 올 것을... 에 효!~
J 양도 그때 만난 남자들 중 한 녀석이 적극적으로 따라다니면서 연인 사이로 발전하고 말았는데
나는 그야말로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나의 20대 초반의 연애사업은 펑크 난 자전거 바퀴처럼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덜그럭 덜그럭 굴러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