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날이면 생각이 나는
어느 성당의 종소리
오늘도 누군가는 그곳을 찾으며
마리아 님께 기도를 드릴 것이다
내가 너무 살기에 아무 걱정이 없어
내가 너무 풍족하고 행복해
외롭고 힘들어 성당을 찾는
눈 오는 날 풍경을 우리는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다
12 월이 되면 나는 가끔 하얗게 눈 내리는
길을 걸으며 간절히 외롭고 힘들어
하나님을 찾는 발길을 상상하곤 한다
눈이 내린다.
병실 5층 창문 너머로 보이는 성당은
언제나 엄숙하고 경건한 채로 아름답고 따스해 보였다.
성당 마당엔 바자회라도 하는지
사람들이 가득 모여 왁자지껄
웃음보를 터트리고 장난들을 치며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이윽고 하나 둘 눈송이가 내리더니
펑펑 쏟아지기 시작했고
, 앙상한 가지마다 하얀 꽃이 피기 시작했다.
세상은 하얗게 뒤덮여 마치 미사 보를 쓴 것 모양
머리에 하얀 눈이 쌓였고
창조주는 세상의 모든 만물에게
고해성사를 받고서 두 손 높이 쳐들어
"네 죄를 사하노라"외치는 듯했다.
예전엔 무엇이 있었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두 다 용서를 해버리고 덮어버린
창조주는 참으로 위대해 보였다.
하얀 대지위에 은은히 울려 퍼지는 성당의 종소리는
아직도 고해성사를 받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한 나의 굳게 닫힌
차갑고 슬픈 마음을 고개 숙이게 했다.
502호-특실 텅 빈 나의 방-이건 내 병실이다
아주 작은 오피스텔모양 화장실, 냉장고, TV, 침대, 옷 장, 분홍빛 커튼
어느 하나도 나에겐 불편한 것이 거의 없는 안식처이다.
아침 7시부터 때가 되면 가져다주는 밥이며,
아침이 끝나면 내 팔에 길게 꽂혀
움직일 수 없게 하는 링거 바늘이며,
회진 올 때마다
잊지 않고 묻는 "괜찮아요?"하시는 주치의의 따스한 웃음과 엄살 피우는 어리광을 받아주는 선생님의 손길. 이웃 병실의 아줌마들이 가져다주는 따끈한 차 한 잔과 마음
12시 30분에 오는 점심과 물리치료실-저녁 5시 30분에 먹는 저녁 메뉴'
그리고 나야 나는 비로소 7시 성당의 종소리를 들으며 링거 바늘을 풀고
자유로운 몸이 되어 긴 복도를 거닐며 성당의 마당을 훔쳐보는 것이다.
이따금 걸려오는 동생들의 전화도 나에겐 지루하고 힘든 하루는 조금은
즐겁게 해주는 청랑제가 되기도 한다.
처음엔 많이 아파서 외로울 틈도
지루할 시간도 없이 잠만 자고 있었다.
손과 발이 피를 많이 흘린 탓으로 움직이질 않고
통증이 심해서 주사 맞고 누우면
-이대로 바보처럼 살기가 싫어져 , 하루속히 나를 데려가 주셔요!라고 신께 기도드렸다.
교통사고로 입원한 지 2개월이 지나서야
통증도 가라앉고 걸음도 걸을 수 있게 되어
차츰 한 가족같이 되어버린 병원식구들과도
친해질 무렵, 나는 마치 훈련소 신병 같은 생활이 염증이 나기 시작했다.
아무도 찾아올 사람이 없는 나의 병실을 지키며 갑갑하고 짜증스러워
가끔 몰래 옷을 찾아 입고 모자를 뒤집어쓰고
도둑 외출을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만날 사람도 없고 갈 곳도 없는 나는 언제인가 병실창문 너머로
훔쳐보았던 성당을 찾았다.
성당은 참으로 따스하고 평화 로와 보였고 거기에 나타난 모든 사람들은
행복하고 맑아 보였다.
성모마리아 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은
참으로 경건해 보였다.
아'-난 한 번도 기도를 해본 적이 없는데….
마리아 님 내게도 병실에 꽃 한 다발 들고 올 친구를 하나만 주실 수는 없는지요?
