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 한 이야기 26화

차이는 것도 기술이다.

by 현동인

바이올린 제작공부와 택시영업을 병행했던 내 체력은 임계점까지 도달했다.

하루 수면시간이 겨우 4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니 수면부족으로 제작공부와 택시영업을 할 때도 꾸벅꾸벅 졸기 바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이올린 제작가가 되겠다는 집념 하나로 그 모든 난관을 헤쳐갔다. 그렇게 수면부족으로 체력이 한계에 다다르면서도 택시영업을 하면서 돈도 조금 모았다. 그러는 사이 내 나이는 어느새 40을 넘기게 되었다.

바이올린 제작공부를 몇 년이나 하였지만 다 배우지 못하고 여전히 진행형이었는데 택시영업을 하면서 겨우 몇 시간 정도밖에 공부를 하지 못하니 세월이 많이 흘렀어도 배우는데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바이올린제작을 배우려면 최소 하루 8시간 정도의 시간을 3년 이상 투자를 해야 했지만 나는 형편상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이러다가는 앞으로 몇 년을 더 공부하더라도 바이올린 제작을 완전히 배울 수 있겠다는 보장도 없었다. 노모도 80을 바라보시는 연세가 되셨는데 아들 녀석은 장가갈 꿈도 꾸지 않고 있으니 저러다가 평생 결혼도 못하고 총각귀신으로 늙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으로 나만 보면 한숨을 쉬셨다.

나라고 왜 결혼을 하고 싶지 않겠는가...
택시영업과 바이올린 제작공부를 하는 와중에도 틈 나는 대로 여자들을 만났었지만 도무지 결혼을
해서 노모를 모시고 살 수 있는 여자들은 없었다.


택시영업을 하면서 몇 번 만났던 40대 한 노처녀는 부동산 계통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인상은 그리
나쁘지 않았지만 막상 만나서 데이트를 해보니 이 여자와 결혼했다가는 내 인생이 완전히 쫑 날 것만 같았다. 승 깔도 보통이 아닌 데다가 술 담배까지 즐겨하는 여자였다. 게다가 씀씀이도 헤퍼서 월급은 200만 원 정도 받으면서도 친구 생일에는 술을 70만 원도 넘게 마셨는데 술 값은 자기가 다 냈다는 둥, 친구들과 놀러 가면 펜션을 빌려서 밤새도록 술을 퍼마신다는 둥, 같은 얘기를
내게 아무런 부담 없이 말하는 여자였다.

나는 택시영업으로 한 달에 겨우 150만 원 벌까 말까 하는 정도였는데 이 여자는 돈을 그렇게 물 쓰듯이 쓰면서도 정작 나와 만났을 때는 커피 한잔 자기돈으로 산 적도 없었다. 한 마디로 매너도 없고, 씀씀이도 헤프고 성질도 다혈질인 데다 내가 싫어하는 담배도 뻑뻑 피워대면서 술은 또 잘 마셔댔다. 아무리 여자가 없기로서니 이런 여자와 결혼하면 과연 내 인생은 뭐가 되겠는가?
여자든, 남자든, 혼기를 훌쩍 넘어서도 결혼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어딘가 치명적인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물론, 노처녀들 중에 정말 괜찮은 여자도 운떼가 맞지 않아서 결혼을 못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적어도 이 여자는 아닌 것이다. 여자와 몇 번 만난 후부터 번짓수를 잘 못 짚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헤어질 구실을 찾고 있었는데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이 여자는 나와 헤어질 마음이 별로 없어 보였다. 몇 년 전에 내게 매달리는 여자를 잘 못 퇴짜 놓았다가 그녀의 저주를 받아서 늦도록 장가도 못 가고 있는데 또 이 여자를 찼다가는 그날로 나는 개미지옥에 빠질 것 만 같아서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여자에게서 벗어나려면 어떡하든 그녀가 나를 차 주기만 바랄 뿐이었는데 의외로 그 기회는 쉽게 찾아왔다.

여자의 생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녀는 자기 생일에 내가 근사한 이벤트를 해 줄 것이라 내심 기대하는 눈치였다. 어느 화려한 주점이라도 하루 빌려서 여자 친구들 몽땅 초대한 뒤 자기 생일을 위한 초 대박 이벤트라도 내가 해 주기를 바랐었나 본데 아니... 뭔 착각을 그리도 야무지게 한다냐... 주점 하루 빌리는 것은 내 형편상 비용이 넘 많이 드는 것이라서 그 정도까지는 할 수 없겠지만 드라마에서처럼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 생일에 승용차 뒷 트렁크에 풍선을 잔뜩 싣고 여자가 트렁크를 여는 순간 풍선들이 날아오르면서 "하트와 사랑해"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짠!~하고 펼쳐지는 이벤트쯤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근데 내가 머리에 핵폭탄이라도 맞은 줄 아니?

좋아하지도 않는 여자를 위해서 그런 이벤트를 하라고? 도대체 뭐 하나 이쁜 구석이 있어야 말이지... 키 작지... 성질 더럽지... 얼굴도 서민적으로 생겼지... 골초에다 술고래지.. 돈 씀씀이는 엄청 헤프면서 내겐 커피 한잔 사 준 적도 없지... 이제껏 내가 만났던 여자들 중에서는 정말 최악의 여자에게 무슨 생일 이벤트? 여자의 생일날 나는 의도적으로 그녀에게 축하전화 조차 하지 않았다. 그다음 날, 여자에게서 바로 전화가 왔다.
여자는 차가운 목소리로 어제 내 생일이었는데 알고 있었냐고 물었다. 나는 당연히 알고 있었다고 말하자 잠시 후, 그녀는 말없이 전화를 끊었다.

내가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여자는 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주 쿨~하게 여자에게 차인 것이다.


그러나 내 기분은 마치 새장에 갇혔다가 탈출해서 하늘로 날아가는 한 마리 새처럼 너무도
홀가분하고 자유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