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씨가 된다 하였나?
지난 연재글 "결혼? 쉬운 줄 알았더니 머나먼 길이었다"를 30회 연재로 마무리했었지만 중간에 빠진 글들이 꽤 있어서 "매거진"에 마저 다 올리려고 합니다.결혼을 일찍 하고 싶어서 20살 때부터 연애를 했었지만 결국은 48세에 지금의 아내를 만나서 겨우 총각 딱지를 뗄 수가 있었는데 내 노력의 결실이었지요.제 경험담이 앞으로 결혼을 앞두신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행님요!!~~ 거 맨날 자전거만 타고 다니지 마시고 지나가다 이쁜 아가씨 있으면 그냥 들이받으시라예!!~~ 헤헤헤!~
직장에서 같이 일하고 있는 동생뻘 되는 녀석이 걸핏하면 내게 하는 말이다.그때 나는 사이클을 타고 집에서 15킬로 정도 떨어진 직장에 출,퇴근을 하고 있었는데 그 자전거로 마음에 드는 아가씨가 눈에 띄면 들이받아서 인연을 만들라는 얘기다.나는 녀석의 농담을 들으면 그렇게 하겠노라 하 하 웃곤 하였다.말이 씨가 된다고 하였는가?
실제로 그런 일이 내게 일어나고 말았다.
그날도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사이클을 타고 퇴근하고 있었는데 고려대 앞을 지날즈음 정류장에 서있는 버스 사이를 지나고 있었다.
버스가 정류장에 서있다면 승객들이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그러나 이 버스가 승객들을 다 내린 것인지 아님 방금 정차해서 승객들이 내리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보통, 이때는 자전거를 잠시 멈추고 살펴봐야 하겠지만 내리는 승객들이 보이고 있지 않으니
나는 승객들이 다 내린 것으로 착각을 하고는 그냥 달리는 속도 그대로 버스와 정류장 사이를 지나려는 찰나 한 아가씨가 버스에서 내리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서 나는 브레이크를 잡을 겨를도 없이 사이클로 그 아가씨를 들이받고 말았는데
엄마야!~하는 비명과 함께 내 자전거에 들이 받힌 아가씨는 옆으로 나가떨어졌다.
동시에 아가씨를 친 충격으로 나도 자전거와 함께 나 뒹굴었다.정신을 차려보니 버스는 이미 떠나버렸고, 정류장에 있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교통사고가 난 것이다.만약 지금 이런 사고가 났었다면 버스기사에게도 상당한 책임을 물을 수도 있었다.버스가 정류장에 정차할 때는 뒤 따라오는 오토바이나 자전거가 정류장 틈 사이로 지나가지 못하도록 연석에 바짝 붙여서
버스정류장에 정차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버스기사는 그런 규정을 어긴 체 버스 정류장에 정차를 했었고 나는 그 틈사이를 지나려고 하다가 사고를 내고 말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버스는 아무 일도 없듯이 떠나버렸다. 법으로 따지자면 버스기사는 승객 안전의무를 소홀히 한 체 그 자리를 벗어나고 말았으니 그 책임을 면할 수가 없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를 자전거로 친 책임은 고스란히 내가 뒤집어써야 했다.그런 법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시대는 1993년 그때 내 나이 33살, 같은 대한민국이지만 그때는 지금의 대한민국과는 확연히 다른 국가였다.상식과 법이 정상적으로 통하지 않던 시절이었기에 나 같은 민초들은 법을 알지도 못했고 당연히 법의 보호도 제대로 받지도 못하던 때에 교통사고를 내고 말았으니 나는 정신이 아득해질 수밖에 없었다.다행히 나는 다친 데가 없어서 넘어져서 쪼그리고 앉아 있는 아가씨에게 다가가서 손을 잡아 일으켜 세우며 괜찮냐고 물었는데 여자는 괜찮다고 하면서 일어났지만 그녀가 입고 있던 얇은 치마에 비친 허벅지에서 피가 나는 것이 보였다.
내 자전거에 받혀 넘어지면서 아스팔트 바닥에 긁히면서 상처를 입은 것이다. 만약, 지금 이런 사고를 냈다면 나는 여자에게 엄청난 치료비는 물론, 후유장애비까지 보상해야 할 의무가
있다.그러나 1993년도 대한민국은 지금과 같은 선진국이 아니었다. 보험조차도 거의 없던 시절이었기에 자전거로 교통사고가 나게 되면 아주 큰 사고가 아닌 이상, 그냥 개인끼리 약값 정도로 합의를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나는 여자에게 병원에 가자고 하였지만 그녀는 괜찮으니 한사코 그냥 가라고 손짓을 하였다.