언제든지 전화하면 나을 찾아와 커피 한잔 사주고
밝게 웃어줄 친구하나만 주셔요. 기도했다.
그리곤 잘 때 무섭고 허전하여 선물의 집엘 들러
커다란 곰 인형을 하나 사들고 돌아왔다.
복도 끝 한밤중 아무도 없으려니 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휘파람을 불면서
올라오는 나에게-"어딜 다녀' 도둑고양이처럼'가끔 나가는 거 아는데......"
주치의가 나의 어깨를 꽉 잡으며 호통이시다.
저...... 성당엘...... 기도하러...... "천주교신자였나?
움직이는 건 도움이 못돼
기도는 눈감고 누워서해.
바람 쪼이면 안 된다는 것도 모르나?"
나는 큰 죄라도 진 죄인처럼 병실로 들어와서 옷을 갈아입으면서 큰소리로 외쳤다.
"야'이 바보야'네가 뭘 알아?
너도 나처럼 텅 빈 병실에서
하루 종일 안 오는 전화나 바라보고
링거나 꼽고 누워 있어 봐'
밤중엔 혼자 있으려면 무서운 거 알기나 알아'
곰 사려고 나갔는데 이 멍텅구리야'" 문이 열렸다.
숙녀가 "문은 꼭꼭 잠그고 자야지…….
그러니까 평소에 좀 상냥하게 웃었으면
곰도 사다 주고 꽃도 사다 줄 신사라도 있었을 거 아니야"
하얀 가운을 입은 주치의가 다시 나타나 문을 걸어 잠그고 갔다.
곰은 참으로 편안하고 든든했다.
사람은 변하기도 하고 화도내고 떠나기도 하겠지만
이 녀석은 나를 지켜 줄 꺼라 생각하니
아주 행복한 기분으로 잠들 수가 있었다.
그다음 날 별안간 찬바람을 쪼인 탓인지
나는 심한 열과 기침으로 온몸에 열이 나고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하면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고,
며칠인가 누워서 꿈속을 헤맨 것 같았다.
그때 누군가 얼굴을 툭툭 치면서……. 잘 잤어?
이젠 곰은 먼지가 나서 안 돼.
나중 다 나아서 퇴원하면 곰 말고
옆에 안고 잘 사람이나 찾아봐' 문은 꽝 닫히고
나는 곰아' 견인되었구나'
미안 추울 텐데...... 눈물을 흘렸다.
치-. 바보 같은 선생님
내가 그런다고 또 못 사나 두고 봐라.
이불을 꽉 뒤집어쓰고 무서워서 씩씩거리며 생각했다.
그래 이젠 외출도 못하고....
누군가 나에게 곰을 사다 줄 사람이
있었으면 가장 행복할 터인데......
유리창 너머 성당에 저녁 미사종소리가
은은히 울려 퍼지고 성당 마당엔 여전히
마리아 님이 웃으시며 소원이 뭔지 기도해 봐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가 같았다.
그래요 마리아 님 난 기도를 한 번도 간절히 해본 적이 없어요. 그러나 나도 오늘은
고해성사를 받고 기도를 하고 싶습니다,
난 나에게 깊은 마음의 상처와 이렇게 다치게 사고를 낸 사람을 미워하고
저주하고 있거든요.
이제 그 미움 때문 내가 상하고 갈 길을 못 가고
있음을 깨달았어요.
용서하고 불쌍히 여기고.
감사하게 여기도록 해주셔요.
그리곤 다시는 그 사람 생각지도 않게
내게도 곰을 사다 줄 사람을 하나 주셔요.
나는 간절히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의 기도를 올렸다.
마리아 님 이제는 다시 이런 기도 말고
모든 이웃과 세상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며 살아가게 해 주셔요.
나는 이제 하나의 작은 촛불이고 싶습니다,
내 몸 불살라 재가 되어 다시 태어나 예쁜 곰 안고 행복한 미소 짓게 해 주셔요.
나을 위하여선 당신께 드리는 마지막 기도를 드립니다.
약속하지요. 다시는 이런 부탁하지 않을게요.
하얀 날개 달고 하늘높이 날아
엄마 없는 창문에 날아가 눈물 흘리는 아이의
착한 수호천사가 될 것을 약속하며.
마지막으로 부탁드리는 제 기도를
꼭 들어주시기를 빕니다.