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녀석이 내게 실습한 파마 덕분에 갑자기 유명인사? 가 되고 보니 여직원들 사이에서 나란 남자는굉장히 특이한 존재로 인식되었다.
여자들만 일하는 "스카이빙 라인"에 달랑 남자 혼자 끼어서 "개 밥의 도토리"가 되지를 않나, 또 어느 날 갑자기 엉망진창 파마머리를 하고서 회사에 출근하지를 않나,
물론 이 모든 것들이나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일어났었지만회사 사람들에게 나는"돈키호테"와 같은 인간이었다.
어쨌든, 나란 존재가 직원들 사이, 특히 여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나쁘지 않았다. 나에 대해 호기심을 갖는 여직원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 때는 일부러 내가 있는 자리까지 와서 힐끗힐끗 쳐다보며 미소를 짓거나 했는데처음에는 내가 그녀들에게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보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나를 보는 여자들의 눈빛이
경멸스럽다든가 조롱하는듯하게 느껴지진 않았고 그저 호기심 어린 시선인 것 같아서 나도 가끔 여자들과 눈이 마주치면 미소를 지어 보이기도 하였다.
나와 같이 일하는 동료인 M 군의 누나도 동생이 일하고 있던 준비조에 가끔 놀러 오곤 하였는데 살짝 웨이브를 한 단발머리에 키가 컸고 눈이 부리부리한 호남 아가씨였다. 둥그스런 얼굴에 눈이 커서 그런지 성격은 아주 시원시원해 보이면서 인물도 괜찮았다. M 군의 누나는 나를 보면 항상 생글생글 웃어 보였지만 나는 그저 살짝 미소를 짓는 정도로 화답했다. 그녀에 대해 특별히 이성적인 감정은 들지 않았다. 왜냐면 M 군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이는 겨우 20살이었지만 말하는 품새나 행동이 좀 불량스러웠기에 그 녀석의 누나와 엮이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M 군이 내게 여자를 소개해 줄 테니 만날 의향이 있느냐 묻는 것이다. 나는 직감적으로 녀석이 소개해 주겠다는 여자가 자기 누나라고 느껴졌기에 즉답을 하지 않았다. 혹시 네 누나를 내게 소개해 줄 거냐고 물었더니 녀석은 아니라는 것이다.
네 누나가 아니라고? 그럼 누구지?
궁금증이 생겼지만 더 이상 좋다 싫다 말은 하지 않았는데 며칠 후, M 군은 똑같은 물음을 내게 던졌다. 나는 이번에도 즉답을 피하면서 도대체 어느 여자인지 귀띔 좀 해 줄 수 있냐고
묻자M 군은 약간 짜증스러운 말투로 내게 응수했다.
아따!!~~ 행님요!~~ 그냥 만나보면 알 텐데 뭘 그리 비싸게 군다요?여자가 그리 무섭소?
그러나 녀석의 짜증스러운 다그침에도 나는 또다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를 만나고 싶어 하는 아가씨가 누군지 속으론 많이 궁금하긴 하였어도 소개팅은 언제나 부담스럽다.제삼자의 소개로 만나는 형식이기에 서로가 마음에 들면 참 좋겠지만 잘 되지 않으면 그 후유증이 상당하기때문이다. 마음에 드는 여자가 내 눈에 들어오면 차이든 말든 내가 쫓아다녀서 만나야지 누구로부터 소개팅을 받는 것은내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단 한 번도 소개팅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M 군이 소개해 주겠다는 여자를 내가 만날 의향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이자 녀석은 또다시 나를 면박했다.
행님요!!~~~ 여자를 그렇게 무서워하면 앞으로 장가는 어떻게 갈라요?
참말로 답답하구마 잉!!~~~
녀석은 나란 인간이 정말로 여자를 무서워하는 졸장부 정도로 여겼는지 다음부터는 내게 여자얘기는 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M 군에게 여자를 무서워하는 인간으로 낙인이 찍히고 말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아도 내가 왜 M 군이 소개해 주겠다는 여자를 만나보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그냥 만났었다면 어쩜 나의 인생이 180도로 달라질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물론, 같이 일하고 있는 준비조 조장 아가씨와 친하게 지내고는 있었지만 그녀에게 대시하지는 않고 있었다. 여자가 얌전하고 참한 것은 좋은데 다혈질답게 성질이 났을 때는 얼굴에서 시베리아찬 바람이 쌩쌩 불 정도였기에나도 같은 다혈질이라 같은 과끼리는 절대로 엮이지 말자는 게 내 철학이기 때문이었다.
또 한 해가 저물어서 27살이 되었지만 "풍요 속에 빈곤"처럼 여자들 많은 곳에서 일하고 있었어도 정작 내 눈에 들어오는 여자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난 그저 성격이 온화하면서 다혈질만 아니면 되는데 의외로 이런 여자가 눈에 별로 띄지 않는 것이다.물론 바보가 아닌 이상, 화나는 일이 있어도 언제나 웃을 수는 없겠지만 다혈질들은 조그만 일에도 순간적으로 폭발하기 때문에 그런 여자와 같이 있을 때는 늘 조마조마한 마음에 살얼음 위를 걷는 것 같아서 난 정말 싫다.
