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동인 Dec 10. 2024

결혼? 쉬운 줄 알았더니 머나먼 길이었다 20화

사랑은 타이밍이다.

20대의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지만 또 한 해가 지나서 28살이 되자 30대가 바로 코앞으로 다가왔다.


30살이 되기 전에 반드시 결혼을 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여자들을 찾았지만 이상하리 만큼
그때까지도 내 여자는 찾을 수가 없었다.
회사에 출근하면 온통 여자들인데도 불구하고 딱히 내 눈에 들어오는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주제 파악도 못하고 여자 보는 눈이 높아서 그런 게 아니냐고 힐난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바로 내 노모를 모시고 살 수 있는 여자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여자들이 가장 기피하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 수 있는 여자들이 과연 얼마나 있겠는가?
내 성격도 다혈질인 데다 장남도 아닌 셋째가 시어머니까지 모시고 살 수 있는 여자를 찾는다는 것은 내가 전생에 나라를 구한 영웅이었다면 모를까 현실적으론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하겠다는 나의 열정만은 지칠 줄을 몰랐다.

회사에서 마땅한 여자를 찾기 어렵다고 느껴지자 나는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리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성당이었다.


거의 무신론자에 가까웠던 내가 어머님의 강요에 어쩔 수 없이 성당에 다니게 되었지만 성당에도 여자들은 차고 넘쳤다.
눈길을 돌리자마자 나의 레이더에  한 여자가 포착되었다.
그녀는 우리 어머님께서 그렇게 좋아하시는 맏며느리 같은 스타일에 키도 컸고 서글서글한 인상을 가진 여자였다.
마리아가 세례명인 그녀는 청년단체 단원이 아니었기에 나는 마리아에게 청년회 가입을 유도하면서 조금 친해지게 되었는데 사실, 청년회 가입유도는 핑계에 불과했고 그것을 매개로  그녀와 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한 작업이었다.

마리아는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단체 가입은 어렵다고 하였어도 어느새 저녁 식사도 하고 영화까지 함께 보는 사이로까지 발전하게 되었고 여기까지는 아주 순조로웠다.
여자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마리아에게 그 당시 히트곡이었던 앙리꼬마샤스의 "녹슨 총"음반도 선물하면서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만나 이성으로 사귀자는 고백을 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의 대시를 마리아가 받아줄 것으로 예상했었지만 나의 고백을 들은 마리아는 표정이 굳어지면서 단번에 "노!!~~"라고 말하는 것 아닌가?

나는 그저 아는 사이로 만나는 것은 괜찮지만 자기 이상형이 아니기에 남자로 보이지 않다는 것이다.
마리아에게 한방에 차였지만 나는 여자가 으레껏 한번 튕겨보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는 싫다는 그녀를 지속적으로 쫓아다녔다.
이미 마리아란 여자에게 반했던 나는 이대로 순순히 물러나기엔 그녀가 너무도 아까웠기에 나의 일생일대에서 단 한번,여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스토커가 되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여자 없다"라는 조선시대의 말도 안 되는 속담을 적용해 보기로 마음을 먹고 여자를 열심히 쫓아다녔지만 결과는 마리아의 오빠에게 인절미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탄생하게 되는지만 확실하게 경험하게 되었다.
여자의 오빠에게 엄청 두들겨 맞았다고 이대로 포기? 내 사전에 포기란 단어는 배추를 셀 때나 존재하는 것.
여자를 얻으려면 밀당의 고수가 되어야 한다지만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밀당"은 제과점 과자이름인 줄로만 알았었기에 좀비처럼 마리아를 열심히 쫓아다녔는데 어느 날부터는 여자가 내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여자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버렸던 것이다.
결국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었고 그제야 안 되는 여자는 안된다는 진리를 터득하게 되었다.

그녀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두 번 다시 싫다는 여자를 쫓아다니는 것은 내 인생에서 종지부를 찍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여자 만나는 것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또다시 피나란 세례명을 갖고 있는 한 여자가 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마리아와는 달리 남자처럼 커트 머리에 옷차림도 남자 같아서 어디를 보아도 여성적인 매력은 없었다.

앞을 보아도 남자, 뒤를 보아도 남자, 옆을 보아도 역시 남자처럼 보였다.
그녀가 여자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얼굴을 봄과 동시에 시선을 얼굴에서 45도 각도로 내려서 아래를 보다가 가슴 부분에 이르러서야

아!~남자가 아니고 여자구나!~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루피나에게 필이 꽂혔다. 어디를 보아도 이쁜 구석이라곤 단 한 군데도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착한 여자라는 느낌받았기 때문이었다.

