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 한 이야기 5화

내게는 너무도 멀었던 성당 청년들.

by 현동인

아들 4형제 중에서 셋째인 나만 부실하게 태어났다.

형님 두 분과 막냇동생은 아버지의 건장한 체격을 물려받아서 키가 크고 몸이 튼실한 반면
나는 하필이면 어머님의 작은 키와 왜소한 몸의 유전자를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그나마 동생처럼 어머님의 곱상하신 얼굴이라도 받았으면 다행이었겠지만 아쉽게도 아버지의
소크라테스형 얼굴유전자가 내게 오고 말았다.
한 마디로 형제들 중에서는 나 혼자만 "불행종합선물세트"가 되어서 나의 소망과는 전혀 관계없이 그렇게 세상에 내 던져진 것이다.

작은 키와 비썩 마른 몸, 잘 생기지도 못한 얼굴, 거울에 비친 20살의 나를 보면 거울을 깨뜨리고 싶은 충동까지 들곤 하였다. 길을 걸을 때는 나는 항상 땅을 쳐다보며 고개를 푹 숙이고 걸었다.
그러다 가끔 고개를 들어서 앞을 보다가 여자가 걸어오면 똑바로 쳐다볼 용기가 없어서 내 머리는 자동으로 다시 고개를 숙이거나 오른쪽으로 돌아가곤 하였다.

그랬던 내가 적극적인 성격으로 바뀌게 된 계기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셨던 어머님의 강요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성당이란 곳을 다니면서부터였다. 사실, 나는 성당은 절대 다니고 싶지 않았다. 성당의 경건한 분위기는 왠지 모르게 억압을 당하는 듯한 느낌이었고 그곳에 들어서면 숨이 막힐 정도로 답답하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6개월 동안이나 교리실에 앉아서 수녀에게 재미 하나 없는 교리를 들어야만 세례를 받고
신자가 되는 과정은 정말 지루하기 짝이 없었지만 어머님의 간청 때문에 억지로 신자가 되었다.
그렇게 세례를 받고 나는 대부의 손에 이끌려 청년단체인 "레지오"라는 곳에 가입하게 되었는데
레지오는 "성모의 군대"라는 단체다.

천주교는 개신교와는 달리 예수님 다음으로 성모를 공경하는 종교다. 일부 개신교인들이 오해하는 것이 있는데 성모는 말 그대로 공경하는 것이지 믿는 것은 아니다. 성모상 앞에서 신자들이 기도하는 것을 보고 믿는다고 오해를 하지만 성모상 앞에서 하는 기도는 대도 즉~나를 위해서 예수께 빌어달라는 기도이다.

조금 더 설명을 하자면 예수께 드리는 기도는 나의 죄를 사하여 달라고 하지만 성모에게 드리는 대도는 나의 죄를 대신해서 예수께 빌어달라는 기도다. 그럼 또 이런 의문이 들 것이다.
예수께 바로 기도하면 될 것이지 뭣하러 성모를 통해서 기도를 바치냐고.

그것은 가나안 혼인잔치 때 예수가 성모의 간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때를 변경하여 첫 기적을 베풀어서 물을 술로 변화시킨 것을 보고 예수의 마음을 움직이는 성모의 능력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교리적인 것이니 이쯤에서 마치고 본론으로 다시 컴백.

여자를 만나려면 여자들이 많은 곳으로 가야 한다고 하였다.

어머님 때문에 세례를 받고 성당에 가보니 남자들은 별로 없고 여자들이 그렇게 많지 않은가? 지금도 그렇겠지만 성당이란 곳은 분위기상 남자들이 선뜻 가기에는 자유로운 교회보다는 부담스러워서 잘 가게 되지를 않는데 막상 와보니 여자들 천지였다.

내 나이 또래의 여자들 속에 파묻혀서 함께 묵주기도를 할 때 내 눈에 비친 청년들의 모습은
경건 그 자체였다. 그러나 회합을 마치고 그들이 나를 환영한다고 데려간 곳은 다름 아닌 주점이었다. 환영식을 다른 곳도 아닌 주점에서 한다는 것도 의아했지만 주점에서 본 그들의 행위는 나를 충격에 빠뜨렸다.

조금 전까지의 경건했던 그 들의 모습들은 온데간데없이 일반 청년들의 행태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원샷으로 소주를 마시는 것은 물론이고 담배까지 뻑뻑 피워대며 하하 호호 웃으며 노는 모습을 보았을 때 성당에 다니지 않는 청년들과 다를 것이라 여겼던 내 선입견은 산산이 부서졌다. 물론, 여자들은 술은 같이 마실지언 정 담배는 피우지 않았다.

나는 그때까지도 성당 다니는 청년들이 술과 담배를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은 몰랐었기 때문에
그때 내 눈에 비친 그들의 언행들은 나를 혼란에 빠뜨렸다.


물론 모든 청년들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걔 중에는 심신이 아주 경건한 청년들도 있었지만 소수에 불과했고 대부분 청년들의 행태는 내가 평소에 생각했던 그런 신자들의 모습들은 아니었다. 게다가 여자들 앞에서 숫기가 없었던 나는 그녀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할 때는 왕따까지 당하였다. 봉사활동이라고 해 봐야 별것 아니었고 성당에서 예비교리자들에게 명찰을 나누어주는 일 정도였는데 2인 1조로 나와 짝이었던 한 아가씨가 나와 다른 청년을 바꿔치기하는 것 아닌가?

처음 온 신입단원들을 친절하게 이끌어 주지는 못할 망정 왕따를 시키는 그들이 행태에 나는 마음의 상처를 크게 받고 분노를 느끼면서 6개월 만에 단체를 뛰쳐나온 뒤 더 이상 성당을 가지 않았다. 그들에게서 예수님의 사랑 따위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