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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동인 Aug 20. 2024

결혼? 쉬운 줄 알았더니 머나먼 길이었다 4화

사랑의 불시착

연인관계는 선을 넘기 전, 후가 확연하게 달라진다. 이왕 선을 넘었으니 두 사람 다 더욱더 밀착되는 관계로 갈 수도 있고, 반대로 갈등을 심하게 겪다가 결별을 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전자 같은 경우는 가장 이상적인

"페닐에틸아민"연인들이겠지만 후자는 마치 로켓이 우주를 향해 힘차게 날아올랐지만 추력이 부족해서 대기권의 저항을 뚫지 못하고 추락해 버리는 경우라 할 수 있을 것인데 불행히도 우리들은 후자에 속했다. 만약 지금과 같은 시대에 만났었다면 우리들은 공고하게 사랑을 유지해 나가다가 결혼으로 골인할 수도 있었겠지만 70년대 말의 사정은 그렇지 못했다.

S 양과 사랑을 하였던 그 시절에는 부모님들을 비롯해서 주위의 따가운 눈총들이 우리들을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님의 걱정은 물론이고 나보다 11살이나 많았던 큰 형님은 편지까지 검열하면서 나와 S 양의 만남을 노골적으로 조롱하는 그런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여자친구와 마음껏 연애하기는 언감생심이었다.

 차라리 여자친구와 2년 정도만 늦게 만났었다면 우리들은 해피엔딩을 맞았을 것이다. 내가 22살, S 양이 20살이면 우리들은 완전한 성인이기에 어느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으면서(나와 S 양 두 집안의 완강한 반대가 있었겠지만) 사랑은 물론이고 결혼도 당당하게 할 수도 있었다.


물론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지금 시대에 여자와 결혼하려면  연봉 5,000에 32평 아파트, 차는 최소 소나타 정도는 기본으로 갖추고 있어야 청년들이 여자에게 청혼을 할 수 있단다(30대 청년들이 무슨 수로 이런 능력을 갖출 수 있단 말인가?)그러나 S 양과 연애를 했었던 그 시절의 남자들은 월세방 하나 얻을 수 있는 능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여자와 결혼을 할 수 있었던 시대였고 결혼식 비용도 많이 들지도 않았거니와 그 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혼인신고만 하고 여자와 동거를 하다가 애 두 엇 낳고서 결혼식을 올리는 커플들도 흔했었기에 남자들에게는 정말 결혼의 황금기라 할 수도 있는 시절이었다.

문제는, S 양과 같은 너무도 좋은 여자를 너무도 일찍 만났다는 게 내게는 큰 불행이었다는 것.
연애도 경험이 있어야 여자의 심리를 파악하면서 물 흐르듯이 매끄럽게 서로의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었을 텐데 나이가 어리고 연애초보였던 나는 성급한 마음만 앞섰다. 마음이 급하면 여자에게 믿음을 주지도 못하면서 실수는 자연스럽게 따라오기 마련인데

S 양과 한번 선을 넘어서 도장을 찍었으니 평소처럼 연애만 하고 그녀가 성인이 되는 2년 정도만 좀 느긋하게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결론적으론 그렇게 하지 못했었기에 여자친구와 자주 갈등을 겪게 되었고 그럴 때마다 철옹성인 줄 알았던 우리의 애정전선에는 조금씩 이상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친구가 부모님의 요청에 따라 고향인 대전으로 내려가 그곳에서 직장을 다녀야 한다는 통보를 해왔다.

나는 직감적으로 여자친구와 헤어질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내려가지 말라고 강력하게 붙잡지도 않았는데 활활 타올랐다가 쉽게 꺼지고 마는 모닥불처럼 어느덧, S 양과의 사랑이 식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불과 얼마 전까진 그녀를 뜨겁게 사랑하고 있었지만 선을 넘은 이후로는 서로 심하게 갈등을 겪고 있었기에 S 양이 멀리 떠난다는 말을 했어도 별로 심각하게 마음속으로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어쩜 내 여자친구는 자기를 좀 더 강하게 붙잡아 주기를 원했을 텐데 나는 그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던 것이다. 그렇게 여자친구는 대전으로 내려갔고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듯이 우리들은 편지만 몇 번 오가다가 소식을 전하지 않게 되었는데 나는 나대로 그녀는 그녀대로 새로운 직장에 취업을 해서 적응을 하느라 서로에게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핑계에 불과했지만)

새로 옮긴 아르바이트 직장은 수출용 액세서리 빗을 만드는 회사였다. 아크릴을 잘라 기계로 찍어서 빗 모양을 만들고 여러 단계 가공을 거쳐 마지막으로 유화물감으로 빗에 그림으로 마무리를 하는데 그 일은 주로 여직원들이 담당했다.
나의 첫 직장은 여자들이 많은 전자회사였지만  두 번째 직장도 역시 여자들이 많았다. 이곳

도 직원들 대부분 10~20대 여성들이었고 내가 근무했던 부서의 남자들은 나를 포함해서 달랑 네 명뿐이었기에 남자들은 그야말로 꽃 밭에 둘러싸여 있었던 셈이었다. 그 많은 여자들 중, 나와 비슷한 또래의 사무실 직원 K 양이 눈에 띄었다. 얌전한 성격에 말을 할 때는 살며시 미소를 짓는 그녀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도파민이 솟구치면서 좋아하게 되었는데 S 양과의 관계가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었어도 그만 다른 여자에게 눈길이 돌아갔던 것이다.