지금 내가 처한 형편으로는 이쁜 여자든, 아님 민주적으로 생긴 여자든, 그런 것 따질 겨를이 아니다. 그저 나와 같은 다혈질만 아니면서 내 어머니 모시고 살 수 있는 여자라면 무조건 오케이.
마리아에게 차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루피나에게 열심히 작업하였는데 그녀도 나를 싫어하지는 않은 것 같았지만 쉽사리 마음을 주지는 않았다.
내가  열심히 대시를 하자 어느 날, 피나가 내게 한 마디 하였다.


아니!~~ 그 인물에 왜 여자가 없어요?

그 인물에 왜 여자가 없냐고? 이건 칭찬이여... 아님 조롱이여?

피나에게 나란 남자는 아마도 기생오래비처럼 보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적극적인 구애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끝내 마음의 문을 열어주지는 않았다. 그때서야 나는 또 깨달았다.
민주적으로 생긴 여자라고 결코 쉬운 것은 아니란  진리를 말이다.
길거리 철학자들이 흔히 하는 말 "남녀는 인연의 고리가 서로 연결되어야 만날 수가 있다"라고 하는데 그 철학자들의 논리처럼 나는 30세를 맞이하기 전에 아무리 여자를 만나려고 노력을 했어도 기어이 30대를 맞이하고 말았다.

나이가 30대로 넘어오자 또다시 운명처럼 한 여자가 내 눈앞에 나타났는데 그녀는 천주교 재단이 운영하는 양로원에서 상주하며 아무런 보수 없이 오갈 데 없는 노인들을 돌보는 자원봉사자였다.
"모니카"라는 세례명의 그녀는 성격이 명랑하면서도 시원시원한 이목구비에 키 크고 건강한 여성이었는데 양로원에서 노인들을 돌볼 정도의 신앙을 가진 여자라면 결혼해서도 노모를 잘 모실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모니카와 친해지기 위해 나는 시간 날 때마다 양로원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면서 온갖 궃은일들을 하였는데 대형세탁기가 없었던 양로원에서 가장 힘든 일은 영하의 추운 겨울철에 이불빨래를 하는 것이다.
따뜻한 물도 없이 얼음이 둥둥 떠 다니는 큰 다라에 하이타이를 풀어서 이불을 발로 질근질근 밟아대며 빨래를 하다 보면 마치 발 끝에서 강한 전기가 찌릿찌릿 올라올 정도였고 종아리에서는 김이 뭉게뭉게 솟아올랐다.
동시에 내 어금니들은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상하로 딱딱 소리를 내면서 마구 부딪치고 있었는데 그런 나의 모습을 모니카는 애처로운 눈으로 쳐다보면서


형제님!~추운데 너무 고생시켜서 미안해요!!~~라고 말하였다.

나는 그럴 때마다 아니요!~~ 하나도 안 춥고요 남자가 이 정도는 해야죠!~하하하 웃었지만 솔직히 이러다가 내가 얼음동상이 되는 게 아닌가 할 정도로 온몸은 냉기로 굳어 올랐다.
그렇게 몸을 아끼지 않고 봉사를 하였으니(물론 이것도 의도한 작업에 불과했지만) 모니카와 친해지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또 양로원에 자주 전화를 걸어서 모니카와 씨잘데기 없는 대화도 하며 그녀와 더욱 가까워졌다고 여길즈음 모니카에게 전화로 만나자는 데이트 요청을 하였다.
그동안 모니카와 친하게 되었으니 그녀도 내 데이트 요청을 흔쾌히 승낙할 줄 알았는데 전화기 너머에서 뜻밖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아닌가?

형제님!!~~ 이곳에 오셔서

할머님들 앞에서 내게 말하세요!!~~~


이 말인즉슨, 자기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려면 할머니들 앞에서 당당하게 하라는 것이었다.
모니카에게 그런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자 나는 갑자기 멘붕 상태가 되었다.
나는 그저 모니카와 몰래 데이트를 하다가 정식으로 그녀에게 사랑고백을 하려고 하였지만
갑자기 나를 할머니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자기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라니.
나 같은 형광등형 인간들은 순간적인 대처를 잘하지 못해서 낭패를 당하는 일이 많다.

"사랑은 타이밍"이라 했듯이 전등형 인간들처럼 바로 대처를 하지 못하고 깜박거리느라 타이밍을 놓치기 때문이다.
많은 여자들에게 퇴짜를 맞았던 악몽들이 떠 오르면서 이번에도 모니카에게 공개적으로 퇴짜를 맞을 것이란 생각에 그 후부터 양로원 발길을 끊어버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