그래서 준비조 조장아가씨와 친하게 지내고는 있었지만 그녀가 다혈질 성격이라는 것을 알고서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일하고 있었는데 나와 같이 일하고 있었던 여직원 중에 20대 초반의 이쁘장하게 생긴 B 양이 있었다. 여자들이 많은 직장에서 일하다 보면 그녀처럼 이쁜 여자들도 상당수 있기 마련인데 B 양도 그중의 한 여자였다. B 양은 항상 생글생글 웃는 얼굴에 단 한 번도 누구에게 화를 내는 것을 본 적이 없던지라 나도 B 양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다.그녀도 나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고 있는 것 같아서 조만간 B 양에게 대시를 하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던가...
B 양에 대한 환상이 산산이 깨지고 만 사건이 발생했다. 어느 날, B 양이 또래의 남자직원들과 어떤 이유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다툼이 발생했는데 그녀는 자기와 다투던남자들을 향해 쌍욕까지 날리며 손가락질까지 하면서 험한 얼굴로 사납게 대 들었다. B 양의 그런 모습을 본 적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왜 그녀가 남자들과 크게 싸웠는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토끼처럼 약하고 양처럼 온순했던 B 양의 모습은온 데 간데 없이 자신을 해치려는 적을 향해 이빨을 한 껏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는 표범처럼 느껴졌다.
B 양의 입에서 온갖 거친 말들이 튀어나오자 그녀에 대한 나의 환상은 유리창처럼 깨지고 말았는데그녀는 결코 온순한 여자가 아니었다. B 양에게 시비를 걸었던 남자들은 그녀의 사나운 공격에 당황한 듯 주춤하였고 이들이 말싸움하는 것을보고는 직원들이 모여들었다. 사람들이 모여들자 남자들은 슬그머니 그 자리를 피하는 것으로 싸움은 일단락이 되었는데 대충 들은 얘기로는 아마도 그녀가 퇴근길, 남자들로부터 성추행 같은 것을 당했던 것으로 느껴졌다.민주화 시대인 지금으로서는 남자들이 여자에게 그런 행동을 했다가는 엄한 법적 처벌을 받게 되겠지만 80년대 초,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성추행"이란 용어 자체가 아예 없었던 시절이었다.
지금 2~30대의 젊은 친구들은 상상 조차 하지도 못하겠지만 그 시절 여자들은 짓궂은 남자들의 괴롭힘을별 다른 대책 없이 고스란히 받았어야 했다.보통의 여자들은 남자들로부터 그런 수모를 당했어도 아무 말 못 하고 그저 벙어리 냉가슴 앓듯 하였지만B 양은 다른 여자들과는 달리 그들의 만행을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는 방법으로 응수했다. 어쩜 그런 B 양의 대처가 현명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사건 이후로 남자들 어느 누구도 B 양을 추근덕 거리는 일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B 양에 대한 나의 호감은 급속도로 냉각되면서 그녀에게 대시를 하려는 마음도 사라졌다. 내가 생각했었던 온순한 여자가 아닌 발톱을 드러내지 않은 고양이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물론, B 양이 남자들에게 내뱉었던 거친 말들은 어디까지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정당한 행위였기에그녀를 뭐라 할 수는 없다. 단지, B 양은 내가 생각했었던 여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그저 아무 티 나지 않게 마음을 접었다.
만약 B 양과 내가 서로 마음이 맞아서 결혼했다고 한들 내 성격에 그녀와 잘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나 같은 다혈질은 순간적인 화를 참지 못하고 대책 없이 폭발하는데 그럴 때마다 B 양이 사납게 대든다면우린 얼마 살지도 못하고 종지부를 찍어야 할 수도 있게 될 테니 말이다. 나 같은 다혈질들은 여자 만나기가 참 어렵다. 그 성격을 받아 줄 수 있는 여자를 찾기가 마치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발견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그럼 네 성격을 온유하게 바꾸면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내가 여러 번 말했듯이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겠는가? 겉모양만 바꾼다고 해서 품종 자체가 바뀌지는 않는 법. 호박은 호박이고 수박은 수박 일 뿐이다. 때론, 시냇물에 굴러 들어온 모난 돌이 수많은 세월의 물살에 깎여서 둥근 자갈이 되기도 하겠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정말 오랜 시간을 거쳐야 했는데 27살의 내가 그런 자갈이 되기에는 너무나 젊었었다.
동생 녀석이 내 머리에 테러를 가했던 파마가 다 풀어지고 난 뒤의 내 모습입니다.
40여 년 전, 27살 때는 내가 저런 얼굴이었구나 하고 보니 감회가 새롭군요.
80년대 초, 남자들의 머리스타일은 대부분 장발이었습니다 나 또한 머리카락이 목덜미와 귀를 완전히 덮은 장발이었지요.
준비조 조장아가씨와 스카이빙 라인 여직원과 회사 근처 남한산성에서 하루 데이트 하면서 찍은 사진입니다.
내 바로 옆에 있는 여자가 조장아가씨, 그 옆에 있는 여성은 스카이빙 라인"미스 조"입니다.
"미스 조"는 나보다 두 살 연상이어서 나를 동생처럼 엄청 잘 챙겨주었었지요.
그 아가씨는 나와 친한 형님에게 소개를 시켜주었지만 그 후로 어떻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 준비조 조장 아가씨는 내가 적극적으로 대시했으면 내 여자가 될 수 있었을 텐데 같은 다혈질이라서 에 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