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 한 이야기 9화

갑자기 차게 된 단장이라는 완장.

by 현동인

사랑의 둥지에서 호된 신고식을 치르고 돌아온 우리 청년 단원들은 멘붕 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청소니 빨래니 요리 같은 것은 오롯이 엄마의 몫인 줄로만 알고 살아왔었는데 갑자기 장애인, 행려자 시설에서 평소에는 별로 해 보지도 않았던 고된 일들을 하고 나자 봉사에 대한 회의를 느꼈던 것이다.

그들을 최악의 멘붕 상태로 빠지게 한 일은 어쩔 수 없이 내가 자원해야 했던 뇌병변 장애인 "요셉"님의 관장이었다. 이런 일을 하게 되리라는 것은 나조차 상상도 못 했었는데 내 옆에 있었던 다른 청년들은 견디지 못하고 밖으로 뛰쳐나가 오바이트를 하기도 하였다.

청년들이 봉사단체라는 곳에 가입해서 기껏 한다는 일들이 성당 예비자들 출석부 정리 같은 우아한 일들이 봉사의 전부로만 알고 있었지만 "사랑의 둥지"방문은 그들에게 봉사의 참 의미를 일깨워주는 큰 사건이었다.

"사랑의 둥지"를 다녀온 뒤 첫 회합에서 앞으로도 그곳을 계속 방문할 것인지에 대한 청년들의 의견은 갈렸다. 다른 성당 청년들도 많이 오는데 우리도 가야 한다는 의견과 그런 일들은 하지 않았으니 조금 시간을 갖고 천천히 적응해 가자는 두 가지의 의견들이었는데 결국 계속 방문하자는 의견으로 통합되었다.

문제는 단장으로 있었던 대학생 녀석이 자기는 단장을 더 이상 못하겠다고 단체를 그만두고 말았던 것이다. 팀을 이끌고 나가야 할 단장이 갑자기 사라졌으니 단원들 중에서 단장을 새로 뽑기 위한 비밀투표를 하게 되었고 투표 결과 단장은 내가 뽑히게 되었다.
내가 꿈에서도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는가?

단체에 가입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거니와 성경도 제대로 읽어본 적도 없고 더구나 레지오란 단체는
레지오 교본이란 책 대로 운영이 되었는데 그런 공부도 거의 하지도 못한 상태였다.
흙수저인 내가 대학생들 금수저들을 이끌고 나가야 하는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니 단장은 절대로 할 수 없다고 손사래를 강하게 쳤었지만 단원들은 박수로 환호하며 하느님의 뜻이라면서 나의 단장직 선출을 축하해 주었다.


그렇게 나는 초등학교 다닐 때 줄반장조차도 해보지 못한 상태에서 갑자기 성당 청년단체를 이끌고 나가야 하는 단장이라는 완장을 차게 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