그때 여자의 얼굴을 자세히 쳐다보니 아니 이런? 엄청 이쁘게 생긴 여자 아닌가?게다가 마음씨는 보기 드문 천사 녀였다.그때 내 얼굴이 불쌍해 보여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 자기를 치어서 허벅지에 피를 철철 나게 한 남자를 그냥 가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요즘 여자들 같아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겠지만 시대가 사람들을 변화시킨다고 하듯이 그때는 그렇게 순박한 여성들도 많았다.
그렇다고 그냥 갈 수는 없어서 나는 여자의 손을 잡아끌고 근처에 있는 약국에 데리고 갔다.
여자는 절뚝거리며 내손에 이끌려 약국으로 들어섰는데 약사에게 여자의
상처를 보여주고는 약을 주문하자 약사는 소독약과 상처에 바르는 연고와 반창고를 주었다.
그 약들을 받아서 여자의 상처에 바르기 위해 치마를 걷어 올리자 20대 처녀의 하얗고 탱탱한 허벅지가 드러났다.
지금 시대라면 이건 정말 말도 되지 않으면서도 명백한 성추행에 해당할 것이다.그러나 오랜 군사독재 끝에 문민정부가 들어섰지만 그 시절에는 성추행이니 성폭행이니 이런 용어 자체가 통용되지 않던 때였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절대로 이해할 수 없겠지만 그런 대한민국이었다.
처녀의 허벅지를 백두 대낮에 보고 있으니 내기분은 정말 기분이 묘했지만 여자의 허벅지 상처를 약솜에 소독약을 발라서 피를 닦은 후 상처를 소독하였다.소독약이 상처에서 흰 거품을 내면서 부글부글 끓어오르자 여자는 많이 아픈지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엉엉 울었다.
연고를 바른 후,꺼즈를 상처에 대고 넓은 반창고로 감싸 붙이는 것으로 치료를 끝냈는데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여약사는 우리 둘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실 실 웃었다.
아마도 약사는 우리 두 사람이 장난을 치다가 여자가 넘어져서 상처를 입은 것으로 착각을 하였을 것이다. 졸지에 여자와 나는 여약사 눈에 연인으로 비치게 되었다.여자를 약국에서 데리고 나온 후, 어디에 사느냐고 물어보니 그녀는 홍능에 산다고 하였다.택시를 잡아주겠다고 하자 여자는 한사코 거절하면서 이제 됐으니 그냥 가라는 손 짓을 하였다. 택시라도 태워서 집에 보내려고 했지만 빈 택시가 보이지 않았다.
마침 지나가던 용달차가 있어서 요금을 먼저 지불한 후, 여자를 용달차 조수석에 태워 보내는 것으로 그렇게 사고는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다음 날, 회사에 출근해서 내게 마음에 드는 아가씨가 있으면 자전거로 냅다 들이받으라는 동료 녀석에게 한마디 하였다.
야 인마!!~~ 말이 씨가 된다고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정말로 여자를 들이받았잖아!!~~~
내 말을 들은 동료는 어안이 벙벙했는지 내게 되물었다.
행님요!~정말로 여자를 들이 받았는기라예?
그래 인마!!~~ 자전거 타고 가다가 버스에서 내리는 여자를 냅다 들이받았서 넘어뜨렸다 됐냐?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기라예?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돼? 여자 데리고 약국에 가서 약 발라주고 용달차 태워서 보냈지.
뭐라꼬 예? 택시도 아니고 용달차에 태워서 여자를 그냥 보냈다꼬예?
그래!!~~ 택시도 없어서 용달차에 태워서 보냈다 이놈아!~~
하이 고마 행님요 답답하네예!!~~~
이왕 들이받는 것 여자 다리라도 부러뜨려서 병원에 입원시켰어야 되지 예!~~~
그렇게 어설프게 들이받아서 장가 언제 갈랍니꺼? 켁켁켁!~
동료 녀석은 강제로 인연을 만들어서라도 빨리 장가를 가라는 취지의 농담이었는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내 얘기를 듣고는 신기한지 한참을 켁켁거리고 웃었다.그 사건이 일어난 후, 나는 가끔 차를 몰고 홍능을 지나쳐 가게 되면 그녀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곤 한다.천사처럼 이쁘고 마음씨도 착한 여자였는데 어떤 녀석이 그런 천사녀와 살고 있을까..
아마도 전생에 나라를 구한 영웅과 살고 있겠지...
그럼?... 나는 전생에 역적이었나?제기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