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 한 이야기 8화

봉사라는 이름의 벼락.

by 현동인

"사랑의 둥지"는 가톨릭 수사 몇 분이 운영하고 있는 시설이다.

그곳에서의 처음 봉사 활동은 온실의 화초로 자라왔던 레지오 단원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버림받고 가난한 자들에게 해준 것이 곧 나에게 해준 것이라는 예수의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 봉사활동을 나왔지만 막상 그들 앞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사랑의 둥지"를 오랫동안 방문했던 다른 성당 청년들은 아주 능숙하게 자기 할 일들을 찾아서 하는 반면 우리들은 그저 꿔놓은 보릿자루처럼 멀뚱 거리고 서있자 보다 못한 수사 한분이 다가와서 일을 시켰다. 가톨릭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수사"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모를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수녀"들은 잘 알려져 있지만 "수사"는 수녀들만큼 알려져 있지 않다.

"수사"는 "수녀"들처럼 평생 결혼을 하지 않고 오로지 하느님을 위해 기도하고 자신을 희생하면서 봉사하며 사는 남자들을 말한다.
"남자수녀"라고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것이다.

40대쯤으로 보이는 수사에게 이끌려서 주방으로 간 단원들은 그곳에서 이미 사랑의 둥지 식구들의 식사준비를 하고 있는 다른 청년들과 함께 쌀을 씻고 감자를 깎고 배추를 다듬고 여러 가지 반찬을 요리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또 다른 단원들은 청소도 하게 되었는데 집에서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설거지 한번 하지 않고 살아왔던 청년들이 갑자기 평소에 해보지도 않던 일을 하게 되자 처음부터 실수 투성이었다.

감자를 깎다가 손가락을 베이기도 하고, 국을 끓일 때 간을 잘 못 맞추어서 국이 너무 짜거나 반찬들을 싱겁게 간을 하기가 일쑤였기에 그럴 때마다 다른 성당청년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청소조차 제대로 하지 못해서 수사에게 지적을 받기도 하였는데 주방일, 청소보다 더 힘든 것은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는 장애인들이나 노인들을 목욕시키는 일이었다.

"사랑의 둥지"는 남자행려자들과 장애인들만 수용하고 있었기에 그런 일들은 남자단원들이 도 맡아서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누구도 절대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집에서 부모님의 등 한번 밀어주지도 않고 호의호식하면서 살아왔던 단원들이 몸조차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장애인들을 샤워실에서 목욕을 시키는 일은 엄청난 육체적 노동을 요구하는 일이다.

더구나 집에서 부모님 등 한번 제대로 밀어드리는 효도도 하지 않던 청년들이 말라비틀어지고 주름 투성이의 노인들 등 밀어주고 목욕시키는 일을 하고 나자 거의 탈진 상태가 되고 말았다.
가장 최악의 봉사는 앞서 언급했던 뇌성마비 장애인 "요셉"님을 관장시키는 일이었다.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해 대부분 앉아있거나 누워있는 그분은 심한 변비를 앓고 계셨는데

음식을 먹고도 배변을 거의 하지 못하니 수사나 봉사자들이 주기적으로 "요셉"님의 항문에 손가락을 넣어서 변을 긁어내야 했었다. 그런데 누가 그런 일을 자원하겠는가?
그러나 우리들 중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 했었지만 다들 눈만 멀뚱 거리면서 서로를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결국 흙수저로 살아왔던 내가 자원을 하였다.

수사가 건네준 비닐장갑을 끼고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남의 관장을 하는 순간 내 주위에 있었던
청년들의 얼굴은 알루미늄 포일처럼 사정없이 찌그러졌다."요셉"님의 대장에서 뱀처럼 똬리를 틀고 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던 변이 세상으로 끌려 나오자 엄청난 악취와 함께 누런 변이 자신의 존재를 만천하에 드러냈다.

함께 있던 청년들은 모두 코를 쥐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나 또한 비닐장갑을 벗어버리고 그들과 함께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성당에서 품위 있게 눈을 감고 묵주기도를 하고 있을 때와 예수의 말씀을 실천한다는 것은 천지 차이었다. 그것은 이상의 화려한 날개로 하늘 높이 날아올랐던 공작새가 현실의 벼락을 맞고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것과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