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 한 이야기 25화

고물 스텔라택시기사.

by 현동인

나에게 퇴짜를 맞은 여자의 저주를 받은 후부터 내 인생은 정말 꼬여만 갔었다.

그 후로도 다른 여자들은 줄기차게 만났지만 결혼해서 노모를 모시고 살 수 있는 여자들은 아니었다. 다니던 직장도 부도를 맞으면서 실업자가 되고 말았는데 설상가상으로 조금 모아놓았던 돈도 어쭙잖게 장사를 한다고 투자했다가 불과 4개월 만에 홀라당 날려버렸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빈털터리가 되었으니 결혼은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우연찮게 본 TV에서 "스트라디바리 문을 열어주세요"라는 5부작 드라마를 보게 되었. 어느 무명 바이올린 제작가가 갖은 난관 끝에 세계적인 바이올린 제작가로 성공하는 내용을 담은 드라마였다.
그 드라마를 본 순간, 이거다!~라는 감동이 내 좁은 머리를 가득 채웠다. 평소 음악을 좋아하고 손재주가 많아서 친구들로부터 "맥가이버" 같다는 말을 듣고 살았던 나에게 바이올린제작가라는 직업은 거부할 수 없는 운명처럼 내 앞에 다가왔다.

그동안 나는 꿈과 야망도 없이 살아왔었는데 나도 저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성공해야겠다는 의지가 솟구쳤다. 내가 만약, 세계적인 현악기제작가 "스트라디바리우스"처럼 될 수만 있다면 나는 부와 명예를 동시에 거머쥘 수 있다는 허황된 꿈에 빠져서 그날로 나는 바이올린제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바이올린제작을 배우기 위해서는 바이올린의 본고장 이태리로 유학을 가야 했지만 무일푼이었던 내게 그것은 절대 불가능하였다. 그렇다고 여기서 내 꿈을 접을 수는 없었다.

유학 대신 국내에 있는 바이올린제작가를 찾아가서 그분 밑에 문하생으로 들어가 배우는 방법을 택했다. 그렇게 전화번호부를 열심히 뒤져 딱 한 분을 발견해서 호기롭게 그분을 찾아갔지만 문전박대를 당하고 말았다. 웬 생판 모르는 녀석이 찾아와서 바이올린제작을 가르쳐 달라고 하니 미치지 않고서야 어느 누가 나를 문하생으로 받아주겠는가?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줄기차게 문을 두드린 결과 겨우 겨우 그분의 허락을 얻어서 바이올린제작을 배울 수 있게 되었지만 문제는, 돈이 많이 든다는 것이었다.

바이올린제작에 필요한 매우 값비싼 재료들인 단풍나무와 가문비나무, 갖가지 공구 구입과 수업료등 같은 현실적인 문제가 내게 닥쳤다.

무일푼이었던 나는 당장 알바라도해서 돈을 벌어야했다.
스승님의 공방이 있는 경기도 의왕시까지 가서 아침부터 오후까지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면 오후
5시쯤 되는데 그때부터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뭐가 있겠는가? 여러 알바일을 찾아본 결과 낮에 공부하고 야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영업용 택시 밖에는 없었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영업용 택시를 할 생각은 꿈에서 조차 상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의 현실은 다른 대안이 전혀 없었기에 선택의 여지 따위는 사치에 불과했다. 문제는, 면허가 있지만 장롱면허에 불과했던 내 운전실력으로 영업용 택시를 몬다는 것은 한 마디로 "무식하면 용감하다"의 극치 아니겠는가? 자가용도 아니고 영업용 택시는 운전의 달인이 되어야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무식해서 용감했던 나의 의지는 그때도 여지없이 머리통을 앞세우고 바위를 향해 돌진했다.

비록 장롱면허였지만 사고이력이 전혀 없었기에 나는 어느 택시회사에 쉽게 입사했지만 1996년 당시 택시들은 오토가 아닌 5단 수동이었는데 기어를 3단밖에 넣어보지 못했던 나는 차고지 문을 나서기도 전에 시동을 수도 없이 꺼뜨렸다.
그것을 본 배차과장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내게 다가 오자 나는 성급히 일단 기어로 왕!~하고 차고지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러나 핸들을 잘 못 틀어서 차고지 기둥을 치고 나오는 바람에 뒷 문짝이 왕창 찌그러졌다.

첫날부터 사고를 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냥 차고지를 나와서 택시영업을 하였는데 이쯤 되면 이건 무식한 정도가 아니라 정신병원에 가서 진단을 좀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시대가 사람들을 대변하듯 그 시절에는 비 상식이 오히려 상식처럼 통하던 대한민국이었다. 뒷 문짝이 찌그러진 스텔라 고물택시로 도로를 달리자 택시승객들이 손을 들었다.
지금과는 달리 그때는 길가에 택시를 잡기 위해 승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로 승객들이 넘쳐났었다.

택시 기본요금이 단돈 천 원이었고 지하철과 버스노선이 엄청 불편했었기에 사람들은 주로 택시를 많이 이용했었는데 차가 찌그러졌든, 아님 깜빡이가 떨어져서 덜렁거리든 그런 것은 별로 개의치 않던 시대였다. 그렇게 운전을 전혀 할 줄 몰랐던 내가 무식하게 택시를 몰고 다니며 운전을 배웠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믿든 말든 이것은 내 실제 경험이니 알아서 받아들이시기를.

차고지 나올 때부터 사고를 내고, 끼어들기하다가 남의 승용차에 흠집을 내고 말았는데 화가 잔뜩 난
승용차 주인에게 오늘 첨 택시를 몰고 나와서 그랬노라고 죄송하다 90도 절 몇 번으로 퉁쳤다.
그날은 정말 아주 운 좋게도 큰 사고 내지 않고 택시영업을 마친 후, 차고지에 찌그러진 차를 쳐 박아 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리자 누구 하나 뭐라 하지 않았다.

찌그러진 고물택시들이 워낙 많았으니 누가 그렇게 했는지 관심도 없었던 것이다. 지금 상식으론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겠지만 1996년 대한민국 택시들의 자화상이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노모께 그날 있었던 일들을 말씀드리자
내게 명언을 하셨다.

얘야!~~ 너는 운전 정말 못하니까 택시 뒷 유리창에 "왕 초보 운전"이라고 커다랗게 써 붙이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