남자가 여자에게 호감을 갖는 것은 첨 보는 순간 몇 초 사이라고 한다. 그만큼, 남녀의 만남에 있어서 첫인상은 대단히 중요하다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K 양에게 몇 번 데이트를 요청했지만 그녀는 내게 긴 편지를 보내서 자기 마음을 표현했는데 조만간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를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나도 고등학교를 졸업 한 뒤, 대학에서 만나자고 하였지만 결론적으론 보기 좋게 퇴짜를 맞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대시했던 여자에게 차인셈이다. 얼마 후, K 양은 편지 내용대로 내게 작별 인사를 하고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렇게 나는 혼자만 좋아했던 여자를 떠나보내게 되었고 그 순간은 마음 한 구석이 텅 빈 기분이었다. 물론, 회사에 여자들은 얼마든지 있었기에 K 양 말고도 다른 여자를 만나면 그뿐이었지만"풍요 속에 빈곤"처럼 여자들은 많아도 선뜻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내가 일하던 부서에는 나처럼 아르바이트를 하는 여학생들도 몇 명 있었는데 그녀들은 한광여자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생들이었다. 남학생들 사이에서는 3 광이라고 해서 한광, 염광, 은광, 이 세 여학교는 기가 아주 세기로 유명한 학교들로 정평이 나 있었는데 하필이면 모두 은광에 다니는 여학생들이었다.
비록, 그녀들보다 나는 1살이 더 많았지만 학년이 낮았기에 나는 그 여학생들에게 후배 취급을 받았다. 그렇다고 내가 그녀들에게 자존심상 선배님이란 호칭은 절대 쓰지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그녀들 앞에 있으면 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2학년, 여학생들은 3학년 졸업반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들 중 유일하게 1학년이었던 한 여학생이 나에게 호감을 갖고 다가왔다. 여자가 먼저 다가오면 기분이 나쁘지는 않겠지만 선뜻 마음에 내키지 않았는데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여자는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참한 조선 규수 같은 여자들을 선호하는데 반해 나를 좋아했던 그녀는 왠지 모르게 날라리처럼 보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날라리는 전혀 아니었고 인물도 괜찮으면서 성격도 좋았었는데 왜 여자를 멀리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그녀와 나는 서로 인연이 닿지 않아서 스쳐 지나간 것이겠지만.

남녀 관계는 어느 한쪽만 눈에서 스파크가  튄다고 되는 게 아니다. 내 눈에 어떤 여자가 좋아 보이면 저 쪽에서 시큰둥했었고 반대로 상대방이 먼저 다가오면 내가 또 별로였다. 이것이 연애의 "엇 박자 법칙"이다. 문득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옛 여자친구가 다시 생각이 났다. 나에게 너무도 헌신적이었고 내가 대학에 들어가게 되면 자기가 벌어서 학비를 대준다고까지 했던 여자였는데
멀리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녀를 소홀히 대했었다.
그러다 다른 여자들을 만나려 해 보니 역시 구관이 명관이란 사실을 통감하게 되어서 다시 편지를
보내 내 여자친구와 인연을 계속 이어나가야

겠다고 결심했었다. 그러나 한 동안 연락을 끊고 지내서였는지 선뜻  다시 편지를 하기에 좀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용기를 내어서 어느 날, S 양이 일하고 있었던 대전의 직장에 편지를 보냈다.

얼마 후, 답장이 왔지만 여자친구의 답장이 아닌 그녀의 친구가 보내온  편지를 받았는데
내용을 읽어보니 여자친구가 다시 서울로 올라간 뒤 소식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니, 전 여자친구는 그만 잊고 자기와 사귀지 않겠냐는 뜻밖의 편지 내용을 읽고는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왠지 모르게 여자친구가 나를 시험해 본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S 양이 아주 오랜만에 보내온 내 편지를 읽고는 자기 친구를 통해서 내 마음을 떠 보려 하는 것 같았다. 설령 S 양의 친구 답장 내용이 맞는다 할지라도 누군지도 모르는 새로운 여자와 연애할 생각도 없었기에 나는 다시 편지를 보내지 않았다. 그렇게 20살 때 만나서 결혼약속까지 했었던 옛 여자친구와는 그 이후로 연락이 완전하게 끊겼고 그녀를 놓친 것은 내 일생일대의 가장 큰 실수였다는 것을 내 나이 40이 훨씬 넘어서야 알게 되었다. S 양과의 사랑이 이루어졌어야 국어선생님의 예언이 들어맞았을 텐데 아쉽게도 선생님의 예언은 빗 나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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